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비 거는 건 아니지만, 사람을 관찰만 해서 알 수 있는 게 대체 뭔데요
이 이야기의 시작은 너무나 섬세했고, 그 끝은 생각지도 못하게 볼썽사나웠다. 소설 안에서 증폭된 그 매서운 말의 폭풍을 목도한 나는, 책을 덮은 후에도 한동안 소름이 돋았다. 분명 이 책은 내게 계속 풋풋한 청춘들의 취업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는데, 불과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기고 이건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일까 싶은 생각에 헛웃음을 지었다.
아, 잠깐만... 나는 지금 '아무 형태도 되지 않은 나의 노력'을 어필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나를 이 한정된 텍스트로만 관찰하고 규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구>에는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고타로, 다쿠토, 리카, 다카요시, 미즈키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은 대학 근처 같은 건물의 위층과 아래층으로, 동거인과 친구로, 또는 옛 연인으로 얽힌 사이다. 이들은 책의 표현을 빌자면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각자의 생각을 직접 얘기하지 않는 두 사람과 같은 곳에 남겨지면 대수롭잖은 얘기조차 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기도 했다.
사회로 나아가기 직 전, 이들은 취업은 '단체전'이라며 합심하여 고민을 나누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사이 오묘하게 형성된 기류는 이들 곳곳에 바람처럼 떠돈다. 유학이나 인턴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 뚜렷하게 원하는 회사가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 절박하게 취업을 해야 하는 이와 아닌 사람, 큰 기업만을 목표로 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 인맥에 몰두하는 사람 등등. 물리적으로 가깝게 지내는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심리적으로는 어느 때보다도 본인의 상황과 마음을 포장하며 갑옷을 입는다.
회사 면접에 가서 '상대가 정말로 듣고 싶은 것에 대답하기. 이것은 취업활동의 기본 같다.'라는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가고, 최종 결과 발표일, '테이블 끝에 놓인 휴대전화는 캄캄한 화면 그대로 잠들어 있다'는 표현에서는 내 심장도 먹먹하게 조여왔다.
주인공 중 누군가는 취업 활동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취업활동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는 물론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체험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별로 대단치 않은 자신을 대단한 것처럼 계속 얘기해야 하는 일이다.' 아이고, 거참, (재)취준생으로서 줄을 치지 않을 수가 없다.
질투와 시기가 섞인 감정이 흐르고, 여기에 자기합리화의 말이 치달을 무렵, 뱅!
다른 사람의 가치와 행동을 단편적으로 평가하고 단정하긴 참 쉽다. 그것도 익명을 통해서, SNS를 거치면 더 가벼운 일이 된다. 그 말이 어떤 칼이 될지도 모르고.
관찰만으로 그런 칼을 겨눈 적이 없노라고,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에서 채집한 문장들
아무것도 형태가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자신의 노력만 어필할 때가 아니다. 무엇을 위해서라든가 누구를 위해서라든가 그런 것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진짜 ‘파이팅’은 인터넷이나 SNS 어디에도 굴러다니지 않는다.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는 트위터에도, 페이스북에도, 메일에도, 그 어디에도 쓰지 않는다. 정말 호소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데에 쓰고 답장을 받는다고 만족할 수 있는게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보여 주는 얼굴은 항상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어느 순간 현실의 얼굴과 괴리가 생긴다.
“10점이어도 20점이어도 좋으니 네 속에서 꺼내. 네 속에서 꺼내지 않으면 점수조차 받을 수 없으니까. 앞으로 지향하는 바를 멋진 말로 어필할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모두에게 보여줘. 너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 끝에 네 속의 것을 꺼내 놓아봐.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제 우리를 봐주지 않아. 100점이 될 때까지 무언가를 숙성시켰다가 표현한들 너를 너와 똑같이 보는 사람은 이제 없다니까.”
“머릿속에 있는 동안은 언제든, 무엇이든 걸작이지”
“나는 나밖에 될 수 없어. 아프고 볼썽사나운 지금의 나를 이상적인 나에 가까워지게 할 수밖에 없어. 모두 그걸 알기 때문에 아프고 볼썽사나워도 분발하는거야. 볼썽사나운 모습 그대로 몸부림치는 거라고."
“관찰자인 양 해 봐야 아무것도 되지 않아.”
“이제 그만 현실을 깨닫자고. 우린 누군가가 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