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병원 선택기, 나의 구원자. 일산차병원!
절망과 분노가 뒤엉킨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 소용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남편과 무작정 고대 안암 병원으로 향했다.
간호사 선생님을 붙잡고 물었다.
“왜 갑자기 수술이 연기된 건가요?”
“혹시 정말, 진짜, 원래 날짜에 수술할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선생님은 바쁜 와중에도 매우 친절하고 상세하게 내 수술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지금 상황에서는, 4월 19일도 정말 어렵게 잡은 날짜예요. 그보다 더 밀리지는 않게,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간호사가 무슨 잘못이 있나?
전공의 파업으로 가장 힘든 자리에 놓인 분들. 나 같은 환자들에게 시달리고, 의사들이 해야 할 업무를 떠안아야 하는 사람들인데....
그럼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다니, 그분의 태도에 내 안에 쌓였던 분노가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최소한 더 연기되지는 않겠다’는 그 약속,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5주를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만 해도 기운이 쭉쭉 빠졌다.
그러던 다음 날, 낮잠 자는 아기를 슬픈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던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번쩍였다.
일산차병원!
맞아! 왜 그걸 까먹고 있었을까? 일산은 우리 집에서 좀 멀기도 하고, 일산차에 계시는 박정수 교수님이 워낙 유명하셔서 ‘대기 길겠지’ 싶은 마음에 애초에 생각조차 안 했었다.
지금 상황이 그런 이유가 무슨 소용? 제주도라도 갈 태세였다. 일산이면 코 앞이지!
바로 병원에 전화했다.
Hooray!
예상외로 초진 일정이 약 한 달 뒤인 4월 4일로 잡혔다. 오호, 좋아 좋아. 생각보다 빠르잖아! 이 정도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겠어.
게다가 병원 측 설명에 따르면, 일산차병원은 전공의가 없어서, 전공의 파업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건 완전 판도가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나는 3일 동안 1~2시간 간격으로 병원에 전화했다.
“박정수 교수님 예약되어 있어요. 혹시 더 빠른 일정 나온 거 있을까요?”
그리고 마침내 초진 날짜를 3월 19일로 앞당길 수 있었다.
3월 19일이 되었다. 예전처럼 아기는 엄마가 맡아주고, 동생이 병원에 동행해 주었다. 나는 그동안 받은 모든 검사 결과지를 챙겼다.
-초음파 CD / 조직검사 결과서 / 세포 슬라이드
-지난 2월 고대안암병원에서 받은 수술 전 검사 자료 (CT, MRI 영상과 피검사 결과 등)
(참고로 일산차병원은 2차 병원이므로, 진료의뢰서 제출은 필요 없었다.)
그날의 나는 무척 들떠 있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내가 박정수 교수님께 수술을 받게 되다니!’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나타난 나의 구원자. 진료 대기실에서 동생과 나는 마치 따뜻한 봄 햇살을 맞이하듯, 설레기까지 했다.
교수님은 푸근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과 동시에, ‘거장’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리를 지니고 계셨다. 설명은 길지 않았지만, 기막히게 핵심만 콕콕 짚어 주셨다.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여유 있게 대답해 주시는 그 말투와 눈빛. 그 여유로움은 보통 내공에선 나올 수 없는 느낌이었다.
CT 영상을 꼼꼼히 확인하신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전절제 수술은 해야 해. 지금으로선 전이는 안 보여. 전이가 되었는지 아닌지는 수술을 해봐야 확실히 알 수 있어.”
박정수 교수님은 최소침습 절개법으로만 수술하신다. 목에 켈로이드 흉터가 생길까 봐 걱정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무나 간결하게 말씀하셨다.
“목에는 흉터 잘 안 생겨. 내가 주름 따라 예쁘게 수술해 줄게. 걱정 말아.”
그 한마디에, 흉터뿐 아니라 갑상선암과 관련된 모든 불안이 스르륵 사라졌다. 모든 걱정을 덜어내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 교수님께 무조건 수술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일산차병원 갑상선 센터의 진료 시스템은 잘 정비되어 있다. (전반적인 프로세스는 세브란스와 거의 동일하다.)
내가 겪은 일산차 진료 과정은 이랬다.
1. 교수님 진료가 끝나면, 코디네이터 선생님을 만나 수술 일정을 잡는다,
2. 초진 당일, 수술 전 검사(초음파, 목 x-ray)를 진행한다.
3. 김희준 교수님께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수술동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나는 이미 고대안암에서 대부분의 수술 전 검사를 받았으므로, 과정이 조금 단축되었다. 완전 초진인 경우엔 조금 다를 수 있다. 또 목 x-ray는 모든 환자가 받지는 않는다. 나는 이전에 목 디스크 진단을 받은 적이 있어서 검사했다.)
솔직히 기대는 안 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젊은 간호사 선생님이 서류더미에 파묻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태에서 수술일과 입원일정을 잡고, 주의사항을 건조한 목소리로 빠르게 설명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일산차 코디 선생님도 당연히 바쁘실 텐데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직접 제작한 <갑상선암 수술을 위한 안내서>를 펼쳐 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읽어주며, 수술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무척 따뜻하고 푸근했다. ‘어떻게든 이 환자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느낌이 묻어나는 설명이었다. 상담실을 나서려 할 때, 선생님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파이팅!”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 홀로 갑상선암과 싸우는 게 아님을. 이 병원에선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코디 선생님도 내가 이길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정말 든든했다.
초음파와 목 x-ray 검사 후, 김희준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수술 후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셨다.
“박정수 교수님이 수술하실 때,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3가지가 있습니다. 출혈관리, 부갑상선 보존, 성대 보호입니다.”
설명은 이렇게 이어졌다.
“목 부분인데 지혈이 잘 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그리고 부갑상선은 우리 몸에서 칼슘 농도를 조절하는 기관이에요. 갑상선에 바로 붙어있는데, 갑상선을 떼면서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수술 후, 손발 저림 등의 증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갑상선은 성대를 둘러싸고 있어서 수술 후 목소리가 잘 안 나올 수 있어요.”
여기까지는 고대 안암병원에서 들었던 내용과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순간, 김희준 교수님의 한 마디가 뇌리에 박혔다.
“그런데 부갑상선 기능 저하증상이나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경우는, 우리 환자 중 1% 미만이에요. 거의 없습니다. 박정수 교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술 포인트라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같은 내용을 설명해도, 설명의 방향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니.
고대 안암병원에서는 ‘이런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니, 환자가 그걸 감수해야 합니다.’라는 뉘앙스였다.
그런데 일산차 병원에서는 ‘우리는 그런 부작용이 생기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정말 감동했다. 병원 입장이 아닌, 환자 입장에서 고민하는 일산차 의료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수술 후, 환자의 삶의 질’까지 고민하고 배려하는 병원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 병원을 선택한 건 정말 하늘이 도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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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코디 선생님과 일단 5월 20일로 수술 일정을 잡았다.
“중간에 취소 자리 나올 거예요. 최대한 앞당겨 드릴게요.” 하셨는데, 정말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4월 29일에 취소한 환자가 있어 수술 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매주 금요일, 이 기록을 이어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