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계절 Nov 18. 2023

건축의 본질, 그 관점으로 여행하다

승효상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몇 년 전 에어비앤비를 운영한 적이 있다. 작은 창으로 종묘의 담벼락이 보이는 작은 빌라의 3층이었다. 서울 한가운데인데도 아침이면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특히 여름에는 종묘 담벼락과 그 안의 녹음이 한 폭의 그림을 만드는 곳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몇 번이고 종묘 담벼락을 걸었고, 외국인 게스트들도 꽤나 종묘를 방문했다. 그럼에도 나는 종묘에 딱히 매력을 못 느꼈다. 그저 뻔한 공간인 줄만 알았다. 


승효상 건축가는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라는 그의 책에서 서울의 아름다운 대표적인 건축물 중의 하나로 '종묘'를 꼽는다. 그는 종묘를 '우리의 전통적인 공간 개념인 '비움의 미학'을 극대화하고 있는 건축'이라 설명하고, '종묘 정전 앞의 비운 공간이 주는 비물질의 아름다움'에 대해 강조한다. 


종묘는 '정전'과 '월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월대'라고 불리는 빈 공간은 혼령을 위한 공간이자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단다. 비어 있기 때문에 어떤 행위가 가능하며, 채워지기 위해 비어있기도 있기도 하다. 사유를 위한 비움이기도 하다. 한국의 마당이 가지는 '신비'와 비슷한 결인데, 일본은 쳐다보기 위해 마당을 꾸미고, 중국은 위계의 근간으로 만들지만, 한국은 다양한 행위를 하는 공간이자 사유의 세계로 인도하는 매개로서 마당을 본단다. 이른바 '불확정적 비움'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아, 갑자기 빨리 한 번 가보고 싶다. 

직접 느껴보고 싶다, 그 공간, 종묘. 



'건축'이라는 업의 '본질'을 설명하고, 그 관점으로 국내외 여러 건축 여행기를 담은 책을 읽었다.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너무 좋았던 책,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의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저자는 건축을 '땅에 새기는 삶의 기록'이라 말한다. '건축설계라는 것은 우리 삶을 조직하는 일이며, 건축은 어디까지나 삶에 관한 이야기다.'이기 때문이다. 삶을 기록하고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 대한 관심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건축을 굳이 어느 장르에 집어넣으려 한다면 그것은 인문학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와, 진짜 멋진 말이군.) 


삶으로서의 건축을 이야기하는 건축가에게 여행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가 직접 걷고 바라보며 사유해서 소개하는 여행지의 폭은 꽤나 넓다. 우리나라는 종묘를 시작으로, 동락당, 성수 사지 폐허, 소쇄원, 병산서원, 부석사와 선암사 등이 있고, 해외로 넓히면 스페인 메스키타, 샌디에이고 스코 연구소, 교토 료안지, 스위스 '테르메 발스', 베를린 도시 전반 등이다. 


승효상 건축가는 삶의 실체로서의 건축을 사랑한다. 그는 여행에서 관광 명소보다 일상의 공간을 찾는다고 한다. 그곳에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이뤄지는 삶에 의해 완성된다'라고 말한다. 건축이라 함은 외관 디자인이며 기능적인 설계라고만 가볍게 생각했던 나였기에, 이 말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우리는 저마다의 관점으로 여행을 한다. 오늘 나는 건축으로 여행법을 배웠다. '땅에 새겨진 삶의 기록'을 탐험하는 그 어떤 관점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고 싶은 곳이 많아졌다. 특히 자연과 공존하고 어우러지는 우리나라 전통의 철학을 생각하며 건축을 바라보고 싶고,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내며 시간과 함께 만들어낸 흔적을 따라가고 싶어졌다.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문화적 향유로서의 도시를 탐험해 보고 싶다. 


그나저나, 건축가가 이렇게나 글을 잘 써도 되는 겁니까. 이렇게나 지식이 깊고 넓으며, 텍스트로 버무릴 줄 알아도 되는 겁니까. 한 문장 한 문장 수려해서 놀라웠다. 


여행을 가보자. 

오늘 획득한 관점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개인적인 슬픔이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되는 경험임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