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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r 18. 2020

미얀마의 마지막 여정

이 순간에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


네 번째 도시, 만달레이


만달레이로 가는 길, 새어 나오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울먹이며 말한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집을 볼 자신이 없어.” 그는 따스한 손길로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한다. 내가 이곳에 혼자였다면,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이 순간에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디돗 폭포, 택시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 커다란 비석에 새겨진 환영의 말이 보인다. 입구에서 멀지 않은 식당에 들어간다. 두 남자는 평범한 메뉴를 주문하고 나는 없는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주문한다. “Can i eat mix fried egg and tomato?” 고양이 두 마리는 나무 벤치에서 햇살을 만끽하고 깡마른 강아지는 그 아래 누워 단잠에 빠진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정상을 향해 걷던 중, 작고 예쁜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코 끝에 생긴 딱지를 보고 어릴 적 내 모습이 번진다. 그녀는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내 손바닥에 콩 두 개를 떨어뜨린다. 아이는 오랫동안 맑은 눈빛을 간직하게 될 것 같다.


폭포 정상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가파르다. 바닥에 박힌 돌이 미끄럽기 때문에 더 조심하지 않으면 다치기 쉽다.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서 조금 더 돌아가게 됐다. 아아, 점심을 먹은 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계획에 없던 트레킹을 하며 땀을 흘린다. 표지판이 온통 미얀마어로 적혀 있어서 올라가는 동안 몇 번이나 물었다. “Excuse me. Is this the right way to deedo..” 문장 끝에 물음표를 찍기도 전에 대답하는 아저씨도 계셨고.


하지만 험난한 여정의 끝에는 아름다운 폭포가 있었다. 에메랄드빛 물속으로 뛰어드는 여행자들과 바닥에 늘어진 맥주캔, 그리고 튜브 몇 개. 여름을 빛나게 하는 장면에 미소 지으며 더위를 달랜다. 민우 오빠와 빈은 흠뻑 젖은 채 해맑게 웃는다. “택시까지 가는 길에 옷이 다 마르겠는데?”



두 번째 목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목조 다리, 우베인 브릿지. 산책 도중 중국인 할머니의 부탁에 카메라를 받는다. 이 순간을 아름답게 남겨드리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해 셔터를 누른다. 그녀는 고맙다고 웃으며 우릴 찍어주겠다고 하신다. 사진가의 주문대로 팔을 하늘로 뻗어서 포즈를 취한다. 기대 없이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상상도 못 한 일몰의 순간이 찍혀 있다.

민우 오빠가 건네는 파인애플을 나눠 먹는다. 오른편엔 드넓은 초원이, 왼편에는 넓은 호수와 배가 보인다. 해질 무렵,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동생과 목욕탕에 갔다는 그에게 미얀마의 풍경을 전한다. “밥은 먹었어? 인천 도착하면 바로 집으로 갈게.” 누군가는 끝도 없는 다리를 따라 걷고,  누군가는 지는  곁에서 황홀한 시간을 보낸다. 모든 이들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저녁. 간절한 기도와 많은 바람이 하늘에 닿기를 




오전 아홉 시의 선착장. 밍군으로 가는 배는 느릿느릿 움직인다. 얇은 원피스만 입고 있었던 나는 바람을 피해 나무 쉼터로 도망친다. 느린 물결이 잠잠해지고 곧 도착했다는 외침이 들린다. 넓은 강물과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을 지나면 새하얀 파고다를 만날 수 있다.

만달레이, 한낮의 여름. 사원에서 만난 작은 아이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공간을 소개하며 셔터를 누른다. 보보의 시선이 남긴 아름다운 조각은 밍군을 빛낸다. 대나무 모자를 쓴 채 수줍게 웃는 작은 아이를 따라 사원 구석구석을 살핀다. 모두 맨발로 천천히 걷고 있다. 모든 사원이 신성한 이유는 누군가의 사랑과 기도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시간이 이곳을 오랫동안 지키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늦은 오후, 구불구불한 길을 열심히 달려 정상에 닿는다. 열흘 동안 많은 곳을 돌아봤지만 만달레이 힐이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사원이 아닐까, 생각했다. 여행의 막을 내리는 시점, 미얀마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서 길게 호흡한다. 수영장, 초록 정원, 작은 동네가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자 더없이 아름다운 장면이 이어진다. 빨간 선글라스를 쓰신 할머니와 그녀의 곁을 지키는 할아버지의 모습. 이런 다정한 순간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선물 이리라.

타일은 석양에 부딪쳐 눈부시게 빛난다. 우리는 그림 같은 곳에서 황홀을 누린다. 가장 적당한 시간에 당신과 마주 앉아 저녁나절을 함께 보내는 . 석양이 만든 자연의 빛깔을, 밤의 고요를 만나는 .


만달레이 언덕에서 내려와 마지막 밤을 맞는다. 숙소에서 프리 칵테일을 제공한다는 말에 루프탑 바로 향한다. 쌀쌀한 바람에 론지를 어깨에 두른 채 스테이크를 먹는다. 미얀마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니까, 약간의 일탈은 괜찮을 거라며. 버터와 으깬 감자, 양파 튀김을 입에 넣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이제는 미얀마를 떠나야 한다. 긴 여정이 막을 내리는 새벽,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거리가 붉은빛으로 물들자 긴 안개가 걷힌다. 우리의 아쉬움을 위로하듯 느린 속도로, 아주 천천히. 머지않아 많은 사원들과 해질 무렵, 그리고 뜨거운 샨 누들을 그리워하게 되겠지. 열흘 동안 차곡차곡 쌓인 수많은 장면들, 고마운 사람들, 야간 버스 또한.

밍글라바, 째주바 미얀마. 따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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