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 엄마가 떠나는 여행에 '훌쩍'은 가당치도 않았지만
그 시절 내가 사랑한 치앙마이로!
2008년, 태국 방콕에서 짧게 일할 기회가 있었다. 태국 하면 방콕과 파타야만 알고 있었는데 함께 일하던 동료 덕에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라는 곳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친구와 함께 한 치앙마이 여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정도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복잡한 방콕과 달리 고산지역인 치앙마이는 시원하고 넉넉한 자연이 매력적이었다. 트래킹을 하며 고산마을에서 1박을 하고, 뗏목에 앉아 느리게 스치는 풍경을 보며 강을 내려갔던 그 모든 장면이 꿈처럼 기억되곤 했다. 나에게 가족이 생긴다면, 치앙마이의 태곳적 자연과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함께 해야지 다짐했다.
두 아이 엄마의 홀로 여행에 ‘훌쩍’이란 없다
10년이 흐른 2018년. 아이들은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과 여름캠프를 가가면 좋겠다 생각했고 그 첫 시작을 치앙마이로 선택했다. 다만 나 혼자만의 여행을 가고 싶기도 했다. 결혼 후 일과 육아를 함께 하며 홀로 여행할 기회는 없었다. 이제 아이들도 얼추 컸으니 잠시라도 ‘나만의 시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와중에 정당성(?)을 확보한답시고 아이들 여름캠프 사전답사 및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하자며 치앙마이 4박 5일 여행을 잡았다. 내 나름의 출장건수를 만든 것이다.
거의 10년 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보통 ‘여행’과 ‘훌쩍’은 함께 움직이는 단어 아닌가. 마치 ‘퇴사’와 ‘잘 나가는 회사’가 한 세트인 것처럼. 그러나 두 아이의 엄마가 혼자 떠나는 여행에 ‘훌쩍’은 가당치도 않았다. 게다가 한의원은 왜 이렇게 일이 많은지 떠나기 바로 전날 야근하고 뻗었다. 게다가 아이들 먹거리도 미리 준비해놔야 했다.
친정엄마와 일정을 맞춰야 했기에 항공권도 떠나기 1주일 전에야 겨우 끊었다. 사실 출국하는 당일엔 한의원 출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간밤에 직원분 외할머니가 갑자기 소천하셨다는 것이다. 아예 캐리어를 끌고 출근했다. 퇴근하고 곧장 공항에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퇴근 후 허겁지겁 공항으로 달려갔다.
온 우주가 기를 모아 나의 혼여를 막는 것만 같았다.
나의 부재 기간 나 대신 일할 직원을 사전에 섭외했는데, 공교롭게도 비행기 탑승 바로 전에(!) 연락이 왔다. 사정이 생겨 내일 출근 못한다고. 맙소사. 급하게 대타를 구하느라 공항에서조차 홀로 떠나는 여유를 부리지 못하고 돌 덩어리 몇 개를 품은 듯한 무거운 마음으로 탑승했다. 우주의 모든 기운이 나의 발목을 잡는 것만 같았다. ‘애 엄마가 무슨 혼자 여행이야.’라며 비웃는 것마냥. 자영업에 두 아이 엄마가 4박 5일 시간 버는 것이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
페이스북을 통해 치앙마이에서 방문할 아이들 학교와 인터뷰할 디지털 노마드족(族) 섭외까지 마쳐놨었다. 바쁜 와중에 환전도 하고 할 거 다 했다 생각했는데, 뭔가 세한 느낌이 흐르면서 그 정체를 몰라 개운치 않았다. 맙소사. 숙소 예약을 깜박했다. 첫날 숙소는 예약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무척 오래간만이었지만 이렇게 떠나기도 전에 방전되었다.
DAY 1 : 펠리컨의 착륙. 경운기 타고 치앙마이 도착.
치앙마이에 도착은 했다. 무사 도착이라 하기엔 비행기 요동이 너무 심했다. 탑승 바로 전에는 직원분이 내일 출근 못한다고 해서 심장 쫄깃하게 하더니 비행기를 탄 후에는 요동이 너무 심했다. 내 평생 이런 강도의 흔들림도 처음이었거니와 이렇게 오래 지속된 것도 처음이었다.
너무 흔들리니까 처음엔 어떤 아저씨가 "왜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그래~~"하며 농담을 했다. 이때만 해도 다들 농담으로 긴장을 감출 수 있는 단계였다. 요동이 계속되니까 "초보운전자한테 맡겼나 봐~" 하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흔들림이 지속되니까 농담이고 뭐고 없고 전원이 모두 고요했다. 타이타닉도 생각나고 정말 무서웠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정신이 없어서 여행자 보험도 못 들고 왔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애들 두고 혼자 떠나서 이게 뭔 일 이래. 직원분과 아르바이트생이 연속으로 일이 터져 출근 못하게 된 것도 낌새였고 조짐이었을 건데, 나 가지 말라는 소리였을 건데, 내가 왜... 하며 자책을 했다. 그 비행기를 탄 대개의 사람들이 아마 속으로는 나처럼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침묵 속의 여러 생각들. 그 침묵과 고요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뒷좌석에서 누군가 구토를 한 것이다. 얼마나 비행기가 흔들렸으면. 기내식이 나온 후부터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너무 흔들리니 밥을 다 먹었어도 승무원들이 갖고 가질 못했다. 양해 구한다며 다들 식판을 앞에 두고 있는데 커피가 마구 흔들렸다. 흔들려서 마시지도 못하니 와인이고 맥주고 커피고 물이고 액체가 흔들리는 모습을 말없이 봐야만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모두 침묵하는 와중에 컵 속에서 흔들리는 액체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흔들리는 비행기 처음 타본다고 한마디들 했다. 다들 나이도 중년이고 비행기 경험이 적지 않았을 터인데 이번 비행기가 유난했던 것이 맞았던 거 같다. 여하튼 나는 그렇게 경운기 타고 치앙마이 왔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유심 교체 후 그랩으로 택시를 불렀다. 한국어로 번역되어 기사님한테 문자 오고, 택시비도 미리 적혀 있고 편리했다. 낼은 아침에 '판야덴'이라는 학교 방문이 예약이 되어 있으니 얼른 자야지. 너무 고생했다. 개고생. 이렇게 두 아이 엄마의 짧은 혼자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이들 여름캠프 사전답사라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