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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Feb 03. 2024

마음속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한다

도도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퇴사 후에는 지인이 부탁하는 변호사 업무 육아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하고 있고, 현재로서는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돌보는 일이 주된 일과가 되었다. 그렇게 지구별 여행을 시작한 아이에게 아름다운 지구별 하나하나 안내하는 일을 맡고 있다. 아이가 살아갈 생의 첫 부분을 함께 하고 그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와 3년이는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 엄마에게, 아빠에게도 반드시 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이 있어야 모성애와 부성애도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면서 엄마 역시 아이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 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랑을 아이에게 모조리 퍼다 주는 역할을 담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육아에만 매진하다 보면 결국 엄마는 스스로 소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듯하다. 내 안에 있는 자아가 텅 비어 버리는 느낌, 이 느낌을 스스로에 대한 공허함이라고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육아를 계속하다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마음에서 '에너지가 소진되었으니 이제 나의 에너지 좀 채워달라'는  외침이 올라오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아이와 보내는 그 시간이 유난히 힘들게 느껴진다. 아이의 작은 칭얼거림에도 엄한 엄마가 되어 버린다. 아이의 장난에도 웃음이 아닌 화난 얼굴이 되어 버린다. 그런 날에는 나와 아이 사이에 날아다니는 작고 귀여운 행복 요정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이 세상이 검 감옥 같이 느껴지는 그런 날이 있다.


만약 당신이 아이와 유난히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는 엄마이고 그런 기분을 느낀다면 최소 몇 시간이라도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마련해 보는건 어떨까 한다. 만약 그 시간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엄마가 가진 내면의 에너지는 금방 고갈되어 버릴 것이다.


나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3년이 다 되어 가도록 매일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잠이 들 때까지 도도는 거의 나와 함께 있었다. 우리는 정말 한 몸처럼 매일매일 같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내 마음속에서 이 외침이 들렸다. "도도가 예쁘고 사랑스럽기는 해. 근데 그것과 별개로

 나도 좀 쉬고 싶다고!!!".

그렇다. 엄마에게 마음이 쉬는, 마음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시간을 찾아야 했다. 하루 중 언제 마음속에 차곡 차고 쌓여가는 찌꺼기들을 비우고 내면을 다시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동안 유행했던,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유행하는 미라클 모닝을 생각했다.


 새벽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멋진 일이다. 하지만 새벽 4시 혹은 5시에 일어나 보니 아침에 푹 자지 못해 하루종일 졸렸다. 그렇게 피곤한 몸으로 도도와 하루 종일 놀려니 쉽지 않았다. 결국 새벽에 마음 충전하기 프로젝트는 실패하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디엔가 나에게 맞는 시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유심히 눈을 뜨고 나에게 맞는 시간을 생각했다.


그러다 발견한 시간이 있었다. 도도는 27개월부터 낮에 자던 낮잠을 자지 않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밤에 일찍 잠들었다. 도도의 경우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놀다가 밤 8시 30분이면 에너지 방전으로 쓰러져 재우는 과정 없이 꿈나라로 떠난다. 밤에 일찍 자는 도도 덕분에 도도가 잠든 후 약 3시간 정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세 시간 동안에는 혹시나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생길 때는 그 업무를 처리했다. 하지만 이 시간 동안의 주된 루틴은 요가 30분, 브런치 글쓰기 또는 책 읽기로 정했다.


이렇게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나만의 3시간을 가지려 했지만 처음에는 내 의지와 다르게 어떤 날에는 도도를 재우다 피곤해 먼저 잠들어 버린 날도 있다. 그래도 가능하면 하루 중 소중한 3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도도를 재우다 잠깐 잠들더라도 한 시간 정도 자다가 깨어나  시간을 가지려 했다. 그냥 자고 싶은 날도 있지만 어떻게라도 낑낑 거리며 일어나 요가를 하고 글도 쓰고 책을 읽고 잠이 들면 그냥 그날 하루하루 잘 살고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든든한 마음으로 또 내일을 시작하는 힘을 얻게 되었다.



특히 책 읽기와 브런치 글쓰기를 통해 공허해진 마음이 많이 다독여졌다.


사실 도도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투리 시간이 종종 생기기도 한다. 도도가 혼자 집중하며 놀아주는 시간이 그런 시간이다. 그런 자투리 시간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책 읽기를 시작했다. 장르는 소설, 에세이, 건축, 인문, 자기 계발서, 시집, 육아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사실 도도가 혼자 노는 틈을 타 옆에서 책을 읽으려 책장을 펴면 도도는 금방 옆으로 쪼르르 와서 나도 읽겠다고 하기 때문에 많은 양을 집중해서 읽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한 장에서 두장 정도 읽어 내려가더라도 그 순간 육아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때가 많다. 종이 책이 가지고 있는 사각 거림과 종이에 단정히 나열되어 있는 단어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거기에 작가의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잠깐의 시간만으로 차가워지려는 마음은 금세 따뜻하게 변해 인류애로 가득 찬다. 그렇다 보니 책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요즘 읽고 있는 류시화 작가님의 신작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첫 장을 넘기면 류시화 작가님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그 말을 읽으며  또한 그렇다고 되뇌었다. 또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말합니다.

"주머니나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는 것은 특히 불행한 시기에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이 책을 읽는 당신과 나는 단순히 같은 책 한 권 읽는 정도가 아니라, 글 쓴 작가와 그 글 읽는 사람의 더할 수 없이 돈독한 사이입니다. 당신과 나의 고독이 통해서 두 고독이 환해지고 두 세계의 접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류시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 책을 읽는다. p5-6>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말처럼 곁에 위로와 응원의 말이 적힌 책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아이와 하루 종일 있을 때 문득 어른과의 대화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작가의 한마디가 녹아 있는 책 속 한 문장만으로도 지금 이곳 있는 나와 책을 지은 저자 함께 연결되어 있 고독한 마음이 든든하게 채워는 느낌을 받는다. 나의 고독과 작가의 고독이 만나 두 고독이 환해져 짧은 순간이라도 글 쓴 작가와 그 글을 읽는 나는 더할 수 없이 돈돈한 사이가 된다.


또 나의 내면을 채워 주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었나 싶다. 작년 12월부터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브런치에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독자에게 무슨 요일에 글을 올린다는 약속을 의미하는 연재를 시작하지 못했다. 피곤한 몸에 지쳐 약속을 어기게 되면 미안 것이고,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 스스로에게도 좌절감을 안겨줄까 싶어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저 자세를 취하며 브런치에 슬금슬금 쓰고 싶을 때 글을 다.


그러다 2024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면서 1월 1일이 주는 시작의 힘을 빌려 브런치 연재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독자와의 약속이 있다 보니 혹시 오늘  글감이 생각나지 않아 약속을 못 지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앞선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일을 하기 전에 걱정이 앞서는 인간인 듯하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면서도'도도와 시간을 보내면서 글감을 생각해 보자.' 다짐하게 된다. 하지만 아침에 생각한 글감은 좀 별로인 것 같아 점심이 되면 다른 글감으로 바꿔 생각하고, 그러길 반복한다.


 결국 밤 9시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는 처음부터 어떤 글을 쓸지 10분 정도 멍하니 앉아 있게 된다. 사실 글의 길이가 좀 길어질 경우 초안을 쓰고 퇴고까지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조금 더 고민하다가는  12시를 넘겨 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마음 급해진다.

'어쩔 수 없다. 그냥 뭐라도 쓰자. 이렇게 글쓰기가 시작된다.  고칠 때 잘 고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키보드를 계속 두드린다.


 이야기를 써내려 가면서 마음속에는 이렇게 외친다. '이상해, 이상한데, 저번 것보다 이상해. 그만 써!' 하지만 이때가 정말 중요하다. 마음의 소리에 따라 키보드 치는 것을 멈추고 노트북을 절대 닫아서는 안된다. 그런 마음의 소리가 귓가에 계속 들리더라도 꿋꿋하게 끝까지 써내려 가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내면에서 올라오는 자책과 부끄러운 항변에 노트북을 닫아 버리고 소파에 벌렁 누워 버리곤 했다. 그리고 결국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독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 '너네가 뭐라고 해도 나는 쓴다.'라는 마음으로 계속 써야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미완성의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창피함, 아직 부족하다는 좌절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 반면에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토해 내면서 얻게 되는 시원함, 독자와의 약속을 지켜 냈다는 뿌듯함, 작은 시작이지만 짧은 글로 그 누군가에게 위로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명감이라는 긍정의 감정까지 다양한 감정이 글쓰기에 들어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말라가는 마음속 고른 영양분으로 서서히 채워지기 시작했.



퇴사 후 도도에게 지구별 여행을 안내해 주는 안내자 역할을 맡으며, 나 역시 과거에 예상하지 못했던, 계획하지 않았던 그런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곳에서 책 속에 작가들을 만고, 글쓰기를 만났다. 그것들은 삶 속에서 내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들을 가볍게 느끼게 해주는 기술을 알려 주었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섬>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같이.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가 소설 <섬>에서 썼다.
"마음이 어두운가? 그것은 너무 애쓰기 때문이라네. 가볍게 가게, 친구여, 가볍게. 모든 걸 가볍게 하는 법을 배우게. 설령 무엇인가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가볍게 느껴보게. 그저 일들이 일어나도록 가볍게 내버려 두고 그 일들에 가볍게 대처한느 것이지. 짊어진 짐들은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게. 너의 주위에는 온통 너의 발을 잡아당기는 모래 늪이 널려 있다. 두려움과 자기 연민과 절망감으로 너를 끌어내리는. 그러니 너는 매우 가볍게 걸어야만 하네. 가볍게 가게 친구여."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류시화, p83

 

*메인 이미지: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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