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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r 24. 2020

소라와 모래성을 마음에 담았어요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지만 모두 꿈을 잃지 않기를.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토요일의 일탈을 누린다. 예를 들면 유부초밥과 감자 샐러드를 싸서 바다 피크닉을 준비하는 . 여행의 시작을 아침으로 정하면 분주해진다. 도시락을 책임지는   나의 몫이니. 하지만 게으름이 비껴  자리에 설렘과 기대가 가득 채워지는 시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얇은 폴라티  장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에 두꺼운 가디건을 챙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예정에 없던 장면을 마주하기도, 상상도   순간에 걸음을 멈추기도 하겠지.

어깨에 돗자리를  남자와 만나 엷은 미소를 짓는다. 동행자는 사촌 오빠와 그의 여자 친구 설희. 그들은 아주 사소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볕에 널어둔 빨랫감처럼 뒷좌석에 몸을 붙인  늘어진다. 창문을 열면 기분 좋은 바람이 몸을 감싼다. 새로운 계절을 느낄  있다는 . 인생에 주어지는 수많은 축복  하나가 아닐까.



 두시 , 부안에 닿는다. 오빠는 지도에 칠해진 파란색을 보고 무작정 바다로 향한다. 처음에 멈춘 곳은 비포장도로였으나 그다음은 우리가 찾던 곳이다. 바다가 있는 공원, 아무도 없는 정자에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꺼낸다. 화려한 만찬이 펼쳐진다. 몰아치는 바람에 쇼핑백이 제자리를 이탈하지만 굶주린 이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식사를 이어간다. 아마도 꽃이 피고 날씨가 좋아지면 도시락을 드는 일이 늘어날 테다. 봄을 미워할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채석강에 물이 빠지길 기다리는 동안 솔섬에 가기로 한다. 가까운 곳에 섬이 보인다. 어쩌면 아득히  곳이  수도 있지만.  발자국 너머에 파도와 씨름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들은 작은 손에 저마다의 행복을 모아 물가로 달려간다. 바다에는 이렇듯 소중한 마음과 고마운 시간이 녹아 있다. 젊은 연인은 적당한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일광욕을 즐긴다. 나와 당신은 거기에서 조금 떨어져 모래성을 쌓는다. 성은 머지않아 무너진다. 자갈에 물기가 마르지 않은 . 하는  없이 물길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린다. 바다에는 힘이 있다. 모든  사랑할  있을 만큼,  찰나를 영원같이 만드는 그런.


오후 여섯 . 파도가 잠잠해지고 길이 열리는 시간. 절벽을 안고 있던 물은 사라지고 바닥이 보인다. 해변에 있던 사람들이 바다 산책을 시작한다. 밀물과 썰물 사이를 걸을  발끝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바다로부터 몸을 구할  있는 최선의 방법 이리라. 자연과 친한 내가 앞장서 걷는다. 무서운  뒷걸음을 치기엔 당신에게 씩씩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 줬기 때문.


저녁 무렵의 태양은 더없이 붉은빛으로 물든다. 해식동굴 앞에서 카메라를  수많은 여행자와 만난다.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고 밤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결국 절벽이 아닌 일몰과 사람들을 마음에 담고 돌아가기로 한다. 우리가 만난 저녁은 어떠한 기록으로도 설명할  없으니. 지는 해와 계단 끝에 새겨진 파도 자국이 감탄을 자아낸다.  봄이 오겠지. 이보다  힘찬 날들과 희망에  기운들이 세상에 가득 피어나겠지. 파도 소리가 금세 사라져도 솔섬의 소라와 모래성을 잊지 말아야지.


오랫동안 고집하던 가르마 방향을 바꿀 ,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고 믿는다. 까진 뒤꿈치가 아물 때쯤 봄이 왔다.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지만 모두 꿈을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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