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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Apr 24. 2024

그저 무탈하게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보이지도 않는 배속에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쑥쑥 자라는 걸 보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그저 건강하게, 주수만 채워서 나오너라... 였다. 기형아 검사를 쿨하게 패스했지만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우려는 언제나 존재한다. 놀라울 정도로 건강하게 이벤트 없이 태어나준 큰아이가 또한 놀라울 정도로 건강한 성장과정과 순한 성정을 가진 것을 보면서 매일생각한다. 


엄마는 또복이가 누나만큼만 건강하고 착하면
세상에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아 


아이를 품에 안으며 그 아이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똑같을 것이다. 건강하게 태어나도 살면서 이런저런 문제와 난관에 봉착하게 마련이니 태어나기라도 건강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은 당연한 일이다. 


첫아이 출산 이후 5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검진 트렌드가 바뀐 건지 전에는 한 번뿐이었던 정밀초음파가 3번으로 늘어나있었다. 그리고 2번째 정밀초음파 날이 다가와 병원을 방문했다. 정밀초음파는 키, 팔다리 발달 상태, 내장기관의 발달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보는 초음파이다. 심장, 뇌와 같은 중요한 기관들이 어떤 상태로 자라고 있는지를 보는 날이라 초음파가 보기 편한 상태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소변도 참고 가야 하고 요건이 많았다. 그날따라... 유난히... 일이 많았다. 엉덩이를 떼야할 시점에 길고 통화가 시작되었고, 통화가 끝나고 아이와 함께 가기 위해 어린이집에 들러야 했고, 평소보다 차가 막혔고 병원에서는 정밀초음파는 원래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지금 안 오면 초음파 아예 못 보니 늦지 않게 와야 한다고 전에 없던 전화도 받았다. 모든 것이 조급하고 불안했던 날이었다. 남편은 주차하느라 들어오지 못했고, 아이와 둘이 초음파실에 들어가 누웠다. 


여기저기 이건 다리뼈, 이건 얼굴, 이건 머리 이거 저거 설명해 주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리고 심장을 유난하다 싶게 여러 번 찍는 게 느껴졌다. 숨을 참고 있어 달라는 요청이 많았고, 심장 소리를 여러 각도로 듣는 것 같았다. 늘 균일하던 소리도 뭔가 다르게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이겠지.. 하며 누워있었다. 검진이 끝나고 주치의 선생님 방에서 설명을 듣는데 여기는 괜찮은데, 저기도 괜찮은데 하며 말 끝을 흐리는 게 느껴졌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초음파실에서 일정 정도 노티스가 간 거 같았다. 어서 말끝을 마무리하시라고요!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드디어 결정적 한마디를 던지셨다. 


심장에 피를 보내는 대동맥이 좀 좁아 보여요.
대동맥 축착이 의심됩니다.
큰 병원으로 가셔서 정밀 검사를 한번 더 받으시고,
후속 검사를 해보셔야 할 것 같아요. 


수술. 축착. 협착. 대학병원. 전원. 어느 것 하나도 무섭지 않은 말이 없었다. 선생님은 쿨하고 시크하게 던지셨다. 태아는 호흡이나 혈액이 돈은 원리가 보통의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에 배속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태어난 후에는 산소부족과 같은 이슈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발달 부진과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심장이 대략 4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유난히 크다던가 혹은 작다던가 하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러한 증상은 태어난 후에 제대로 피가 잘 돌고 있는지 3D 스캔 같은 걸 해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의사의 소견에 따라 수술 시기가 결정된다고 했다. 그게 뭐든 그 말은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아무리 안 아픈 수술이라고 해도 몸에 칼집이 나면 인간은 아프다. 아프다는 말도 못 하는 아기가 수술을 해야지만 건강해진다는 뜻이다. 


그럼 수술만 하면 다른 문제는 없냐는 질문에 수술 한 번이면 말끔하게 해결되는 문제라고 대답하셨다. 하지만 수술 시기가 출생 직후일 수 있으니 대학병원에서 꾸준히 검진하면서 상태를 관찰하고 출산 직후 수술로 이어질 수 있도록 대비하는 차원에서 전원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시간이 지나고 자라면서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살짝 머리가 도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대안은 없다. 수술 한 번이면 다 해결되는다는 거죠?라는 나의 질문에 아주 대수롭지 않게 그럼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대답하셨다. 


수술. 세상에 아프지 않은 수술은 없는데, 그 작은 몸에, 한 팔에 쏙 안기는 그 작은 몸에 수술이라니. 생각만 해도 심란하지만 딱 한 번만 수술하면 평생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말에 알겠습니다. 하고 나왔다. 전원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았고, 병원에서는 근처에 있는 큰 병원으로 협진 요청을 해주셨다. 1~2주 안에 검진을 받으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가이드에 맞게 예약도 잡혔다. 중간에 미리 잡아둔 여행이 있었고, 우린 너무 당연하게 여행을 피해 검진 일자를 뒤로 미뤘다. 어차피 낳아봐야 아는 일이고, 지금 당장 하루이틀 빠르게 검진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세상 쿨하게 나왔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네이버에 대동맥 축착을 검색해 보았다. 말하자면 일종의 선천적 기형에 가까운 것이고,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대로 아이 크기만 어느 정도 되면 바로 수술을 하면 이후 성장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엄마들의 후일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 와중에 수술비는 보험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고 선천적 기형이니 보험 진단금도 나오는 듯했다. 여아보다는 남아에게 더 많이 보이는 증상이고 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희귀한 증상이라고 보기엔 이미 경험한 엄마들이 많아 보였다. 개복수술이라기보다는 등을 아주 살짝 째서 수술을 하는 것 같았다. 울면서 우리 아기 괜찮을까요 글을 남긴 예비엄마들의 글에 유경험자 엄마들은 "우리 아이도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했고, 지금 7살인데 진짜 건강하고 발달도 정상이에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리플들이 달려있었다. 간혹 후유증이 있기도 한데 그건 추적검사를 통해 커버되는 것 같았다. 나도 남편도 심드렁한 척하면서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다. 


수술만 하면 된다잖아. 그거면 그냥 한방에 끝난데
그럼 됐어. 보험도 가입했는데 뭐
보험료 탈일 없는 게 베스트지만 한 번만 하면 끝나니까 그거면 됐어. 


그 와중에 여행은 여행대로 신나게 하고 왔고,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며 10일이 지나 드디어 검사 당일이 돌아왔다. 나의 전원 소식은 직속 팀장님에게만 전달했다. 하필 예약 날짜에 중요한 회사 업무 마감이 끼어 있어서 일정 조율의 사유를 공유하는 쪽이 나아 보였다. 회사 내 유일한 애엄마인 팀장님은 그런 나를 너무 걱정하며 바라보셨고, 난 또 세상 쿨하게 답했다.


어차피 지금은 모든 게 추정이고 의심이잖아요. 낳아 봐야 아는 거래요. 


근데 나도 모르게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대학병원은 언제나 좀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다. 꼭 의료파업이 아니어도 모든 것이 세분화되어 있고 늘 대기도 길다. 더군다나 처음 방문하는 병원이라 예진에 초진등록에 손 갈게 많았다. 일반 초음파실과 산과 초음파실이 따로 나뉘어있었다. 초음파 실에서도 1시간은 기다린 것 같았다. 선생님 한분이 나와 내 이름을 부르며 하시는 말씀이 


심장을 중점적으로 보는 초음파 기계가 따로 있는데,
앞에 보시는 분이 좀 길어지네요. 좀 더 기다려 주세요. 

아. 이래서 대학병원에 오는 거구나 했다. 심장을 보는 초음파 기계가 따로 있다니. 초음파실에서 누워 레지던츠로 추정되는 선생님 한분이 열심히 초음파를 보셨고, 내 앞에는 별도의 화면이 없어서 그림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심장소리가 다시 균일해진 것은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보시고 나서 담당 교수님이 오셔서 다시 초음파를 집중해서 보시는데 처음에 초음파를 보시던 선생님께 전하는 표현에 '노멀'이라는 단어가 섞이는 게 들렸다. 노멀. 그럼 괜찮아진 거겠구나. 마음이 놓였다. 


초음파가 끝나고 진료 대기를 할 때가 돼서야 내가 배정된 선생님에 대해 검색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고위험군 산모가 아니면 초진을 안 받는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보였다. 응? 내가 고위험군 산모야? 하고 생각하니 내 나이가 떠올랐다. 45세에 노산. 마흔 넘으면 그냥 고위험군 산모겠구나 싶어 한참을 웃었다. 나는 의학적으로 고위험군 산모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는 철없는 엄마였다. 남편과 둘이 앉아 그렇게 낄낄거리며 진료를 기다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진료실에서도 아마 지난번 영상 촬영 각도 등의 이유로 혈관이 일시적으로 얇아보이게 아닐까 싶다면서 모든 것이 너무나도 정상이라고 하셨다. 혹시 몰라 다른 기관도 쭉 다 보셨는데 다 정상적으로 발달하고 있었고. 원래 다니던 병원으로 돌아가 검진을 이어가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으니 소견서 남겨드리고 기존에 다니던 병원으로 회송처리 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하셨다. 다시 복잡한 서류처리의 과정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회송'이라는 단어가 찍힌 서류와 진단서를 들고 집으로 왔다. 


그 큰 병원에서 초진, 예진 등등의 과정을 거쳐 심장 전용 초음파와 교수의 진단을 받고 서류까지 마무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거의 3시간이 넘는다. 그럼에도 12만 원 정도의 비용을 냈을 뿐이고 그마저도 바우처로 해결되었다. 얼마나 저렴한가.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날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크기로는 3손가락 안에 드는 병원에서 하는 검진이 12만 원에 끝난다니. 집에 돌아와 들어 누우며 지난 10일간의 긴장이 한 번에 탁 풀리는 게 느껴졌다. 늘어져서 유튜브도 보고 뒹굴뒹굴하다 잠이 들었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 많은 것을 의미한다. 고작 12만 원에 내 아이가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는 다 축복이고, 건강한 아이는 더없는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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