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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26. 2020

초여름의 단상

그러니까 소중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바야흐로 꽃가루의 계절. 창문을 열면 피아노 덮개가 노랗게 물들고 마는, 초여름이 왔다는 증거다. ‘입하’라는 단어에서 금방이라도 싱그러움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데 창밖으로 비가 내린다. 비 소식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는 느린 산책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신발 안으로 엄습하는 빗방울과 찬바람이 가장 큰 불청객 이리라.

문득 개구리를 잡겠다며 아파트 단지를 헤매기도 하고 여름 샌들을 손에 든 채 빗길을 걸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여느 때와 달랐다. 물의 시간을 오롯이 누리고 싶었다. 물안개가 자욱한 어느 숲 속, 투명하고 청아한 소리에 모든 동작을 멈춘다. 새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날갯짓을 한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지. 짧은 회상이 안겨 준 황홀과 고요를. 비 오는 날 숲의 정경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학교는 점차 활기를 찾고 있는 듯하다. 이슬로 촉촉해진 길 옆에 핀 철쭉도, 눈꽃을 피우기 시작한 이팝나무도,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하늘까지도. 많은 것들이 초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마지막 연주까지 남은 시간은 40일 정도. 곧 달력에 적힌 숫자를 지우거나 초조한 마음으로 악보에 고개를 파묻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불안한 음악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무대 위의 떨림이 나를 집어삼키는 건 아닌지 두려워하면서.


하지만 나는 ‘하루’의 힘을 믿는다. 나를 단단하게 만든 순간들은 그 어떤 것과 비할 수 없을 테니까. 오랫동안 모아 온 조약돌과 소라 같은, 작고 소중한 것처럼.

​집으로 돌아온 밤, 당신에게 받은 꽃을 화병에 담는다. 유리병에 채워둔 물이 마른 잎을 살려주기를 바라며. 오 월, 협탁 위에 올려진 여러 흔적을 살핀다. 스톡이 내뿜는 은은한 향과 비진도의 조각들, 하루의 끝을 달래는 캔들. 고요의 한 부분을 가만히 껴안고 싶지만 스위치를 끄고 어둠을 부른다. 침대에 머리를 대는 순간 기절할 걸 알기 때문. 아침이 오면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고, 어쩌면 지루하다고 느낄 만큼 평범한 순간이 이어지겠지. 그래도 우리는 거기서 희망을 찾고 꿈을 꾸게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비 오는 날의 강의실. 수업은 미국의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녀가 집 앞에 수많은 클래식 LP판과 오래된 가구를 진열해 놓은 덕분에 가난한 유학생들은 그곳에 들러 무언가를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집주인은 전공생만큼이나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성악가가 어디서 숨을 쉬고 어떻게 노래를 부르는지 알 정도로.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악보를 읽는 작업에 더 큰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한다는 것.

 ‘Die Mainacht(5월의 밤)’. 작고 차분한 목소리로 시를 읊는다. ‘오, 미소 짓는 그대 모습 새벽 여명처럼, 나의 영혼 속까지 비치던 게 언제인가.’ 문장의 마침표는 선생님의 또 다른 과거로 이어진다. 주인공은 메피스토 왈츠에 빠져있던, 시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대학생. 그는 여자 친구와 함께 음악회에 가서 아름다운 순간을 만났으며, 글자에서 전해지는 감동을 처음 느꼈던 것이다.

 그 말에 비슷한 경험이 떠오른다. 연주가 끝날 무렵, 건반의 울림과 시의 한 문장에 마음이 휩쓸려 마음이 동했던 어느 날. 평범한 언어가 몇 개의 음을 만나 파도를 만든 찰나를 기억한다. ‘나는 좋은 어머니의 집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요.’ 슬픔이 깃든 선율에서 사랑하는 공간이나 엄마의 모습을 상상했던 것 같다. 무대가 막이 내릴 때까지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슬픔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찾았다면, 그게 음악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가사를 읽고 시를 전부 이해했다면, 이제 단어와 문장에 생명을 부여하면 된다. 피아노를 치는 건 그다음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자에게만 악보를 펼칠 자격이 주어지는 것. 결국 음악은 숱한 노력과 고민의 흔적들이 모여 비로소 완성된다. 단어에 녹아 있는 감정과 색깔, 음표가 향하는 지점, 악기와 목소리, 또는 다른 악기와 생각을 나누는 일 같은.

 문득 이 험난한 여정에 오르게 된 시점이 궁금해졌다. 그건 아마도 열여덟, 알지도 못 하는 독일어를 공부하고 노래를 부르며 성악가와 호흡을 맞춘 순간이 아닐까. 슈만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바친 가곡집<미르테의 꽃(myrthen)> 첫 번째 곡 ‘Widmung(헌정)’. 어린 나는 그 작품을 공부하면서 시와 음악에 빠진 게 틀림없다.

 얼마 간의 회상을 끝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의 리듬에 맞춰 맑고 투명한 피아노 소리가 강의실을 울리는 아침. 글자의 숲을 산책하며 음악을 듣는 일을 사랑한다. 시를 읽고 마음을 쏟으며 종이에 그려진 음을 노래하는 것, 누군가의 감정을 헤아려 보는 것. 여기에 청춘을 기꺼이 바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까, 소중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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