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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r 05. 2024

출산율 0.7명 시대에 조리원은 왜 만석인가

회사 일에, 이사에 아프고 어쩌고 하면서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그 와중에 기형아검사 한다고 또 좀 혼이 나가고. 그렇게 훌쩍 14주 차가 되어버렸다. 정신이 없었다는 핑계로 나는 게을러져 있었다. 그 와중에 지난 5년간 조리원 물가는 또 왜 이리 올랐나. 300만 원대가 한했던 이 동네 조리원 물가는 어느새 400만 원 중반으로 훌쩍 올라가 있었다. 과거 600만 원 하던 곳은 가격을 낮추었길래 이게 뭔 일인가 하고 보니 다른 곳에 아예 건물 새로 지어 옮기고, 다른 사업자에게 조리원을 매도한 모양. 이름이 바뀌어 있고 다행히 단가는 좀 낮아져 있다. 전에 봤던 엄청 비싼 조리원은 여전한 가격에 다른 건물에서 영업 중이고. 첫 아이를 낳고 5년 사이 전반적인 물가는 많이 비싸져 있었다. 코로나19 이후로 물가가 드라마틱하게 비싸졌고, 그래도 300만 원 정도면 가능했던 조리원들은 대부분 400만 원대로 올라가 있었다.


전국의 모든 조리원은 홈페이지에 가격을 아주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정보 파악이 쉬운데, 여기에 하나의 트릭이 있다. 어느 누구도 그 가격대로 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조리원은 답사의 형태로 상담을 진행하고, 당일 입금 혹은 당일 예약 시 일정 수준의 할인을 제공한다. 그게 총액의 감액일 수도 있고, 업그레이드일 수도 있고, 혹은 마사지 회수의 추가일 수도 있다. 대충 400만 원이 넘는 조리원 중 괜찮아 보이는 조리원을 다녀온 분들에게 쪽지를 통해 물어보니 현장 결제하면 전액 결제까지는 아니어도 370만 원 정도로 할인을 해준다고 했다. 440 내지는 420만 원 정도의 금액이 실제로는 370만 원 정도였던 것. 내가 알아본건 딱 거기까지였다. 키보드로만 알아본 것이다.


집과 이사와 등등의 과정이 끝나고 나서 나는 14주가 넘어서야 겨우 조리원 예약을 알아볼 수 있었고, 놀랍게도 괜찮다 생각했던 조리원 2곳이 이미 출산 예정일에 예약이 꽉 차있었다. 모든 산모가 제왕절개로 예상한 딱 그날에 애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리원은 항상 약간의 여유를 두고 예약을 받고 있고, 그로 인하여 예약이 빨리 차기는 한다. 그래도. 2월 말에 7~8월 예약이 다 차있다니! 이건 생각지 못했던 포인트였다.


아차 싶었다. 내가 한발 늦었다. 첫아이 때도 15주에는 했으니 그만하면 될 줄 알았다. 요즘은 임신 여부가 확정되면 5주 차에도 예약을 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니는 병원에서도 6월에 문을 여는 조리원이 있어서 상담 예약을 했는데, 상담예약 시작한 지 3일 만에 웬만한 상담 일정이 다 차있다. 2월 초에 3월 중순 상담 예약을 한다는 게 얼마나 허무한 일인가. 6월에 개원이면 내가 갈 수 있는 7~8월엔 이미 예약이 다 차있을 수 있다.


심지어 늦었다. 매우. 몹시.


아니 출산율 0.7명 시대에 애는 대체 누가 낳고 있냐며 생 난리인 이 판국에 조리원은 어찌해 자리가 없단 말인가. 물론 내가 본 2곳 외에도 옵션은 많다. 하지만 내가 가진 상황과 취향에 맞는 조리원은 한정적이다. 사람들이 보는 눈은 비슷하고, 결론도 비슷한 것이다.


지난번 조리원은 마사지 비용이 저렴한 것을 기준으로 골랐다. 내가 2주간 외부 외출이 거의 통제되다시피 할 것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프리랜서인 남편은 매우 자주, 거의 매일 조리원에 왔고, 함께 잠고 다른 일을 보고 오곤 했다. 나는 몰랐다. 내가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남편이 없는 시간에 혼자서 아이를 안고 있으면 꽤 자주 울었다. 그게 우울증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코로나 19가 아니어도 신생아를 케어하는 공간에 외부인 출입이나, 산모의 바깥출입은 조심하는 분위기였고 병원 말고는 문 밖을 나간 적이 없다. 그러니 남편이 오지 않으면 마사지실과 조리원방, 식당을 오가는 일상이 계속되고 그러다 보면 우울해지는 것이다. 산후우울증에 답답한 일상의 콜라보다. 그나마 코로나19가 풀리는 무드라 다행인 셈이다.


마사지 가격이 저렴한 것이 선택의 1순위 요건이었기 때문에, 다른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선택이었다. 생각보다 낮은 천장, 작은 방은 답답한 2주간의 일상에 꽤 큰 영향을 마치는 것이었다. 저만하면 크다 생각했는데 막상 지내보니 생각보다 적당하지 않았다. 더 크고 쾌적했어야 했다. 내 집과 달랐다. 침대 매트리스도 묘하게 불편하고 허리가 아팠다. 우리 집이라고 클까마는, 모든 공간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집과 조리원은 많은 것이 달랐다. 그래서 이번 조리원은 쾌적한 환경을 1순위로 했다. 어차피 마사지 비용은 거기서 거기다.


그렇게 고른 2곳이 허무하게 날아가고 나니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여기서 조리원이 왜 필요하냐 묻는다면, 나에게는 이미 첫 아이가 있고, 나는 출산 후 3주간 완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제왕절개로 입원 1주일, 조리원 2주일 최소 3주는 완전한 휴식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외국은 왜 조리원이 없는데 한국의 엄마들만 유별나게 조리원을 찾는지 모르겠다는 아우성을 듣곤 한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출산 후 병원에서의 가이드는 3주간 물리적 노동은 절대 안 되며,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라고 되어있었다. 3주간 충분한 휴식과 수면이 필요하고, 6주 이상은 가능하면 집안일은 피하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그 공백은 남편 혹은 다른 가족이 채운다. 조리원이라는 기형적인 시스템이 한국에 필요한 것은 최소 3달은 몸을 추슬러야 하는 한국의 엄마들에게는 충분한 휴식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지난 출산을 떠올려보면 제왕절개를 했었어도 3개월이면 어느 정도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능했다. 그건 마사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은 그날. 엄마는 내 다리와 발을 1시간도 넘게 주물렀다. 아이를 갖기 전처럼 발등의 뼈가 아주 명확하게 드러났다. 마사지로 인해 붓기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귀가하고 내 발은 아주 빠르게 부었다. 심지어 누워만 있었는데도 말이다. 체중이 아래로 쏠리지 않은 환경임에도 발이 코끼리처럼 부었다. 그 붓기가 살이 된다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근원적으로 인간의 몸이 최소한의 순환을 할 수 없는 컨디션이라는 뜻이다.


마사지는 그런 의미에서 유의미하다. 체중이 줄어들었다 뭐 이런 게 아니라, 마사지를 받고 나면 부기가 줄고 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걸음이 편해지면 나도 더 많이 움직일 수 있고, 그건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수유와 아기 케어는 나의 체력과 컨디션을 나락으로 보냈다. 내 몸을 살필 수 있는 여력이 아예 없어진다. 그냥 누워서 잠만 자게 된다. 애가 잘 땐 같이 자야 한다. 조리원에서 난 2주간 거의 매일 마사지를 받다시피 했다. 붓기가 줄어드는 것 만으로 내가 사람처럼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심지어 이제는 큰 아이가 있지 않은가. 아주 어린아이는 아니라서 엄마에 대한 배려가 가능한 것은 알지만 그건 배려일 뿐.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나도, 신생아인 아이도 힘들어질 수 있다. 얼마가 들든 조리원은 가야 하고 그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은 선택지 2~4곳을 두고 답사를 시작했다. 신생아 관리는 비슷하다. 신생아 관리에서 이슈가 생기면 막말로 망할 수도 있다. 식사도 다 잘 나온다. 거의 사육이다. 마사지도 다 비슷하다. 가격이 대동소이할 뿐. 나의 남은 결론은 오로지 방과 그 주변의 컨디션, 그리고 집과의 거리다. 남편이 자주 올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내가 덜 우울해진다. 그렇게 일단 3곳을 둘러보고 한 곳을 정했다. 당연히 당일에 계약금을 입금해야 할인적용이 가능하다. 계약금을 입금했고 이제 병원에서 개설하는 곳이 혹시라도 남아있다면 그곳의 컨디션을 보는 방법 밖에 없다.


이렇게 또 몇백만 원이 훅 날아갔다. 걸음걸음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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