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문화예술마을
농사꾼이라고 흥이 없으랴.
고추 따느라 몸에 붙이고 살던 엉덩이 방석을 떼고 일찌감치 저녁 먹고 날도 쌀쌀하니 잠바 하나 걸치고 회관에 모였다. 가끔문화예술마을. 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마을이 선정되었다. 가끔 문화도 즐기고 가끔 예술도 하는 프로그램이겠거니 지레짐작한 대수형님이 일을 키웠지. 면사무소에서 의자를 빌려다 객석을 만들고 회관마당에 마이크를 세웠지. 조명은 가로등. 떡을 하고 돼지고기도 삶았지. 동네에서 하는 작은 음악회.
읍내에서 아코디언 선생을 모셨지. 영화관이 없으면 어때, 콘서트 따위 볼 형편도 안되지만 농사꾼이라고 흥이 없으랴. '동백아가씨' 반주에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시키지 않은 합창이 된다. 그리워서만 지치나. 고추를 따다가도 지치고 참깨를 베다가도 지치지. 아무려나 지친 몸에는 막걸리가 젤인데 어라, 아코디언 소리도 못지 않네.
색소폰 선생도 모셨지.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 '안동역 앞에서' 님을 기다리다가 아뿔싸 다들 그만 폭삭 늙었구나. 하기야 늙었다고 연정이 없으랴.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아무렴. 사랑에 나이가 없듯이 꼭 뭐가 있어야 즐기는 건 아니지. 가진 건 낡은 몸 하나. 가진 게 없으니 망건 하나를 쓰는 것으로도 저렇게 신명이 나고 어깨춤이 절로 나지. 그런데 저 망건은 어디서 났담.
대수형님 내외가 속한 색소폰 동호회에서 뜬금없이 '과수원길'을 산책하잔다. 곡이 단순해서 합주하기 좋아 골랐겠지만 형님 여기가 형님 과수원 바로 앞인데 산책이라니요. 그래도 흥이 오른 근재형님은 망건을 쓰시고 덩실덩실. 무릎이 아픈 할매들도 의자에 앉아 나풀나풀.
다들 취기가 오르고 가을별은 대책없이 빛나고 마지막곡 아리랑이 메밀꽃 같은 별들 사이로 흘러가는 동안 가로등 밖에서 반딧불만 깜빡깜빡 박수를 치는 척곡2리는 가끔문화예술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