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쉬 Sep 07. 2021

우울증과 홈파티 - 김림 작가

아직도 헤매는 우리에게

"나만의 공간에서 나는 늘 감정에 속수무책인 사람,

다가오는 파도에 영리하게 도망가기보단 그대로 휩쓸리고 마는 모래성 같은 사람" p.26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적은 관찰기일까. 28살이 된 아직도, 스스로 안에서 헤매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치울 시간도 주지 않고 드러내진 기분이었다. 올해 뜻이 맞는 사람들과 서점을 개업했다. 막연히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상황이 바뀌고 할 일은 늘었지만, 아직도 나는 스스로를 가두고 고민한다. 겉으로 평온한 사람, 감정의 폭이 작은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저 겁 많고 유약한 인간 아닌가. 내일이 두려워 꿈꾸기를 더디 하며 산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지 않다. 동시에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이 복잡한 심경이 얽혀 거미줄같이 입을 다물게 한다. 입을 열지 않음이 괜찮음이 아님에도, 마음속으로 괜찮다고 치부해버리며 살고 있다. 헛되게 위로하지 않는, 하지만 나와 같이 마음 한편에 우울이 넘쳐 잠겨있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 복잡 미묘한 동질감과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이 쓰게 느껴진다.


"아빠는 엄마에게, 엄마는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 이 모든 게 아빠 탓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아빠도 아빠의 가족들에게서 상처를 받았고, 그렇게 거슬러 오르다 보면 누구 하나 가해자이기만 한 사람이 없었다." p.32


 모든 문제의 원인을 어떤 대상에게 돌려보았는가. 원망은 만들고 잠시 잊어버리면 입으로 튀어나올 만큼 불어나서 걷잡을 수 없어진다. 잘 지내는 틈에도 스스로 만든 원망은 언제 튀어나갈지 눈치를 보고 있다. 그때 결국 이상해지는 사람은 나다. 이런 슬픈 사실과 더불어, 나 또한 다시 가해자가 되는 굴레에 갇히게 될까 두려운 마음에 소중한 사람과 가까워졌던 거리를 한 발치 뒤로 내빼게 되더라. 결과적으로 그것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게 되기도 하지만 큰 상처를 줄 바엔, 작은 게 낫지라며 애써 합리화할 뿐.


"엄마가 말하길 아빠는 하고 싶은 걸 못해 슬퍼하다 죽었다고 한다. 때문에 엄마는 그런 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며 살았다........(중략) 이 길을 벗어나도 양쪽에 더 많은 길이 있다는 걸, 나는 알면서도 모른다." p.135


 내년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법" 배우기다. 지인들에게 지나가듯 말하면, 대개 '행복하지 않으면 안 살 거냐'는 반응이다. 행복하게 사는 게 모두가 회의적일 만큼 불가능한 일인가. 그럼 문제는 내가 아니라, 그런 세상이 문제 있는 게 아닌가! 모난 돌이 정 맞듯, 철부지를 바라보는 눈빛이 쏘아지는 게 두려워 웃음 뒤에 앞 말들을 숨겨본다. 다시금 웃음으로 치장하면 잘 적응하고 살아가는 고등생명체로 여겨질 것 아닌가. 그저 내년에는 후회 없이 행복해보고자 다짐해본다. 아니면 말고.


 "평소에 속 이야기를 잘하지 않을뿐더러, 말로서 나를 설명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런 욕구가 아예 없다면 좋을 텐데, 나는 하고 싶은데도 잘 못하겠다." p.143

 

 어느 순간 힘들지 않다. 사실 힘든 게 뭔지 모르겠어서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그냥'이라는 단어가 매우 잘 설명해준다. 배가 아파서 의사한테 갔더니,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고 묻는 것 같다. '선생님. 그냥 배가 아파요.' 이 말은 잘못된 것일까. 환자는 어디가 아픈지 자세히 설명할 능력을 의무적으로 갖추어야 할까. '그냥 아파요'라고 밖에 못하겠는데 말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 '그냥 잘 지내.' 그뿐이다.


 부산의 나락 서점에 방문했을 때, '우울증'과 '홈파티'라는 모순적인 단어에 이끌려 집어 들었다. 독립출판물에 대한 저평가가 내 안에 자리 잡을 즈음 만난, 김림 작가님의 책은 값싼 동정도, "나도 그래"라는 동질감도 아닌, 그냥 나 같은 사람이 흔하구나. 나 같은 사람이 저렇게 계속 살아간다 싶어 안심하게 되었다. 누구든 각자의 어두움을 안고 살아가다 짓눌릴 때, 이 책을 잡아보길 권한다. 나처럼 소심하고 눈치보기 바쁜, 겁 많은 사람들에게 내 공간을 한시적으로 내어주는 '홈파티'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그냥' 살아갈 거지만,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기보단, 언젠가는 서로 의지하며 사는 법을 배우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조쉬 (다대포예술기지 큐레이터)

인스타그램_@underyaw

다대포예술기지_@ddp.artbase.official    


작가의 이전글 꿈, 이상, 허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