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 놀던 나비의 날갯짓이 일으킨 작은 바람이 커지고 커져 어느 순간 커다란 바람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올 때가 있다. 사람 사이의 인연의 이치에도 나비효과가 존재한다. 오늘 내가 건넨 작은 친절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따뜻한 마음이 되고, 그 마음은 또다시 다른 마음과 연결되고 연결되어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꽃 한 송이가 풍기는 향기는 또다시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아 또 다른 인연이 된다. 인간이 쌓은 작은 인연의 점은 쌓이고 쌓여 하나의 덕이 되어 돌아온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그리고 우리를 스치는 인연에 대한 다정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야!! 너 진짜 정신이 있는 거야!!"
철이가 버럭 외치는 목소리가 작은 안방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이라 철이의 목소리는 더욱 크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철이가 금옥 씨에게 소리를 지르자 금옥 씨 어깨가 움찔한다. 부동산 사장님 부부가 청약 계약금으로 3천만 원을 빌려 준다고 했을 때 받으면 안 되는 돈이라고 생각했던 금옥 씨였기에 역정을 내는 철이에게 어떤 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철이와 금옥 씨 둘만으로도 이미 비좁은 안방에 무거운 침묵까지 비집고 들어와 앉아 좁은 안방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래도 무슨 변명이라도 해보려는 금옥 씨는 '나도 그 자리에서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김사장님이 이미 통장으로 3천만 원을 보내 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쩔 수 없었다.'라는 답변을 급히 생각해 냈지만 이 말 역시 구차해 보여 입을 꼭 다물고 씩씩 거리고 있는 철이를 바라본다.
"자는 애들 깨요. 조용히 말해요. 나도 그 돈 안 받으려 했는데.... 이제 2천만 원만 구하면 청약 계약금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어쩔 수 없었어요." 금옥 씨가 한참의 침묵을 깨고 나와 꾹 다문 입을 연다.
"어휴, 말이라도 못 하면.... 이 사람아. 그래도 그렇지. 그걸 받으면 어떡하냐고. 그리고 너 말대로 나머지 2천만 원을 구했다고 치자. 빌린 돈들은 언제 갚을 건데. 너 돈 있냐고!!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야. 도대체!!!!!!" 철이도 머리를 미친 듯이 옆으로 흔들며 다시 소리를 빽 질러댄다.
"그래도...." 그래도 지금 받고 나중에 내가 일해서 갚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금옥 씨가 말을 잇지 못한다.
"야!!!! 내일 당장!! 김사장네 가서 3천만 원 돌려주고 와! 나 더 이상 말 안 한다!" 철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이제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험악하게 말하고 방을 나가 버린다.
벽에 달린 시계는 이미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다. 내일 일을 나가기 위해서는 잠을 청해야 했지만 금옥 씨는 한스러운 마음이 자꾸만 올라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금옥 씨가 베고 있던 분홍색 꽃이 과하게 그려져 있는 베개로 금옥 씨 눈물이 소리 없이 계속 흘러내려온다. 베개는 이미 축축해져 베개에 그려진 꽃 색이 유난히 선명해 보인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은 검고 좁은 방 안에 금옥 씨 눈물만이 홀로 빛을 발하며 반짝이고 있다.
금옥 씨 마음과 상관없이 시간이 흘러 새벽 5시가 되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한 금옥 씨가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을 확인한 후 부은 눈을 겨우 뜨며 이불에서 조용히 일어난다. '그래, 슬프고 세상이 다 싫어지고 눈물이 나도 어쩌겠어. 그렇더라도 오늘을 살아야지. 그렇게 오늘을 살아야 지금 이 슬픔이 가고 또 다른 좋은 일이 오겠지. 괜찮아.' 금옥 씨는 안방 문을 열고 안방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작은 화장실로 가 낡은 세면대 앞에 선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본다. 새벽빛이 파랗게 비쳐서인지 축 처진 입꼬리와 퉁퉁 부은 눈이 유난히 슬퍼 보이고 못생겨 보인다. 이렇게 못생긴 얼굴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금옥 씨가 거울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혼자 씩 웃어본다. 누군가 바라보고 있다면 울다가 웃는 정신 나간 여자 같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어떤가. 이렇게 웃었으면 된 거라고 생각하며 아직은 차갑게 느껴지는 물로 힘차게 세수를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어둑어둑한 새벽이지만 이미 금옥 씨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금옥 씨는 매일 아침 조금 더 생기 있게 보이기 위해 짧은 파마머리에 분홍색 고데기를 여기저기 말아 놓는다.. 얼굴에 로션도 바르고 곱게 화장을 마친 금옥 씨는 좁은 집임에도 바쁜 걸음으로 부엌을 향한다. 부엌에서 금옥 씨는 아이들과 철이가 먹을 아침과 점심 간식을 재빠르게 준비한다.
오늘 메뉴는 짜장이다. 짜장은 금옥씨네 자주 등장한다. 짜장 하나면 철이와 아이들이 편하게 밥 한 공기를 먹을 수도 있고, 짜장 한대접이면 이틀 정도는 질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금옥 씨는 어젯밤에 미리 다듬어 놓았던 양파, 당근, 호박, 당근을 날카로운 칼을 들고 싹둑 썰기를 시작한다. 금옥 씨 부엌에 기분 좋은 투닥투닥 칼질 소리가 퍼져 나간다.
"엄마, 뭐 해?" 아침에 항상 일찍 일어나는 현정이가 방문을 열고 나오더니 쓱 부엌 의자에 앉는다.
"현정이, 일어났구나." 금옥 씨가 웃으며 현정이를 잠시 바라보고 다시 달구어진 프라이팬으로 고개를 돌린다.
엄마가 해주는 메뉴 중 유독 짜장을 좋아하는 현정이는 "우와, 짜장이다."를 외치며 금옥 씨가 요리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본다. 야채를 모두 썰은 금옥 씨는 프라이팬에 돼지비계를 구워 기름을 만든 후 삼선 춘장을 꼭꼭 짜서 볶기 시작한다. 삼선 춘장 상자에 그려진 요리사 아저씨가 씩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치이 이이익" 돼지기름에 까만색 춘장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볶아지기 시작한다.
"엄마, 근데 짜장 할 때 춘장은 왜 볶는 거야?" 현정이가 궁금해서 묻는다.
"응, 엄마가 중국사람이 하는 짜장면집에서 짜장을 배웠는데 이렇게 볶아야 맛있다고 해서."
돼지기름에 볶아진 춘장이 반짝반짝 윤을 내기 시작한다. 금옥 씨는 '그래, 지금이야.'라고 외치며 반짝이는 춘장에 썰어 놓은 야채를 넣고 볶기 시작한다. 새하얗고 초록빛을 띠던 야채들은 순식간에 까만 춘장에 휩싸여 새까맣게 변해 버린다. 어떤 것이 양파인지 호박인지, 당근인지 알 수 없게 모두 까만 세상이다. 마치 앞으로의 일이 이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금옥 씨의 마음과 같아 보인다.
"엄마, 그다음에는 물 넣고 전분가루 넣는 거 맞지?" 매번 금옥 씨 요리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현정이가 말한다.
"응, 맞아. 우리 현정이 잘 아네." 금옥 씨가 대견한 눈빛으로 현정이를 바라본다.
"엄마, 전분 물은 내가 만들게." 현정이는 찬장을 열어 큰 수저로 전분가루를 한 숟가락 뜨고 물에 섞어서 금옥 씨에게 건넨다.
"현정아, 고마워." 금옥 씨가 말한다.
금옥 씨는 지글지글 볶아지는 팬에 물을 넣고 춘장과 야채들이 물 안에서 보글보글 끊기 시작하자 현정이가 건네준 전분 물을 팬 안에 동그랗게 뿌려준다. 철퍽거리던 짜장이 금방 걸쭉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현정아, 이거 이제 끊이기만 하면 되거든. 네가 좀 보고 있다 꺼주렴. 그리고 밥은 지금 되고 있으니까 아침으로 아빠랑 오빠, 동생이랑 같이 먹고. 알겠지?" 시계가 이미 6시를 가리키자 마음이 급해진 금옥 씨는 현정이에게 마무리를 맡기고 자리를 떠난다.
"네, 엄마. 이 정도는 쉬워요. 걱정 말아요." 현정이가 배시시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금옥 씨는 안방으로 들어가 재빠르게 빨간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선다.
"현정아, 엄마 먼저 간다. 있다 학교 잘 다녀와." 금옥 씨는 현정이에게 급히 인사를 남기고 문을 나선다.
"응, 엄마. 근데 엄마 배고프겠다." 현정이가 짜장을 만들고 빈속으로 나가는 금옥 씨가 안쓰러워 걱정이 담긴 인사를 한다.
바쁜 마음에 어떤 대답도 못하고 지하 계단을 후다닥 올라간 금옥 씨는 1층에 세워둔 책과 시험지가 가득 담긴 자전거에 훌쩍 올라탄다. 슬퍼도 외로워도 서로워도 그래도 나는 웃을 거야라고 외치는 금옥 씨의 하루가 시작한다.
자전거를 탄 금옥 씨는 한집 한집 정성을 담아 시험지를 돌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안부를 물어야 하는 집에 도착하면 초인종을 누르고 시험지를 하고 있는 아이가 재미있게 하고 있는지 요즘 어떤지 근황을 묻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언니! 언니!" 누군가 갑자기 등 뒤에서 금옥 씨를 부른다.
"어, 그린이 엄마. 여기는 무슨 일이야?" 금옥 씨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린이 엄마에게 반갑게 묻는다.
"언니, 배달 중이구나. 다름이 아니라 친구가 좋은 보험이 있다고 해서 들렀지. 어릴 적 친구인데 보험회사 다니거든. 보험인데 혜택이 어마어마하더라고. 선물은 물론이고 거기다가 3천만 원 대출까지 가능한 보험이래. 언니도 같이 가서 설명 들어볼래?" 그린이 엄마가 신이 나서 금옥 씨에게 설명한다.
"아니, 우리도 보험 많이 들었어. 지금 보험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 때문에... 응? 그린이 엄마, 근데 그 보험에 들면 3천만 원 대출이 가능하다고?" 금옥 씨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그린이 엄마에게 보험에 대해 재차 묻는다.
"응, 언니. 우리 이번에 돈이 좀 필요해서 알아보다 친구가 알려줬어." 그린이 엄마가 말했다.
"그린이 엄마, 나도 같이 가서 설명 들어도 될까?" 금옥 씨가 묻는다.
"언니, 그럼. 내 친구가 엄청 좋아하겠다. 저쪽 골목 끝 카페에서 보기로 했어." 금옥 씨는 그린이 엄마가 안내하는 길을 졸졸 따라간다.
"언니, 여기야. 들어가자." 그린이 엄마는 친구를 만나기로 한 카페로 금옥 씨를 안내한다.
점심시간이라 아직 카페 안은 한산하다. 카페 끝 구석에 빨간 뿔테를 쓴 여자가 두꺼운 서류파일을 챙기며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뜨인다.
"야! 지영아. 나 왔어. 언니, 저 친구야." 그린이 엄마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 금옥 씨 손을 잡고 빨간 뿔테를 쓴 여자가 있는 자리로 간다.
"민정아, 왔어? 다른 분도 같이 왔네. 안녕하세요." 보험 판매원 지영은 금옥 씨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다. 금옥 씨도 지영에게 인사를 한다.
"응, 지영아. 우리 신랑이랑 같은 경찰 아내분이셔. 이름은 금옥이 언니야." 그린이 엄마가 지영에게 금옥 씨 소개를 한다.
"안녕하세요. 오늘 민정이에게 보험을 좀 소개하려고 했거든요. 이번에 새로 나온 종신보험인데요. 보험에 가입하시면 월 10만 원 납입하시고 또 만기 후 되돌려 받으실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혜택이 참 좋아요. 가입 시 선물로 청소기를 드리고요. 또 연 2% 이자로 3천만 원까지 대출도 가능하답니다." 지영은 금옥 씨와 친구 민정에게 새로 나온 보험 상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저, 혹시 3천만 원 대출이요. 오늘 가입하면 바로 대출이 가능할까요?" 3천만 원을 대출받아 김사장 부부에게 어서 3천만 원을 갚자는 생각이 앞선 금옥 씨가 지영이에게 묻는다.
"음, 바로는 안되고요. 그래도 대출 신청하고 심사 마치기까지 일주일 정도 시일이 걸려요. 왜 급하신가요?" 급해 보이는 금옥 씨의 눈빛을 본 지영이가 말한다.
"네, 다른 게 아니라 이번 주 안에 3천만 원을 갚아야 할 일이 있어서요." 금옥 씨가 대답한다.
"혹시 가능할지도 몰라요. 저희 실장님이 현금이 좀 많으셔서 실장님이 가진 현금으로 3천만 원을 선생님께 빌려주시고 선생님이 신청하신 대출 3천만 원이 은행에서 지급될 때 다시 되돌려 주시면 되거든요. 잠시만요. 제가 전화 좀 해볼게요." 지영은 실장님에게 확인해 보겠다고 하며 카페에 설치된 전화기로 향한다.
"언니, 언니 뭐 급하게 돈 필요한 일 있어?" 그린이 엄마가 말한다.
"응, 그게 우리 청약 계약금 때문에 말이야. 3천만 원을 누가 빌려주기는 했는데 받으면 안 되는 돈이라 어서 돌려주려고." 금옥 씨가 대답한다.
그때 지영이 전화를 마치고 금옥 씨가 있는 자리로 오더니 말한다.
"선생님, 실장님께 여쭤 보니 된다고 하시네요. 오늘 보험 계약 하시면 바로 3천만 원 대출금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지영이 웃으며 말한다.
"그래요? 그럼 저 지금 보험 계약 할게요." 금옥 씨가 가방에서 볼펜을 꺼내며 말한다.
지영은 지금 당장 보험 계약을 하겠다는 금옥 씨의 이야기를 듣고 서류에서 계약서를 꺼내 금옥 씨에게 내민다. 이것저것 읽어볼 것도 없이 금옥 씨가 싸인이 필요한 부분에 사인을 한다. 그렇게 여러 장의 종이에 몇 번의 싸인을 마쳤다.
"선생님, 이건 3천만 원 대출 계약 신청서고요. 여기에 사인하시면 됩니다." 민정이 말한다.
"네, 알겠어요." 금옥 씨가 침을 꼴깍 삼키며 대출 신청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가방에 있던 도장을 찍는다.
"선생님, 다 되었어요. 그리고 3천만 원은 있다 오후 1시에 선생님 계좌로 입금될 거라고 하셨어요." 지영이 웃으며 말한다.
"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필요한 인연을 이렇게 만나네요." 금옥 씨가 고맙다며 민정에게 연신 인사를 한다.
"그린이 엄마, 나 이제 가봐야 해서 그린이 엄마 볼일 보고 가. 고마워. 나중에 연락할게." 어서 은행에서 3천만 원을 출금해 김사장네 부부에게 가져다줘야 한다는 생각에 금옥 씨 마음이 급해진다.
"응, 언니. 이렇게 보험 들어줘서 고마워." 그린이 엄마가 말한다.
빨간 투피스를 입은 금옥 씨가 가방을 들고 급한 걸음으로 카페를 나선다.
"띵동, 고객님. 여기 3천만 원 출금되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가셔도 괜찮으시겠어요? 큰돈이라 조심해서 가지고 가셔야 합니다." 은행 직원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금옥 씨를 보며 말한다.
"괜찮아요. 여기 앞에 가져다줄 거라서요." 금옥 씨는 은행직원이 건네준 3천만 원을 검은 비닐봉지에 싸서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은행 문을 나선다. 은행에서 나온 금옥 씨는 가방을 자전거 앞에 싣고 달리기 시작한다. 김사장 부부가 있는 부동산은 은행에서 5분 거리다. 짧은 거리이지만 어서 김사장 부부에게 3천만 원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 5분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진다.
'아참, 뭐라도 사가지고 가야겠다.' 금옥 씨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3천만 원을 빌려준 김사장 부부의 마음이 고마웠던 금옥 씨는 빈손으로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옥 씨는 지나가는 길에 있는 정육점에 들러 소고기 1근을 산 후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끼익" 금옥 씨의 자전거가 김사장 부부의 가게 앞에 도착한다.
"사장님, 계세요." 금옥 씨가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간다. 문에 달린 방울에서 맑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종호엄마, 이 시간에 여기는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나타난 금옥 씨를 보고 김사장과 박사장이 갸우뚱한 표정을 짓는다.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어제 종호 아빠랑 상의해 봤거든요. 빌려주신 3천만 원 정말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빌릴 수는 없어서요. 그래서 어서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3천만 원이 생겼어요. 그래서 사장님들께 어서 갚으려 왔어요. 저희가 넉넉하지 못해서 좋은 건 못 사 오고 그냥 오는 길에 소고기 한 근 사 왔어요. 여기 3천만 원이랑 소고기예요." 금옥 씨가 울먹울먹 한 표정으로 3천만 원이 든 커다란 검은색 봉지 하나와 소고기 한 근이 든 작은 봉지 하나를 내민다.
"에구,, 종호엄마. 그냥 천천히 줘도 된다고 했는데 왜 그랬어." 김사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니에요. 종호아빠도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요. 어서 받아 주세요. 이자도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고기만 사 왔어요." 금옥 씨가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휴,, 사실 이 말은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박사장이 고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금옥 씨를 바라본다.
"네? 사장님 무슨 일인데요." 금옥 씨가 묻는다.
"그게 말이야. 사실은 아니야. 종호 엄마가 직접 가서 듣는 게 좋겠어. 종호 엄마 이 동네에서 유명한 달러 할머니 알지?" 박사장이 말한다.
"달러할머니요? 그럼요. 이 동네에서 달러 많이 가지고 계시고 돈도 빌려 주시는 할머니시잖아요. 여기 앞에 사시는 할머니요." 이 동네에서 그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표정을 지으며 금옥 씨가 말한다.
"그래. 잘 아네. 종호엄마. 그 돈이랑 소고기 말이야. 지금 그거 가지고 달러 할머니 집으로 가봐. 가서 이야기 들어봐. 사실 그 돈 말이야. 우리 돈이 아니라 달러 할머니가 종호엄마 빌려주신 거야." 박사장이 어쩔 수 없이 이제는 말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연다.
"네? 달러 할머니가요? 저한테 왜 그런 큰돈을 빌려 주신 거예요?" 놀란 금옥 씨가 되묻는다.
"나도 잘 몰라. 그냥 종호엄마한테 아무 말 말고 우리가 빌려주는 것처럼 빌려 주라고 하시며 던져 놓고 가셨어." 김사장도 의아한 듯 말한다.
"그렇지, 종호엄마도 알잖아. 우리 동네 달러 할머니 돈 많기로는 이 동네 최고이지만 괴팍한 것도 이 동네 최고인 거. 이유를 물어도 말도 안 하시고 더 묻지 말라고 성질만 한 바가지 내시고 가셨어. 돈 한 뭉치 던져 놓고 말이야." 박사장이 김사장의 말을 거든다.
"이해가 잘...." 금옥 씨는 김사장과 박사장의 말을 듣다가 도무지 왜 달러 할머니가 자기에게 돈을 빌려 준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종호 엄마가 한번 가봐. 달러 할머니께 가서 돈도 드리고 감사하다고 소고기도 드리고 말이야." 김사장이 말한다.
"네. 알겠어요." 금옥 씨가 알겠다고 대답하며 다시 검은 봉지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부동산 문을 나선다.
'달러 할머니가 왜 나에게 그런 큰돈을 주신 걸까?' 금옥 씨가 머릿속으로 스스로에게 그 이유를 물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점점 미궁으로 빠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