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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Sep 16. 2024

언제나 계획만 치밀하다

지난 출산은 출산예정일에 아이가 나올꺼라는 굳은 믿음에 양수파열이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모든것이 어그러진 출산이었다. 계획은 치밀했으나, 치밀한 계획을 구현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번엔 그러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고 빠른 출산에 대비한 일정을 추정하여 휴직시점을 정했다. 대략 7월 말에는 들어가야 한 1주일 쉬고 10일에 아이가 낳는다 생각했던게 지난 출산의 계획이었다면, 이번엔 아이가 한 1주일 일찍 나온다 생각하고 그 앞에 이런저런 정리할 시간 한 10일을 두고 휴직하면 아무리 빨리 나와도 휴직기간안에는 다 들어가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나라는 임출육과 관련한 휴가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으로 나뉘고, 출산휴가는 출산전 휴가와 출산후 휴가로 나뉜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알뜰살뜰 쪼개서 연차를 남겨놓 은 상태였고, 남은 연차는 비상시 병원을 가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쓸 연차까지 감안해 출산 휴가전에 몰아서 쓰고 출산휴가가 아이 출산일에 최대한 맞춰서 개시되도록 셋팅했다. 첫 아이가 제왕절개였던 터라, 둘째도 빼도박도 못하고 제왕절개. 의사선생님과 우리는 출산예정일에서 약 1주일 정도 앞선 일정으로 수술일정을 잡고, 회사에서는 잔여 연차를 돈으로 받기 보다는 연차를 쓰는 방식으로  연차소진을 꾸준히 독려하고 있고 나도 그런식의 사용이 더 유용하다 생각 했다.  연차소진 삼아 휴가중이라 하더라도 애가 태어나면 그날로 바로 출산휴가로 전환되는게 현재의 출산휴가 시스템이니 다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불가항력. 출산전 출산휴가는 사용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이리저리 계산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연차소진 기간을 배속에서 버텨주고 있었고, 연일 35도가 넘는 찜통 더위에 어이 없게 엉덩이에 종기까지 나는 바람에 그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 동네 산부인과도 다녀야 했다.


경산모의 수술은 초산과는 많이 다른다. 초산에는 밤 12시에 양수가 터져도 챙겨둔 출산가방만 날름 들고 병원으로 달려가면 되지만, 경산모는 '첫아이'의 존재가 매우 큰 이슈가 된다. 그래도 6살로 왠만한 자기 몫은 다 하는 아이인지라 큰 걱정은 안되었지만, 최대한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우리 힘으로 아이를 케어하고자 하는 이상한 오기는 수술시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능하다면 큰 아이가 작은 아이의 출생을 지켜보게 하고싶었지만 병원의 시스템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오전 11시로 수술 시간을 잡고, 나는 수술 하루 전날 입원을 하고, 아이는 수술 당일 아침에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키기로 했다. 그러면 남편은 병원으로 와서 오전 11시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에 쭉 옆에 있을 수 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을 한 후에도 곁에 있다가 아이를 데리러 집으로 간다. 이게 우리의 수술 당일 플랜이었다.


지난 출산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데, 어차피 수술날은 보호자가 무쓸모다. 고개도 못돌리고 모든 처치는 간호사분이나 간호보조해주시는 분들이 해주실 수 있다. 코로나의 여파로 간호통합병동은 흔했고, 난 간호통합시스템의 컨베이어벨트에 몸을 싣기로 했다. 업무의 일환으로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의 도움은 적극적으로 받되, 개인의 일정을 억지로 바꾸는 상황을 통한 도움은 최소화 한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입원하려 들어와 아이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나가는데 아익 기어이 눈물을 보인다.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보호자 외에는 병원에 잔류할 수가 없다. 혼자 조용히 아이패드로 영상을 보다 항생제 테스트도 하고 혹 새벽에 혈흔이 보이거나 소변을 본 것처럼 물이 흥건하다면 간호사실로 연락 달라는 당부도 받았다.

그리고 자다가 문득 눈을 떳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난 금식중인데, 하체 언저리에 물이 흥건하다. 쏟은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 양수가 터진거다. 내일이 수술인데 기어이 새벽에 2시에 양수가 터져버렸다.


그 시간에 연락을 한들 바로 올수도 없고, 어차피 응급이라고 하기엔 시간 여유가 좀 있다. 간호사 선생님을 부르고 바로 일어나 분만실로 이동했다. 수술복 옷을 갈아입고 좀 졸다 깨서 문자를 남겼다.


자다 깼는데, 양수가 세고있어서 분만실로 내려왔어


마침 깨어있던 남편도 난감하긴 매한가지. 8시에 첫 수술을 앞둔 주치의 선생님이 오시더니 보호자가 언제 오냐 물으셨다. 9시~9시반이면 올거라고 했더니 그럼 원래 계획했던 11시까지 기다릴 거 없이 보호자 오면 바로 수술하자 하셨다. 남편은 아이가 눈뜨자마자 어린이집에 후딱 보내고 9시에 병원에 도착했고 수술시간은 그렇게 당겨졌다. 그나마 입원한 채로 양수가 터졌으니 망정이지 집에서 양수가 터졌다면 아이도 놀래고 혼자 이동하기도 어려웠을 수 있다. 차라리 다행이다.


인생에 수술이 이번으로 3번째인데... 첫 수술이 제왕절개였다. 하반신 마취를 하고 몸이 사라지는 그 느낌이 너무 무서워서 버들버들 떨다가 재워달라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번 출산한 병원보다 더 큰 병원이라 그런지 좀더 종합병원의 시스템과 비슷했다. 베드에 누워 수술방이 준비되는 소리를 고스란히 듣자니 너무 이상했다. 다행히 소리를 좀 덜 들으라고 헤드폰을 끼워주시고, 온열안대를 채워주셨지만, 무섭긴 매한가지. 하반신 마취가 진행되고, 내가 몸을 떠는게 느껴졌던지, 마취과 선생님이 무섭냐고 물으셨다. 예 무서워요 했더니 재워줄까요? 물으셨다. 난 결국 또 둘째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놓쳤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앙 하고 우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잘 태어난걸 확인은 시켜주셨다.


아기 건강하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아이가 건강하냐고 물으면서 또 엉엉 울어버렸다. 의사 선생님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날 다시 재우시고 후처리를 하셨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때는 회복실이었다. 이내 병실로 옮겨져 나는 남편을 만났고 남편은 내 상태를 확인하고 출생신고를 하러 주민센터로 향했다. 난 그렇게 계획과는 다르게 두번째 아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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