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문상기
기관사가 내 귀에다 빨간색 플라스틱 깔대기를 대고 외쳤다. "야이 촌놈아!"
분명 오전에는 사과열매를 솎고 있었는데 오후에는 퇴근길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있다. 문상차 급하게 올라온 서울행.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내릴 때부터 심상찮긴 했다. 내리자마자 귓속으로 훅 몰리는 소음. 가문 들판 굶주린 메뚜기떼 속에 서 있는 느낌. 나원참. 서울살이 30년에 새삼스럽기는.
가야할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신촌역과 이대역 사이, 걷기엔 멀고 차를 타기엔 택시비가 아까운 거리에, 신촌역에서 내리면 금화터널방면으로 올라와야 하고 이대역에서 내리면 경의선 굴다리를 지나야 있다는 사실까지도 아는 나름 서울 빠꼼이인데. 그런데 귀가 아팠다. 난생 처음 겪는 듯한 이 울트라한 소음. 원참나. 귀농한지 얼마 되었다고.
분명 내 신용카드에 교통카드 기능이 있었단 말이지. 시골에서 왔다고 무시하나. 교통카드의 용불용설. 몇 번 시도하다 포기하고 1회용 교통카드 구입. 퇴근길이라지만 이 한칸 지하철에 척곡리 주민 두배는 되는 인원이 타는구나.
"다음 내리실 역은 건대입구입니다." 에 뒤이어 "출입문 닫습니다 닫습니다"를 짜증스레 외치는 기관사 멘트에 다시 귀가 아팠다. 아우 아저씨, 문 닫는 일에 소리까지 지를 건 없잖아요. 서울 텃세가 희한하네. 아프도록 귓속에 남아 우는 소음들. 윙윙윙. 어쩐지 전자렌지 안에 있는 기분. 그리고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거대한 타워.
-인더스트리아 같아.
지난 번 상경했을 때 저 롯데타워를 보며 아내가 말했었지. 너무 높아 어쩐지 비현실적인 마천루. 미래소년 코난이 인더스트리아에 도착해 삼각탑을 봤을 때의 기분이랄까. 비현실적인 높이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욕망. 공항의 활주로조차 틀어가며 세우는 아흔 넘은 회장의 욕망. 예순 넘은 맏아들을 쫓아냈다지. 거대한 노욕.
병원장례식장에 도착해 조문을 하고 자리에 앉는데 외사촌형님이 마주 앉는다.
-우경아, 농사 지을만 해? 세상에 제일 좋은 직업은 뭐니뭐니해도 임대업인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걱정없지, 임대료 따박따박 들어오지, 매일 안나가도 되지. 내가 건물이 두채인데 한달에 들어오는 돈이...
아우 형님. 정말 성공하셨네요. 시골에서 올라와 개척교회하실 때 신도없다고 주말마다 형님 교회에 불려나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달마다 몇 천의 임대료가 들어오는 건물주시라니. 부럽습니다. 그런데 형님, 다 좋은데 그런 말씀 하실 자리는 아닌 것 같네요. 형수님 장례식 중이잖아요.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올림픽대로를 벗어나도 보이고 강일IC에서도 보이고 하남에서도 타워가 보였다. 그리고 귓속에 여전한 윙윙윙. 사과열매 솎느라 사다리에만 올라도 아래가 어지러운데 100층이라니. 논 한 마지기 일년 농사라야 50만원 빠듯한데 가만히 앉아 한달에 몇 천이라니. 그런데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담.
할 수 없지. 빨리가서 새벽에 일어나야겠다. 머리 아픈데는 뻐꾸기 소리가 직효니까. 그런데 가만, 뻐꾸기가 새벽에도 울었었나. 뻐꾹 긴가 뻐꾹 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