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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May 11. 2024

금옥 씨의 새집 7

달러할머니, 그리고 인연의 끈

"파스락 파스락"

금옥 씨가 달러 할머니 집을 향해 걸을 때마다 금옥 씨 손에 들려있던 검은색 비닐봉지에서 는 파리한 소리 금옥 씨 뒤를 바싹 뒤쫓고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 안에 얌전히 들어앉아 있는 새빨간 쇠고기 한 근이 금옥 씨에게 '금옥아, 어서 가자, 어서 가자' 속삭이는 듯하다. 금옥 씨 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한. 금옥 씨는 달러 할머니가 도대체 그렇게 큰돈을 이름까지 감추면서 자신에게 빌려줬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하지만 정답을 알 수 없다. 더 이상 그 답을 알 수 없다는 확신이 들수록 조급했던 금옥 씨 마음이 더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금옥 씨가 박사장님 부동산에서 나와 달러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하려 할 때에도 김사장과 박사장은 굳이 금옥 씨에게 달러 할머니의 집을 알려주지 않았었다. 박사장과 김사장이 금옥 씨에게 그 집을 알려주지 않더라도 금옥 씨가 그곳을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비단 금옥 씨뿐 아니라 오금동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달러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달러 할머니가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집은 그런 집이었다. 아마 오금동에 처음 온 사람이 지나가다 집을 한번 보게 된다면 누구나 이렇게 물을 것이다.

"저런 집에는 누가 사나요?" 

질문을 들은 누구나 그 집에 달러 할머니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다시 자신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 내가 오금동에 갔었는데 그곳에는 한번 보면 기억할 수밖에 없는 꽤나 인상적인 2층 양옥집이 있다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했으리라.


달러 할머니는 오금동 언덕 꼭대기에 있는 2층 양옥집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2층 양옥집은 붉은색 벽돌 벽으로 높다랗게 둘러 싸여 있었다. 큰 담장 덕분에 길에 서서 고개를 하늘 높이 들고 발꿈치를 최대로 들어도 붉은 벽돌 위를 수놓은 빨간색 장미 덩굴만 눈에 들어올 뿐 2층 양옥집에 대한 그 무엇도 볼 수 없었다. 밖에서는 어떤 것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누구나 높은 빨간 벽돌 너머에 무엇이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알고 있었다. 누군가 철옹성 같은 이 문을 열고 들어가 2층 양옥집을 살펴본 후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또 그 이야기가 입과 입으로 전해지면서 일지도 모른다.


붉은색 벽돌 담을 넘어가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커다란 검은색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검은색 문이 마치 온갖 빛들을 숨겨 놓기라도 한 듯 새하얀 빛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갑자기 만난 빛의 눈부심을 피해 한 걸음씩 옮기면  그 안으로 널찍한 푸른 잔디로 덮여있는 마당이 보일 것이고, 양옆에 정갈하게 심어놓은 작은 키의 올리브 나무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걸으면 건축 잡지에서 튀어나온듯한 새빨간 2층 집이 나올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이 집을 지은 건축가는 한국에서 한 때 유명세를 떨치다 뒤켠으로 사라진 노건축가라는 이야기도 있고, 일본 유명한 건축가가 이 집을 지은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2층 양옥집 스스로 풍겨내고 있는 개별성과 달러 할머니라는 명칭이 가진 고유성과 대조적으로 실제로 달러 할머니를 봤다거나 직접 이야기를 해봤다는 사람을 만나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금동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 집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진정 사실인지에 대한 진위를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런 신비로움에 둘러싸여 있는 2층 양옥집은 오늘도 4월에 돋아난 초록색 아기 덩굴들과 함께 어우러져 여전히 세련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검은 구두를 신고 빨간 투피스를 입은 금옥 씨가 커다란 대문 앞에 도착해 굳게 닫힌 문에 손바닥을 올려놓으며 "휴우" 하며 긴 숨을 내쉰다. 금옥 씨 목 안에서 깊이 흘러나오는 숨결에는 유난히 길고 높은 언덕을 올라오느라 나오는 헐떡이는 숨 소문만 무성한 달러 할머니 집 앞에서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긴장감이 더해진 이 뒤섞여 있었다.


정신을 차린 금옥 씨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너무나 커다랗고 높은 검은색 문 때문에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커다랗게 버티고 서있는 검은색 문 앞에 서고 보니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지극히 서민스럽고 그 어떤 각도 잡히지 않는 흐물흐물한 검은색 비닐봉지가 유난히 초라하게 느껴다. 금옥 씨는 종이백에 담긴 작은 선물 상자라도 하나 사 올걸 했나 후회해 본다. 하지만 이곳에는 무엇을 가져오든 작고 초라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금옥 씨는 여기에서는 무엇이든 작아 보일 테니 다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띵동" 금옥 씨가 하얀색 초인종 벨을 누른다.

"들어와라" 얇으면서 살짝 떨림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금옥 씨 귀 안에 들어와 박힌다. 인터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서 나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가는  목소리 안에 까랑까랑함이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열릴 것 같지 않던 검은 문이 철커덕 소리를 낸다. 금옥 씨 키보다 두 배는 높은 검은색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한다.  


금옥 씨의 구두가 내는 또각또각 소리와 비닐봉지의 파스락 소리만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금옥 씨는 문을 열고 들어오자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문 밖과 문 안의 세상이 전혀 다른 세상인 듯. 양 옆에 버티고 서있는 긴 세월을 버텨낸 커다랗게 자란 소나무들이 서로 만나서 만들어진 작은 터널로 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나무 그늘에 가려 그늘졌던 길이 점점 밝게 변하기 시작한다. 오솔길 끝에 도착해 고개를 들어 계단 하나를 올라 바라보니 새파란 잔디가 펼쳐져 있는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다른 공간의 변화다.


 새파란 잔디는 누군가 세심하게 정리해 놓았음을 알 수 있게 그 위를 걸을 때마다 잔디의 폭신폭신한 감촉이 발 전체에 간질간질 전해져 온다. 마치 맨발로 잔디 위를 걷는다 하여도 전혀 따가움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포근함이다. 새파란 잔디 너머에는 붉은색 꽃을 화사하게 피어낸 4월의 동백나무에 소담하게 매달린 빨간 꽃들이 입을 야무지게 다물거나 혹은 화사하게 피어나 유난히 푸른 마당 곳곳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나무들 사이에 숨어 여기저기 지저귀는 새소리는 달러 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이 공간을 더욱 완벽하게 다.


잔디밭 위에 놓여 있는 검은 파라솔 철제 의자에 앉아 있던 노인이 잔디밭에 들어선 금옥 씨를 보더니 빙긋 웃으며 금옥 씨를 향해 다가온다. 금옥 씨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노인이 바로 달러 할머니라는 사실을 직감하고는 황급히 인사를 하려 했다. 하지만 금옥 씨보다 재빠르게 금옥 씨에게 다가온 노인이 금옥 씨의 어깨를 툭치며 말한다.

"네가 금옥이냐?"

"예, 어르신. 제가 금옥이에요. 어떻게 제 이름을...."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노인의 말에 놀란 금옥 씨가 말을 잇지 못한다.

"내가 니 이름을 왜 모르냐. 야, 구두까지 신고 높은데 올라온다고 고생했다. 저기 가서 좀 앉자." 노인은 금옥 씨의 손을 테라스로 끌며 말한다.

"네.." 노인의 손에 이끌린 금옥 씨는 알겠다고 대답을 하며 노인이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테라스 의자에 앉게 되었다.

"야, 잘 지냈니?" 노인은 마치 금옥 씨를 너무나도 잘 아는 듯한 어투로 말한다.

"예, 어르신. 다름이 아니라 박사장님과 김사장님께 전해 듣고 급히 왔어요.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약소하지만 소고기 좀 사 왔어요." 금옥 씨가 부끄러운 듯 검은색 비닐봉지를 주섬 주섬 꺼내 노인에게 건넨다.

"그래, 소고기 좋지. 그냥 오지 뭐 이런 걸 사 왔니. 니는 이것저것 사다 주는 거 여전하 구미. 야, 이거 마셔라. 녹차인데 너 온다는 전화받고 여기서 너 올라오는 모습 보가 내가 방금 우렸지" 노인은 금옥 씨가 사 온 소고기가 마음에 드는지 웃으며 금옥 씨에게 녹차를 권한다. 노인이 건네는 녹차 잔을 받으며 시선을 돌리니 오금동 전체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르신, 여기 전망이 참 좋네요." 예상하지 못했던 전망에 놀란 금옥 씨가 노인에게 말한다.

"좋지, 좋지. 니 새벽마다 여기저기 배달하고 다니는 거 말이야. 여기서 다 보이지. 맨날 시뻘건 색 옷 입고 배달해서 그런지 아주 잘 보인디." 노인이 껄껄 웃으며 금옥 씨에게 말한다. 금옥 씨는 껄껄 웃는 노인에게 왜 자신에게 그런 큰돈을 빌려 주었는지 묻고 싶지만 눈치만 보고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르신. 저는 어르신을 처음 뵙는데요. 어르신은 어떻게 저를 알고 계시나요?" 금옥 씨가 묻는다.

"그럼 금옥이야 내가 예전부터 알았지. 네가 몇 년 전에 나한테 선물도 엄청 많이 줬었는데 기억 안 나나?" 노인이 찡긋 웃으며 말한다.

"제가요? 글쎄요... " 어리둥절 해진 금옥 씨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 분선이 가 너한테 내 말 안 했나 보네." 노인이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말한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 분선씨의 이름을 들은 금옥 씨가 깜짝 놀라 말한다.

"어머니요? 저희 어머니를 어르신이 어떻게 아세요?"

금옥 씨의 이야기를 들은 노인이 잠시 금옥 씨의 얼굴을 조용히 응시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커다란 소리로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포근한 잔디밭에 숨어 찌르 찌르 울던 풀벌레 소리가 갑작스레 터진 노인의 커다란 웃음소리 가려져 버린다. 잠시 후 노인의 웃음소리 사라지고 고요한 바람소리만이 노인과 금옥 씨 사이의 공기를 메우고 있다.


*이미지 출처: pinterest

* 연재가 매번 늦어지고 있네요. ㅠ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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