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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Oct 05. 2023

이사를 하기로 했다

아주 본격적이다. 

지금 사는 나의 집은 나에게 큰 행운을 안겨준 곳이다. 나같은 사람도 '주거안정'을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고, 노동소득으로는 평생 벌어도 다 못 모을 자본소득의 맛을 알게해 주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딸을 만나게 해준 집이라는 점이다. 갓난아이를 데려와 수다장이 어린이로 클때까지 무한히 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돈에 맞춰 집을 구한 전형적인 케이스다. 우리 딴에는 영끌이라고 생각 했지만, 영끌이 아니었다. 2명의 수입 중 한사람의 수입의 50% 정도 수준의 대출. 그 이상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역산에서 잡은 최대치였다. 보금자리론이나 디딤돌 대출의 대출 상한선이 올라가기 전이라 그 2가지 상품을 쓸 수 있는 최대치는 여기다! 라고 선을 긋고 시작했던 것도 있다. 그와중에 집값이 상승한 타이밍에 대출상품까지 한번 갈아타 금리까지 낮춰 놓은 상태이니 우리의 심리적 압박감은 매우 낮아져있었다. 휴직기간에 좀 사는 게 빠듯하고 힘들었지만, 그또한 시간이 지나 다 해소되어 있다. 


2년 전쯤 집을 팔고 다른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각을 재 보았지만 결국 이정도 수준의 순자산으로 뭘 더 하는건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던 터였다. 그러다 하락장이 시작 되었고, 나는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내 최고의 선택은 거의 최저 수준의 금리를 확보한 상태에서의 관망이었다는 점. 주식도 기대보다 좋지 않은 성적인 상황이고(물론 손해는 아니었지만) 뭔가 다른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다 목돈이 생겼고, 나는 그 큰돈을 집을 옮기는데 쓰기로 했다. 


이 집을 구할당시 아주 보수적인 기준에서 돈에 맞추어 집을 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식이 높아졌다. 25년차 아파트를 샀고 이제 30년차를 맞이했다. 살기 나쁘지 않지만 아주 미묘한 순간에 이곳을 떠나야 겠다는 막연한 목표가 생기던 차였다. 몇년간 동네를 지켜보면서 생긴 아주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목돈이 생기게 되었음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이사를 가자고 설득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시작은 '왜'였다. 왜 이사를 가야 하는가. 우리는 이 집을 사고, 상승장을 겪으며 한번의 자산 상승을 경험 했다. 매수한 가격의 2배 이상의 폭등도 경험했고 그게 다시 폭삭 가라앉는 경험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1~2천만원의 차이가 상승장에는 1억~2억의 가치를 갖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확인 했다. 비록 지금 우리집이 극단적으로 2배까지 올라간 시점의 시세는 아니지만, 그말은 다른 집도 비슷하게 전체적으로 가격이 낮아져있으니 접근 가능한 금액이 될 거라는 걸 의미했다. 그럼 지금 갈아타야 언젠가 다시 맞이할 상승장에서 빛을 발하게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생긴 이목돈을 가장 유용하게 쓸 곳은 집이라는데는 이견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었다. 배우자 역시 이런 나의 의견에 어느정도 동의 했다. 


방향은 정해져있었다. 지금보다는 신축에 살고 싶다. 삶의 불편함은 없지만, 낡은 아파트가 싫다는 생각은 또 언제든 들수  있으니 이사의 빈도를 최소화 하기 위해 15년차 이내로 간다. 가능하면 동쪽으로 이동한다. 학군이 좋고 나쁘고 까지 따지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초등학교는 가까워야 한다. 삶의 질을 위해 현재의 평수는 최대한 유지한다. 대략의 시세가 러프하게 둘러보고 확보 가능한 현금과 대출 가능금액, 원리금 상환금액과 나의 정기지출과 소득,  등기비용, 취득세, 채권, 중개비 등 인지 가능한 선에서의 모든 거래비용을 다 뽑아보았고, 결과 우리의 상한선이 정했다. 집값 외에도 거래비용이 상당하다. 원리금 월 상환액의 상한선을 정하고 고 그걸 넘지 않는 선의 시세를 가진 아파트 단지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사무실을 가운데 찍고 콤파스로 원을 그리듯 돌렸다. 당산, 양평동, 영등포구청, 광흥창, 마포, 공덕, 영등포, 신도림, 장승배기, 독립문 등 대충 용산과 강남을 넘어가지 않는 선에서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 출퇴근을 한다면 이정도 거리까지는 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드는 지역을 정했다. 그리고 그 인근 아파트들의 현재 매물, 최근 실거래, 2~3년전 실거래, 최근 거래 물량 등을 다각도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남편은 남편의 방식과 기준으로 아파트단지를 추려냈고, 한두개씩 숨어있는 매물들을 찾아내며 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연식도 좀더 열어놓고, 크기도 좀더 열어놓고, 층과 향도 더 열어놓고 그물로 바닥을 훓듯 저가 매물 중심으로 훓어나가기 시작했다. 매물을 직접 들어가 보기도 하고, 후보 단지 인근에 다른 괜찮은 단지는 없나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게 상도동부터 시작해서 이동하다 어? 이동네는 뭐야? 싶은 지역이 보였다. 그게 신길이었다. 주위 분위기는 좀 낡고 오래되었으나 신길뉴타운은 뉴타운이라는 말에 걸맞게 반짝반짝해 보였다. 자꾸 눈이 간다. 차로 다니며 마음에 들었으니 우리 들어가서 봅시다! 하고 찾아보니 가능한 매물들이 간간이 보인다. 한곳에 연락해 예산과 스팩을 이야기하고 집을 몇개 둘러보았다. 걸어다녀보니 더 마음에 들었다. 묘하게 섬같은 동네인가 좀 마음에 걸렸지만 주위 환경이 변화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이사갈 곳의 대략의 방향성을 정한 우리는 집을 내놓았다. 전세집을 내놓을때는 동네 100곳이 넘는 부동산을 다 돌아다니며 연락을 했지만 파는 결정을 할때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전세집을 뺄때 겪었던 힘들었던 것은 어느 부동산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부동산들에서 계속 연락이 왔고, 그들을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 역시 부동산 중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데려온 손님 역시 우리와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집을 구할때 우리는 눈에 띄는 인근 부동산을 닥치는대로 들렀고, 미묘한 냉소와 냉대를 경험했다. 우리의 조건으로 구할 수 없는 집은 없다는 차가운 반응은 놀랍지 않으나 하다못해 연락처라도 남기고 가라는 말도 하지 않고 돌려보내는 곳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계약을 한 그 부동산은 그런 냉대 없이 층은 1층이지만 가격은 잘 맞으니 한번 보고나 가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었고 그렇게 우리 집과의 인연을 맺을수 있었다. 우리에게 따뜻하게 마음을 열어주신 부동산 외에 다른 곳과 부딛히는 일은 하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시간이 급한 것도 아니고, 당장 올해 팔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2억이 채 안되는 전세집을 뺄때도 40팀이 다녀가고 나서야 계약이 되었으니 지금 이 선택 역시 그런 길고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해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아마 그보다 더 할것이다. 2억짜리 전세 보증금을 70% 대출을 한다고 하면 6천만원을 가지고 있으면 (심지어 엄청 저리의) 대출을 통해 집을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옵션들 사이에서 40집이 스쳐간 후에야 선택될 수 있었다. 여러가지 생활 여건이 좋았음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 집을 사기 위해서는 전세보다 몇배는 무거운 선택을 해야한다. 4%대의 고금리 시대에 최대 50년 분할 상환한다고 한다면, 생애최초 조건으로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대출이 가능한 최대 금액은 5억원이다. 우리집은 이미 거래금액이 5억원 이상이므로 내가 했던 것 처럼 디딤돌대출을 활용할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 집을 사기위해서는 수중에 3억은 필요할 것이다. 가장 좋은 조건에서 대출을 받는다 하더라도 한달에 원리금 상환금액이 220만원은 나온다. 만 40세 미만이어서 체증식 분할상환을 한다 하더라도 한달에 200만원 이상이 원리금 상환으로 잡힌다. 우리가 집을 살때는 시드머니가 1억 3천 정도였고 월 원리금 상환액이 150만원 정도였다. 그간의 물가상승율을 감안하더라도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1억 3천만원에 월 150만원

3억에 월 200만원


절대 쉬운 선택이 아니다. 어쩌면 40팀보다 더 많이 보러가야 계약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 아파트의 현재 실거래는 9억원이다. 우리집은 1층이고 또 인테리어가 1년미만의 초신축이 아닌점을 감안하여 시세보다 1억을 낮게 내놓았으나 역시 거래는 쉽지 않다. 벌써 20팀 이상은 다녀간듯 한데 과연 거래가 언제 될 것인가 아주 흥미진진하다. 


기본적으로 정리 유전자가 부족한 나는 안정적인 거래를 위해 정리 컨설팅을 알아보고 있다. 수납 공간이 부족해서 정리가 안된다는건 핑계라고 생각한다. 무한히 버리고 있지만 또 냉정을 찾지 못해 버리지 못하는 수없이 많은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나 대신 냉정하고 차갑게 판단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30평대 아파트 3인가구의 짐을 정리하려면 아무리 대충 정리한다고해도 70~80만원은 족히 들거다. 물론 큰돈이다.  그러나 아깝다 생각하지 않는다. 큰 거래를 앞두고 있지 않은가. 여기저기 견적도 내고 방문 견적도 받을 예정이다. 돈은... 모르겠다 일단 알아라도 볼 거다. 빠른 거래를 위해서 할수 있는 준비들이 또 뭐가 있는지 계속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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