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들은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하지 않는 부하 직원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직원이란 조직의 발전을 위해 항상 고민해야 하며, 그 고민의 흔적은 그들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상사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부하 직원들이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는 데 주저하면 '수동적이다', '소극적이다', '책임감이 부족하다' 같은 불만을 이야기한다. 불만이 아주 크면 '생각이 없다', '역량이 부족하다', '월급 거저먹으려 한다' 같은 비난까지 늘어놓기도 한다. 상사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관심이 없을 리는 만무하다. 하다 못해 잘 모르고 있는 일이면 궁금해하는 것도 관심이다. 그럼에도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것은 생각 없음의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상사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생각이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부하 직원원들이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원인이 많은 부분 상사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상사는 자유롭게, 허심탄회하게 말하라고 하지만 위계질서에 묶여있는 부하 직원의 입장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주눅이 들어서 겨우 입술을 달짝 거리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달짝 거리던 입술마저 굳게 만드는 것이 있다. 부하 직원들의 말을 대하는 상사의 나쁜 태도들이다.
부정적 피드백
부하 직원의 입을 막는 상사의 나쁜 태도 첫 번째는 부정적 피드백이다. 부하직원의 의견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 "아마 그렇게는 안될걸?" 같은 말을 가감 없이 하는 상사들이 있다. 이런 상사들은 자신의 말하는 방식이 '돌려서 말하는 것을 잘 못하는 직설적인 화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 말을 정확하게 해주는 것이 부하 직원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하지만 의견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그런 성격을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도움은 고사하고 그런 부정적인 피드백은 부하직원의 말할 용기를 빼앗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은 신념이나 생각, 의견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을 자신에 대한 평가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긍정적인 반응에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부정적인 반응에는 반대로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 나름 용기를 내서 의견을 말했건만 상사가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면, 그것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그런 일을 당한다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결국 다음부터는 말을 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당장 눈 앞에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낯 뜨거움과 부끄러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입을 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부정적인 반응을 몇 차례 경험하고 나면 트라우마가 생겨서 입을 열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다. 상사의 부정적인 피드백은 부하직원에게 마음의 상처다. 방긋 웃는 얼굴로 낸 직원의 의견에 양 미간을 찌그리고 입꼬리를 내린 채 반응했다면 회의실에서 그 직원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생각은 접어야 한다.
지독한 반박
날카롭고 지독한 반박을 가하는 것도 부하 직원의 입을 틀어막는 잘못된 태도다. 이런 태도는 앞서 말했던 부정적인 반박보다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사 자신은 자유로운 토론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막상 말을 꺼내 부하 직원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육하원칙을 들먹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박은 두 번 다시 그 의견을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정적 반응이 단순히 의견을 묵살하고 묻어버리는 것이라면 날카롭고 지독한 반박은 '확인 사살'까지 곁들인 것이다. 결국 부하 직원은 생각이 짧았거나 의견이 무의미했음을 자인해야 하고 민망함과 열등감을 느껴야 한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구태여 말을 할 이유는 없다.
이런 식의 반박을 일삼는 상사는 '의견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 논리적, 이성적으로 의견을 검토하고 분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상사의 속마음은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뿐이다. (때로는 의견을 말한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반대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안다. 상사들은 보통 자신의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나 의견이 나왔을 경우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거나 반박하지 않는다. 같은 잣대라면 마음에 드는 의견도 그렇게 반박을 주고받아 검증을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선택적 반박은 토론을 위함이 아니라 의견을 눌러버리기 위한 수단 말고는 다른 의도가 없다.
반박을 통해 직원의 입을 막는 상사는 자신의 경험이나 능력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 상사들은 경험이 부족하고 능력마저 일천한 부하직원의 의견이나 생각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폐기 처분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다만 부정적이거나 권위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토론이나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라는 미명 아래 반박을 통해 직원의 의견을 깎아내리거나 무위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상사 앞에서 가감 없이 의견을 얘기할 직장인은 많지 않다.
권위주의적 태도
상사의 권위주의적 태도도 직원의 입을 막는다. "됐으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는 말은 상사 입장에서 무척 간편한 의사결정 방법이다. 여기에 "왜 그렇게 말이 많아?"라고 한마디만 더 붙이면 금상첨화다. 말을 꺼낸 부하 직원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하다. 필요할 때는 의견과 생각이 없다고 타박을 하더니 막상 말을 하면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하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상사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직원이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의견을 제시해 봐야 권위로 찍어 누른다면 누가 입을 열고 싶겠는가?
많은 상사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위에 대해 착각을 한다. 수직적 위계질서 안에서의 권위는 어디까지나 직위의 부산물이다. 직위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권위는 그 직위에 한정된다.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권위를 개인의 우월감의 증명하는 수단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권위주의가 된다. 많은 상사들이 그런 착각에 빠져 자신의 지위에 부여된 권위를 권위주의로 변질시킨다. 그리고 그것으로 부하직원을 억압하거나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는 도구로 활용한다. 하는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권위주의의 오만한 태도로 일관하는 상사 앞에서 부하 직원들이 말을 꺼내길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이다.
형식적인 피드백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피드백은 직원으로 하여금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든다. "괜찮은 아이디어야.", "의미 있는 지적이야." 같은 말은 언뜻 듣기에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런 피드백만이 전부인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의견을 말한 부하 직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한 말이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될 말이 되어버린다. 의견을 낸 직원은 자신이 한 말이 실질적인 결과로 매듭지어져야 말을 한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면전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었다고 해도 아이디어 실현이 가시화되지 않거나 지적한 사안이 개선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많은 상사들의 소통이나 대화, 리더십에 관한 자기계발서를 통해 긍정적인 피드백의 '기술'을 배운다. 하지만 의식의 변화 없이 형식적으로 기술을 써먹는 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형식만으로의 긍정의 태도를 취하다 보면 결국은 '말로만 긍정'이 되어버린다. 말만이라도 그렇게 긍정적인 반응해주는 것이 어디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피드백이 진심이 없는 형식에 그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상사의 긍정이 형식적인 피드백에 머물게 되면 부하 직원은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필요가 없어진다. 피드백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괜한 기대감에 속고 싶지 않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상사는 부하직원의 의견이나 생각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형식은 그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결자해지 요구
마지막으로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요구하는 상사의 태도도 입을 열기를 꺼리게 한다. 직장인들은 곧잘 "말 꺼낸 사람이 책임져야지."라는 말을 한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웃어넘기고 말 농담이 아니다. 직장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일이 주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아이디어를 냈더니 "괜찮은 생각이네. 김대리 아이디어니까 김대리가 기획안 작성해 봐."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김대리가 그 일에 욕심이 있었다면 김대리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하지만 의견을 낸 것일 뿐이라면 말을 꺼냈다가 일만 떠맡는 꼴이다.
상사의 업무 분배가 즉흥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으면 직원들은 괜히 일이 늘어날까 봐 입조심을 하게 된다. 직장인의 복지부동을 탓할 일이 아니다. 하던 일에 일을 하나 더한다고 해서 월급을 더 주는 일은 잘 없다. 월급은 종량제가 아니라서다. 단기적인 효율성만 생각하면 일을 적게 하는 것이 직장인에게는 제일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봤을 때는 조금 다르긴 하다. 스스로 나서서 일을 만들고 추진하는 태도는 인사평가나 평판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또한 조건이 붙는다. 인사평가나 평판은 과정보다는 결과 주목한다.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결과도 좋아야 하는 것이다. 결과가 시원찮으면 인사평가에서도, 평판에서도 일한 만큼의 효율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말이 좋아 결자해지지 말 꺼냈다가 책임질 일만 생긴 사람에게는 독박이나 다름없다.
상사는 부하 직원이 낸 아이디어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상사가 업무분장의 권한을 갖고 있는 것도 그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낸 부하 직원에게 생명을 불어넣을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그 아이디어가 옳은지 증명하라는 말 밖에는 안 된다. 말 꺼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자해지의 자세를 요구하는 상사 앞에서 부하 직원은 겁이 나서라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의견이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것은 단순한 의사소통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의견에 대한 태도는 그 의견을 낸 사람에 대한 태도와 다름없다. 의견을 묵살하거나, 억누르거나, 뭉개거나, 따지고 들거나, 건성으로 대하는 것은 그 사람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다. 본인은 별다른 의도가 없다고 해도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그런 민망함과 불쾌한 감정을 겪으면서까지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는 직장인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말이든 글이든 그것이 먹힐만한 사람, 들어줄 만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 가장 속 편하다는 것을 안다. 부하 직원이 내 앞에서만 유독 말이 없다면 혹시나 내가 그 사람의 입을 틀어막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직접 물어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런 물음에조차 입을 다물 정도로 이미 부하 직원의 속은 굳게 닫혀있을지도 모른다. 부하 직원의 입을 막은 대가는 그 정도로 큰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