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으로만 기능하지 않기
책의 첫 날개에는 항상 저자 소개가 적혀 있다. 문구인, 마케터, ~자, ~가, ~사...로 끝나는 명사들. 나한테 그런 이름표를 붙인다면,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지 자주 생각해보곤 했다.
괜한 반항심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나를 '직업인'으로 규정하는 건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 마음을 변호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보자면, '직업인'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면, 그 즉시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니까. '직업인'으로 있을 때만 내가 존재한다는 뜻이 되니까.
자신을 '직업적' 관점으로 소개하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건 이 사회에 쓸모가 있어야 존재가 허락됨을 전제하는 지극히 '기능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했다. 기능이 있을 때만 타인 앞에 나서서 소개할 수 있고, 이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건 어딘가 불편했다. (직업이 없을 때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쭈뼛대던 경험이 있었고, 타인에게서도 그런 순간을 꽤 자주 목격하기도 했다) 그저 있는 그대로, 가끔 '쓸모 없는' 구석이 있어도 온전히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보다 너그럽고, 관대한 이름표가 있으면 했다.
그 때, 우연히 '생활인'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자각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거다! 내가 뿌리내릴 단어가. 사전에서 찾아 본 단어의 풀이가 썩 마음에 들었다. "세상에서 활동을 하며 살아 나가는 사람". 여기서 '활동'의 1번 뜻은 '몸을 움직여 행동함'인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쉴 때도, 멈춰설 때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한텐 그냥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살아 나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크게 다가왔다.
그 말을 마음에 품고 나니, 비로소 나만의 안정된 소속감이 생긴 느낌이었다. 아, 나는 생활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야. 기능적일 때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냥 태어난 것 자체로 여기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은 이렇게 번드러지게 했지만, 실은 자기만의 영토를 아직 확보하지 못한 자의 콤플렉스 같기도 하다. '전문' 영역이 부재한 것에 대한.
실제로, 원체 성향이 다양한 것에 깨작깨작 관심이 많아서 여러 땅에 발을 걸치고 있다. 언제나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며 호시탐탐 재미 있어 보이는 것들을 훔쳐본다. 굳이 따지자면,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에 가깝고, 찍먹파다. 부먹파는 못 된다. 엉덩이를 딱 붙이고 머리 쓰고, 암기하고, 공부하는 데엔 재능이 없어서 누가 돈 주고, 학비 내주고 다 해줄 테니 가방끈 늘려오라고, 어디 유학 가서 학위 따오라고 해도 못한다.
어쩌면, 그래서 내게는 '생활인'이라는 이런 자기만의 영역 확보가 중요했는지도 모른다(단어만이라도. 스스로 규정해낼 수 있는 언어를 가지는 힘!).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확실한 무언가, 내세울만한 무언가가 있는데, 나는 여기저기 찍먹하기에만 바쁜 사람이니 어느 한 곳에 자리 잡지 못하고 부유하는 종이배 같았달까.
세상엔 한 우물만 파는 사람도 있고, 뷔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건데. 오랜 시간 나는 한 분야의 전문가만이 결국 내가 당도해야 하는 길, 절대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만 진득히 파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게 하나의 저주 같았다. 하물며.. 길 다니면 숱하게 보이는 로드샵 화장품에 빠진 사람이나, 학창시절 때 한 명씩은 마음에 품고 있었던 연예인 등.. 무언가 하나씩은 마음 깊이 빠져본 경험이 있다는데.. 글쎄? 나는 그런 게 없는 걸요.
최근에서야 그런 내 성향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하나만 파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먹어보는 것을 좋아해. 그리고 이 사회에서의 나의 포지션은 생활인이야. 전문가로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주어진 내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야. 전문가는 전문가의 일이 있고, 생활인도 생활인의 일이 있는 거야. 생활인은 세상에서 얻은 앎을 내 삶에 적용해보고, 살아가는 것으로 부던히 실천하는 사람인 거야. 살아가는 모습으로 독려하는 사람인 거야.
요새는 그저 자기 삶을 성실히 살아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가꿔나가는 사람에게 눈길과 마음이 간다. 그리고 그런 생활인들에게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
이렇게 구구절절 '생활인'이라는 단어에 애착이 생긴 이유를 늘어놓았지만, 내년, 아니 다음 달이 되어서 생활인은 무슨 생활인이야, 그냥 아무 것도 아니야. 하고 애써 마음 붙인 단어를 뜯어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갑자기 어떤 것에 푹 빠져버려서 전문가가 되겠다고 호들갑을 피우거나. 아마도,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해 나가며 바뀌어나가겠지.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살아 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