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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Mar 29. 2024

장금이의 할 수 있다

2018년

20년이 지난 지금 대장금2의 소식이 들려온다.

나는 얼마나 나아갔을까...



 2003년 <대장금>이라는 드라마가 시청률 50%, 최고 70%까지도 찍으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여의도 드라마작가교육원에서 드라마작가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50부작이 넘는 드라마가 끝나고 난 뒤, 교육원에서 <대장금>의 작가 김영현 선생에게 드라마작법을 배우게 되었다. 수업은 매주 학생들의 작품을 두 편씩 서로 합평하는 방식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그때 배운 작법 같은 건 기억에 선명히 남은 게 없다. 다만 첫 수업시간, 합평에 대한 당부의 말씀은 아직도 내게 깊이 남아있다.     


 우리는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고 작품이 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니 합평을 할 때 무조건적인 비난은 피하자. 비평을 했다면 가능한 대안을 내놓자. 어떤 습작이든 명작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가능성에 불을 지펴 주어라. 안 되는 작품이라며 재미없다고 비난하지 말고, 작품이 되도록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라.      


 이런 내용이었다.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단순히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해 심하게 비평하지만 말고, 대안을 제시하여 좋은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배워가라는 말로만 여겼다. 그러나 수필을 공부하며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고 합평을 나눠보니 단순히 합평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인생관, 역사관, 세계관 등은 작가의 작품에 자연스레 녹아나게 마련이다. <대장금>에서 주인공 ‘장금이’는 온갖 역경과 험난한 과정에도 굴하지 않고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내고 또 생각해내어 행동하고 또 행동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의 의지대로 이끌어갔다. 그렇기에 ‘장금이’는 ‘대장금’이 되었고, 드라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성공했다. 지금도 가끔 재방송되는 <대장금>을 보면 작가가 장금이라는 인물을 통해 끊임없이 방법을 찾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작가의 가치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더 깊이 생각하며 자꾸 되새기게 됐다.

 김영현 작가와 개인적인 인연은 계속되지 않았지만,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에서 다시 한번 그의 ‘가치관’을 만났다. 당시 <미실>이라는 베스트셀러 소설은 꽤나 이슈가 되는 내용이었지만 공중파에서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외설적이라 드라마로 쓰기엔 부적절한 소재라고 교육원 수업에서 배운 바가 있었다. 그러나 ‘장금이의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작가는 그 ‘미실’을 당당히 공중파에 내놓을 방법을 찾았다.

 그런 훌륭한 선생님께 배웠는데도 나는 왜 아직 드라마작가가 되지 못할까? 실은 그 이유를 나도 안다. 나는 자신이 없는 거다. 두렵기만 한 거다. 주인공이 역경에 굴복하면 어떡하나, 그만 포기해 버리면 어떡하나, 비겁하게 도망가면 어떡하나. 그러니 적당히 타협해 버린다. 큰 사건을 만들지 않고, 커다란 역경도 피해가고 적당한 과정을 만들어 쉽게 넘기도록. 내 습작이 명작이 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거다.

 이유를 알면서도 결과를 바꾸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스로 막아버린 길에서 방황하던 나는 수필이라는 새로운 길을 만났다. 그리고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으나,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새로 만난 수필에서 삶을 배우는 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수필, 즉 삶을 읽으며 어쩌면 ‘할 수 있다.’는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도록 노력해도 결과는 좌절로 돌아올 때가 많았다.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앞서 생각하고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며 동료 의녀들도 다짐하는 모습이 나왔다. ‘장금이도 하는데 나라고 안 되겠어? 나도 열심히 할 거야.’라며. 그러나 그들이 모두 ‘대장금’이 되진 않았다. 노력이나 의지가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능력이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운이 따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했다. 장금이는 그때그때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지혜롭게 노력해야 했다. 지혜란 것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노력한다고 가질 수 있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금이는 어릴 때부터 수없이 많은 고난에 부딪혔고 그를 헤쳐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지혜가 쌓인 것이었다. 물론 대단한 의지로 노력했고 뛰어난 능력을 제때 발휘할 수 있는 운도 따랐다.


 수필을 공부하며 만난 사람들의 삶에서 나는 그런 지혜를 계속해서 배우고 또 배웠다. 그러면서 의지를 잃지 않고 노력하면 기회의 신이 내 앞에 나타날 때도 있지 않겠는가. 또 지나간 내 삶을 들여다보며 놓쳤던 것들을 짚어보기도 했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지만, 미래를 계획하려면 지나간 일에 대한 반성은 꼭 필요한 일이기에. 작가로서 가져야 할 가치관 또한 차근차근 정립해가고 있다.     


 수필 합평 시간, 내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임헌영 교수는 항상 질문했다.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나? 재미가 없었다면 왜 재미가 없었나? 어떻게 하면 작품이 나아지겠는가? 드라마와 달리 내 이야기를 날것으로 내놓으면서도 재미있는 글을 쓰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내 안의 두려움, 비겁함, 아픔 등을 끄집어내어 바라보며 내 삶은 나아지고 있다. 힘들었던 그때를 돌아보는 게 무섭지 않았고, 초라했던 나를 꺼내는 용기를 낼 수 있었고, 아직도 아파하는 내 안의 어린 나를 도닥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와 내 글쓰기는 나아지고 있다. 


 어쩌면 나는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장금이의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내 안에 쌓고 있는 것인지도. 언젠가 내가 할 수 있는 그때,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날까지. 지혜로운 방법을 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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