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 <하치의 마지막 연인>
누군가가 좋아하는 책을 읽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가 더 선명해진다. 좋아하는 책에서는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어떤 포인트에 매료되는 사람인지, 어떤 언어를 향유하는지가 드러나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의 시선에 머물고 싶을 땐, 그 이가 좋아하는 책을 펼쳐본다.
<하치의 마지막 연인>도 그런 책이다. 어느 날 한아름 무겁게 도착한 그녀가 좋아하는 책들의 컬렉션을 펼쳐보다가 가장 먼저 시선이 닿은 책. 빠르게 전개되는 강렬한 스토리 안에서도 숨을 고르듯 성찰하고, 설명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말들이 딱 그 친구가 좋아할 만한 감성이구나 싶은 책.
소설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미오는 열다섯 살 때 소규모 종교 집단 같았던 집에서 가출을 감행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미오에게 남긴 예언을 들을 터였다. '하치라는 아이가 있어. 너는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 될 거다’.
신기하게도 가출을 한 그날, 미오는 '하치'라는 남자와 그의 여자친구를 만난다. 하치의 여자친구가 갑자기 사고로 죽으면서, 미오는 충격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미오가 열일곱 살이 되던 때, 다시 운명처럼 히치와 만나 함께 살게 된다.
할머니가 남긴 예언에 '히치의 마지막 연인'이었으므로, 미오는 하치와의 사랑놀이가 조만간 끝남을 알고 있었다. 서로가 알고 있는 그 조건 하에, 둘의 풋풋한 사랑이랄까, 애틋한 사랑이랄까. 격렬함도, 설렘도 좀 더 넣어주기는 해야겠다.
소설의 제목은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지만, 소설은 미오의 시각으로 전개된다. 미오의 잿빛 인생이 하치를 만나면서 색을 입고, 미오의 친구 관계가 하치를 통해 확장된다. 하치에게 미오는 마지막 연인이었을지 몰라도, 미오에게 하치는 그녀의 세상을 한 순간에 뒤집어 준 첫 연인이다. 세상의 온도를 바꿔준 은인이다.
그 사랑놀이의 제한시간이 있든 없든, 아니 어떤 핸디캡이 붙든 간에, 미오는 달라졌다. 타올랐다. 넓어졌다.
중요한 건 그것일 뿐. 이것만으로도 그 인연은 해피엔딩. 아래 미오의 말처럼.
단 한순간이라도 자기 자신과 농밀한 사랑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삶에 대한 증오는 사라진다. 고마워요, 하치, 그렇게 소중한 것을 가르쳐준 일, 평생 잊지 않을게요. 설사 사이가 나빠져서 말조차 걸지 않게 되더라도, 서로를 미워하게 되더라도, 그 일에 대한 감사는 지우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