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The Story of
Future Writers

by 김성열 Aug 13. 2019

무례와 솔직함의 올바른 구분

자칭 '솔직한' 사람들

솔직함을 이유로 남의 속을 후벼 파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면 으레 그런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직장도 예외는 아니다. 충고랍시고 속 긁는 말을 가감 없이 내뱉는 상사, 돌려서 표현 못하는 성격이라며 비아냥에 가까운 평가를 늘어놓는 동료, 남의 속 헤집어 놓고서는 '사이다 발언'이니 '돌직구'니 하면서 쿨가이 코스프레를 하는 부하직원. 상사나, 동료나, 부하직원 중에 그런 '솔직한 사람'이 한 두 명씩은 꼭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듣는 사람 속 아픈 소리를 해대는 사람들의 행태는 대략 이렇다. 그들은 진심을 담은 말을 솔직하게 하는 것을 자신의 장점으로 여긴다. 남을 아프게 할 목적은 전혀 없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이다. 솔직한 언행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전적으로 진심 어린 발언을 유발한 사람의 몫이다. 솔직한 언행에 대해 불쾌해하는 것은 찔리는 데가 있다는 증명이자 속좁음을 내보이는 짓이다. 사람들은 무례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미움받을 용기를 갖춘 사람으로 규정한다.


솔직함은 의외로 잘 먹힌다. '있는 그대로', '진심', '사실' 같은 전제는 '솔직한 언행'에 결백함을 부여한다. 그런 솔직함에 항거하는 것은 결백한 언행을 부정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솔직함에는 함부로 대응하기가 어렵다. 덕분에 솔직한 말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맥을 추지 못한다. 기분은 언짢지만 '맞는 말'이니 받아들이자는 식으로 불편함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된다. 드물지만 불쾌함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은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왜 기분 나빠해?", "없는 말 한 거 아닌데 왜 감정적으로 반응해?"처럼 불쾌감을 표시한 사람을 '감정적인 사람'으로 몰아가는 말 뿐이다.


속을 후벼 판 사람은 단지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당한 사람은 무례하다고 느끼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속을 후벼 파는 그 말이 무례한 말인지 솔직한 말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 말이 무례한 것이라면 불쾌감을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한 그대로를 솔직하게 한 말이라면 불쾌해하는 내가 옹졸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다. 나의 태도를 정하기 위해 고민해보지만 어디까지가 솔직함이고 어디서부터가 무례함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그런데, 바로 그 모호한 구분점이야말로 '솔직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구멍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례와 솔직함은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 둘을 구분하려는 시도에는 어떤 언행이 무례가 아니면 솔직함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무례와 솔직함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개념이 아니다. 솔직하지만 무례할 수도 있고, 예의 바르면서도 솔직할 수 있다.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두 개념을 놓고 '무례가 아니면 솔직함', '솔직함이 아니면 무례'라는 결론을 끌어내려니 헷갈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자칭 '솔직한 사람들'은 이 잘못된 전제를 이용한다. "넌 무례해!"라고 비판하면 "무례한 것이 아니라 솔직한 거야!!"라고 하면서 빠져나간다. 


무례와 솔직함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솔직한 것은 무례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안 되는 전제 덕분에 생긴 헛일일 뿐이다. 이 허접한 논리는 '솔직함'을 핑계로 말을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이 만들어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남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으면 그에 따른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행여 비난을 받지 않는 위치에 있다 해도 죄책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는 인간관계에 적용되어 온 암묵적인 규범이다. 입으로 남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그런 비난과 죄책감이 싫어서 함부로 말하는 자신들의 성향을 '솔직함'이라는 포장지로 덮어 씌운다. 되는 대로 말은 내뱉고 싶은데 자기가 한 말로 인해 욕먹기는 싫다는 얘기다. 


해야 할 것은 솔직함의 구분

실제로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은 '무례한 솔직함'과 '무례하지 않은 솔직함'이다. '무례하지 않은 솔직함'은 글자 그대로 예의를 갖추면서 솔직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사를 솔직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예의를 갖추는 것은 소통을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한 목적이다. 조지타운대학교의 크리스틴 포래스 교수는 자신의 책 <무례함의 비용>에서 이를 '정중한 솔직주의'라고 명명했다. 정중한 솔직주의는 예의를 지키면서도 건설적인 피드백을 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크리스틴 포래스 교수는 연구에 의하면 정중한 솔직주의를 지닌 개인이나 집단이 무례한 사람들보다 더 창조적이고 효율이 높다고 한다. 


이와 달리 '무례한 솔직함'은 원활하고 효율적인 피드백이나 의사소통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당연하겠지만 무례한 솔직함은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이끌어내지도 않는다. 무례한 솔직함에는 단지 괴롭히고 상처주기 위한 의도가 숨어있을 뿐이다. 솔직함이라는 태도는 직설적인 표현을 동반하기 쉽다. 사회생활을 하는 정도의 나이와 사고의 수준, 삶의 경험이면 직설적인 표현이 상대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솔직하게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듣는 이의 심정을 살펴서 말을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도 굳이 무례를 무릅써가면서, 상대방이 아플 것을 알면서도 '돌직구'를 날리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처 주는 말을 서슴없이 해대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있는 대로, 생각한 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스타일이야. 그래서 가끔 오해를 사기도 해. 그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게 맞지 않아?" 이 말은 괴롭히거나 상처를 줄 의도가 없다는, 혹은 없었다는 결백함의 주장이다. 조금만 고민하면 괴롭히지도, 상처 주지도 않을 수도 있는데 굳이 결백함을 내세우는 것은 공격의 정당성을 외치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그 결백은 무슨 수로도 입증이 안된다. 그저 본인만이 진위 여부를 알고 있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런 결백을 깔아놓고 말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이미 다른 의도를 의심케 하는 행위다.


더 중요한 것은 무례한 솔직함을 구사하는 당사자가 결백하든 결백하지 않든 맞은 사람은 아프다는 사실이다. 나의 언행으로 누군가가 상처 입었다면 결백함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한다. 하지만 상처 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다. 기껏 사과를 한답시고는 "상처 입었다면 미안한데 내가 좀 솔직한 성격이라서..."라는 식으로 뒤에 단서를 붙인다. 아픈 건 알지만 성격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다. 자기 성격을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의 솔직함에 남이 상처 받을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도 그렇게 행동한 것은 의도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반적인 직장 생활이 위계질서 안에 있다 보니 솔직함의 탈을 쓴 무례임을 뻔히 알면서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부하 직원이나 비슷한 직급의 동료 직원이 그렇게 나온다면 한마디 해줄 수 있다. 당신의 성향 때문에 내가 상처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당신의 솔직함이 남에게 상처가 되는 걸 안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솔직해지지 말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솔직함을 핑계로 속을 찔러대는 상사나 고객은 막을 길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자기합리화에 너무 매달리는 일은 피해야 한다. 다 잘 되라고 해주는 말이거니 하고 합리화해버리는 것은 상처 받은 자신을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처를 준 사람이 반성할 일을 상처 받은 사람이 성찰할 필요는 없다. 솔직함 운운하며 함부로 말을 내뱉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독설은 잘 되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아프라고 하는 소리일 뿐임을 잊지 말자.

이전 06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직장동료의 유형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생각하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