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고질병, 이식증
이제 11개월에 접어든 내 네 발 친구는 오래간 앓아 온 지병이 있다.
이 병은 약물로도 치료가 안 되고 자칫하면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매우 위험천만한 질병으로, 일명 이식증(pica)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닥치는 대로 주둥이에 넣고 보는 문제 행동이다.
이게 병이란 걸 인정하기까지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어리고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 넘치는 개린이 시절이었기에 사람 아기처럼 뭐든 입에 넣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이갈이 시기와 맞물려 이가 간지러울 것이라며 안쓰럽게 여기기도 했다.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한 뼘 만한 끈과 브래지어 후크가 보이는 위장 x-ray 사진을 착잡하게 보고 있을 때였다. 그때까지도 이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보이는 데 씹을 거리를 놔둔 내 잘못이라며 바닥의 모든 물건을 서랍에 쓸어 넣는 걸로 해결책을 찾았다고 여겼다.
X됐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건 공원 가로수 아래에 탐스럽게 놓인 타견의 똥을 덥썩 집어 먹었을 때였다.
산책을 시작한 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즉 약 4개월 때쯤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개가 위험물을 먹었을 때 취해야 할 행동 수칙'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발버둥치는 3-4키로짜리 강아지를 재빠르게 안아 들고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게 비스듬하게 들어 흔들어댔다. 그러나 입맛을 다시며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던 그 눈빛은...
그때 느낌 그 묘한 배신감과 분노, 똥보고 놀란 가슴, 당황스러움 등 온갖 감정이 뒤섞여 그 자리에 얼어 붙어 있었다. 다행히 햇볕에 바삭하게 잘 말린 똥이라 양치와 달달한 껌으로 입냄새는 제거했으나 그 충격은 명치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이 친구는 풀, 낙엽, 줄기 같은 긴가민가한 것부터 종이, 휴지 같은 일반적인 것 머리핀, 고무줄, 풍선 심지어 돌멩이 같은 위험 천만한 것까지 입에 넣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나는 입 안에 손을 집어 넣어 억지로 끄집어도 내보고, <세나개>에서 비슷한 증상이 보이는 강아지들을 보며 대책도 세워보고 신 걸 싫어한다기에 레몬도 사서 직접 즙을 내 먹으면 안 될 것에 발라 보기도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레몬즙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강아지도 더러 있다던데 그게 우리집 강아지일 줄이야.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위험한 걸 먹기 전에 피하는 게 당시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산책을 하는 30~1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이 친구가 킁킁거리는 경로를 놓쳐선 안 됐다. 전방 5m 앞에 따끈따끈한 똥이 있으면 피해 가야 하고, 고무줄이나 담배꽁초로 코가 향하는 순간 목줄을 잡아 당겼다.
그러나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던 게 최악의 방법이었단 걸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더 이상 산책이 즐겁지 않았다.
같이 나가서 즐겁게 냄새 맡고 뛰어 다니고 공놀이를 하고 방긋 웃는 친구의 얼굴을 보는 게 이 산책 시간의 즐거움이었는데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었다.
일할 때만 쓰는 안경까지 챙겨가 바닥에 뭐가 있는지 내내 날카롭게 곤두선 채로 걸어야 했고 조금이라도 바닥이 지저분한 거리쪽으로 가면 목줄을 세게 움켜쥐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목줄을 쥔 보호자가 긴장하면 강아지도 덩달아 긴장한다.
강아지 입장에선 궁금한 냄새가 나서 맡았을 뿐인데 가차 없이 뒤에서 잡아 당긴다. 영문을 모르겠는데 기분은 나쁘다.
서로에게 불쾌한 시간일 뿐이었다.
산책은 강아지가 좋자고 나가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그땐 몰랐다. 보호자에게도 산책은 좋은 시간이어야 한다.
이렇게 서로가 못마땅한 산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자 역효과가 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1.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것도 먹는다.
2. 조급하게 냄새를 맡고 조급하게 걸어다닌다.
3. 먹어선 안 되는 것을 입에 넣고 있을 때 내(보호자)가 다가가면 씹지도 않고 삼킨다.
4. 산책 중 나(보호자)와 가까이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왜 고양이가 아닌 강아지를 데려와서 1일 1산책의 저주에 걸렸을까, 어쩌면 똥에 무슨 영양분이라도 있지 않을까 영양학 책까지 뒤지던 눈물의 나날이었다. 설상가상 사이까지 멀어지기 시작해 서먹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이거 그냥 할 수만 있으면 집에서 365일 감금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여느 날과 같이 산책을 하기 위해 골목을 지나던 길이었다. 나보다 먼저 담배꽁초를 발견한 친구가 담배꽁초를 향해 어기적어기적 다가갔다. 뒤늦게 발견한 내가 어어... 하기도 전에 냄새를 맡고 싱겁게도 휭하니 지나갔다.
원래 같으면 먹었을 담배꽁초를 먹지 않아서 놀란 게 아니었다. 원래부터 이 친구가 담배꽁초를 먹는지 안 먹는진 난 알지 못했다. 먹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늘 눈앞에서 잡아 당겼으니까. 어쩌면 원래부터 냄새만 맡고 먹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신호가 이식증의 완치를 알리는 기적 같은 신호탄 뭐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이 친구에게 이식증이 생긴 원인을 알게 된 계기였다.
불이 위험하다는 걸 모르는 인간은 불에 손부터 넣으려고 한다. 굳이 장작을 맨손으로 꺼내서 화상을 입고서야 '아이고~ 이거 위험하네~' 하지 않는 이유는 불에 가까이 가는 순간 그 열기를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감지하기 때문이다. 또는 가벼운 화상을 입고 쓰라림을 느끼고 나면 다음부턴 불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안전거리를 유지할 것이다.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인간보다 후각이 1만배 이상 뛰어난 개에겐 코가 곧 손이다. (코끼리 아저씨만 코가 손인 게 아니어떤 거시다!) 코로 냄새를 맡아 위험한 것, 안전한 것을 판별한다. 냄새를 맡고도 긴가민가할 땐 입에 넣어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강아지는 먹어도 되는 것, 먹으면 안 되는 것을 스스로 구분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때 어미의 역할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2개월 때부터 분양되기 시작한 아기 강아지들의 어미 역할은 보호자가 도맡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란 어미는 이 친구가 세상을 탐색하기 시작할 때 위험한 것을 애초에 차단시켜 버렸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구분하기도 전에 애초에 가까이 가질 못하게 하면서 오히려 욕구를 부채질 한 셈이다.
그때부터 이식증 치료를 위한 산책 시 주의할 점은 딱 두 가지였다.
1. 먹어서 당장 탈이 날 만한 게 아니라면 인내심을 가지고 내버려 둘 것
2. 먹어서 당장 탈이 날 만한 거라면 냄새를 맡고 입에 넣기 전에 간식을 들이밀 것
산책 외에 집에서 할 수 있는 훈련도 병행했다.
1. 산책할 때 집어 먹을 것 같은 것들(종이, 비닐, 휴지) 안에 간식을 넣어 노즈워크를 할 것
2. 앉아, 엎드려 훈련(필수!)
그렇게 약 4개월이 흐르고 결국! 완치했습니다!
라는 해피 엔딩이면 좋을 텐데 현실은
놀랍게도 한 일주일, 한달만 하면 기적 같이 산책의 명견이 되는 게 아니었다.
잠시 한눈 판 사이에 덥썩 집어 먹기도 했고, 먹을 걸 준 적이 없는데 쩝쩝거리는 걸 보며 불안에 떨기도 했고, 어제 먹은 게 오늘 똥으로 안 나오면 병원을 가야 하나 더 기다려야 하나 오매불망 하루 세 번 나오는 그 똥을 기다리기도 했다.
다행히 개선된 부분은 있었다. 우선 밖에서 종이나 비닐을 만나면 찢어발길 뿐 목구멍으로 넘기진 않게 되었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돌멩이는 딱딱하고 맛이 없는 거란 걸 배우게 되었다. 담배꽁초는 킁킁대지도 않게 되었고 낙엽 위는 배변하기 좋은 장소가 되었다.
아직 낙엽 속 파묻힌 고양이 또는 타견의 똥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그것도 어떤 건 먹고 어떤 건 안 먹는(왜인지 그 이유는 평생 모를 거 같지만) 단계에 도달했다.
지금도 산책하는 모든 순간이 이 친구와 나에겐 훈련이자 놀이 시간이자 눈치 싸움의 연속이다. 아마 어쩌면 평생 우리는 눈치 싸움을 하면서 산책을 이어나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서로 몰랐던 영역을 알아가고 이해하려는 것이야 말로 교감의 시작이라 여기며... 오늘도 영하 10도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