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어디 갔을까
다방농사라는 게 있다. 거름을 뒤집어쓰는 대신 커피를 마시며 짓는 농사인데 우아하거나 고상하진 않다. 다방농사를 짓자면 김주사부터 만나야한다.
- 김주사, 농기계 보조사업 나온 게 있담서?
- 있지마는 동리별로 하나씩 나누는 거라서요.
- 아, 나누다보면 우수리 떨어지는 거야 다반사잖어.
- 그게 제 담당이 아니라서요.
- 이계장 담당이던가? 이계장이야 따로 만나면 되고. 어이 마담, 여기 김주사 쌍화차 한 잔 드려.
김주사는 쌍화차 이계장은 아메리카노. 둘러치고 메치고 이리 묶고 저리 풀고 아는 사람 모르는 이 다 두루두루 엮어설랑 원하던 이권이 다방 테이블 위에 딱하고 떨어지도록 만드는 농사. 이른 바 관을 상대로 하는 종합예술인데 누구는 고추농사 사과농사 백날 지어도 다방농사보다 못하다 하고 누구는 천지에 널린 게 보조사업인데 못먹는 놈이 바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맨날 해먹는 놈들끼리 짜고치는 고스톱이라고 욕하지만 김주사 알현도 이장쯤 되어야 가능한 일.
끗발 없는 나 같은 농사꾼이야 그저 군청 홈페이지나 들락거릴 뿐 다방 출입은 언감생심이었는데 어쩌다보니 마을 공동저장고 사업에 앞장서게 되었더란 말이지.
혼자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보니 면 산업계장도 만나고 기술센터 과장도 만났더랬지. 쌍화차 대신 박카스, 아메리카노 대신 레쓰비 한 캔을 건넸으되 열흘 굶은 시애비 같은 간절함은 전해졌겠지. 사업을 따자고 대구까지 왕복 네시간 걸리는 학교를 매주 다닌 정성까지야 모른 척 하려구.
그랬는데, 아뿔싸, 작년 지방 선거에서 군수가 바뀌었네. 군수 바뀌면서 농업정책이 태양광정책으로 바뀌었네. 인사발령으로 담당도 다 바뀌었네. 담당 바뀌면서 그 동안 농사지은 다방 테이블이 홀라당 엎어졌네.
하는 수 없지. 들인 공이야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가끔 다방에서 아부지를 마주치는 민망함을 무릅쓰더라도 테이블은 다시 세워봐야지. 그랬는데 정부시책 따라 사업대표는 반드시 서른 아홉이 정년인 청년이어야 한다지.
청년일자리도 좋고 청년이 있어야 마을이 지속가능한 것도 좋은데 제기랄 대체 그 놈의 서른 아홉 안된 청년이 세상 천지 어디 있냐구. 있어야 사업에 응모라도 하지. 탁상행정에 철푸덕 주저앉았다가 슬그머니 치미는 울화. 청춘아 내 청춘아 빌어먹을 내 청춘은 대관절 어디 갔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