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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쉬 Oct 14. 2021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J. M. 케인

 닉이 차에 탔다. 하지만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난 두 다리로 힘껏 버티면서 그의 턱이 아직 창에 있을 때 렌치를 내려쳤다. 그의 머리가 깨졌고, 부서지는게 느껴졌다. 그가 축 늘어졌고 소파 위의 고양이처럼 좌석에서 몸을 둥글게 오그렸다. 그가 조용해지는데 일 년이 걸리는 것 같았다. 


 프랭크와 코리, 이 불륜 커플은 닉을 죽이기 위해 모의한다. 사랑에 눈이 멀었거나 자신의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서로를 이용했거나. 어찌됐든 그들은 닉을 죽이는 일을 성공했다. 이 둘은 사랑을 넘어서 '공범'이라는 사슬에 얽혀버렸다. 더 이상 이들을 '사랑하는 연인'으로 포장할 수 없다. 방랑자였던 프랭크는 그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서로는 싸우고, 화해하는 갈등 안에 갇혀버렸다. 커플에게 싸움은 일종의 도화선이다. 싸울문제를 가득 안고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불이 내려왔을 뿐이다. 공동의 적이 없어진 지금(닉은 불쌍하고 멍청한 피해자일 뿐이지만) 둘에게 마음을 합칠 더 큰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기 위한 가면만 남았다. 


 당신이 날 배신했어 프랭크.
아니, 그렇지 않아. 그가 내게 시켰어, 코라. 그의 서류에 서명해야 했어. 그러지 않았으면, 그러면 그가 모든 걸 알아챘을거야.
당신이 나를 배신했어.
그리고 내가 당신을 배신했어, 프랭크


  가장 큰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 또, 사랑으로 누군가를 죽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자신을 죽이지 않을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코라는 새로운 여자와 여행을 다녀온 프랭크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서로 공존하기 위한 룰이 깨진 기분이 아니었을까.

  인간의 마음 속에는 복잡한 가치들이 존재한다. 인간은 그것을 행동으로 옮김으로서 그것이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악한 것이든, 선한 것이든 말이다. 나는 선한가? 아니면 나는 그저 악한가? 우리는 나를 어떻게 증명하는가. 윤리와 사회적 규범으로 억눌려져있는 그것들을 사실 바랄 때가 있지 않는가? 그렇기에 인간은 선택하고 행동하고 책임진다. 사회가 연대하고 악한 것을 부정하며 선한 것을 장려한다.  서로 사랑은 억제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준다. 배신을 한 코라와 프랭크는 연대가 깨어져, 억제력을 상실했다. 그렇기에 코라는 프랭크에게 매달리고, 프랭크는 다른 여자를 찾았다. 평소와 같이 방랑자처럼. 

 둘의 결말은 사실, 닉을 죽이자고 말하던 그 시점에 정해졌다. 자신을 못된 고양이라고 말하는 코라. 훗날, 프랭크에게 당신의 삶에 고양이는 재수가 없다고 외치는 코라의 삶이 비참하다. 그저 프랭크를 괴롭히는 고양이 밖에 될 수 없었을 뿐이다. 


결국 프랭크는 닉을 죽이고, 코라도 죽게 했다. 그것이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프랭크는 사형을 선고 받는다.

 프랭크의 죄의 업보는 포스트맨처럼 벨을 두 번 눌러 알려주고 있다. 


조쉬의 인스타그램 @underyaw
다대포예술기지 @ddp.artbase.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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