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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Sep 18. 2019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직장동료의 유형

직장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일을 하는 곳이다. 업무분장이라는 구실로 구성원 각자의 일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결국은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직장생활의 본디 모습이다. 이렇다 보니 타인을 대하는 일을 피할 수 없다. 비록 같은 직장에서 일한다고는 하지만 살아온 궤적이 전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사람과의 관계를 직장생활에서 힘든 점이라고 꼽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래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함께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거나, 아예 노력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비관론자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직장인의 대표적인 유형이 비관론자다. 비관론자들은 일을 할 때마다 습관처럼 부정적인 예견을 일삼는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예전에 내가 해봤는데 안 되고, 예전에 누가 하는 것을 봤는데 안 되더라 하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의 기운을 빼놓는다. 듣는 사람은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혹시나 다툼으로 번져 분위기 흐릴까 봐 아무 말 못 하고 끙끙 앓기만 한다. 게다가 '비관론자는 체계적'이라는 말처럼 비관의 이유를 반박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기껏 반박해봐야 관점의 차이, 그런 염려도 필요 운운하면서 빠져나가면 그만이기도 하다. 


때로는 이런 비관론이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해내거나 새로운 발상의 실마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비관론이 문제의 해결책을 제공한다거나 새로운 아이디어 자체가 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비관론은 어디까지나 부정적 결과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성공의 가능성을 배제한 관점이 긍정적인 방향을 도모한다는 것은 '부정적 긍정'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실제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거나 실패했을 경우 비관론자는 힘을 얻는다. "그것 봐라, 내가 안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안 그래도 실패에 속이 상해 있던 사람들은 기분이 더 안 좋아진다. 비록 비관론을 펼쳤던 동료가 결과에 대해서 드러내 놓고 말하진 않더라도 속으로는 '내 말이 맞았지?'라고 득의양양해하고 있을 것을 상상하면 약이 오른다. 그래서 일이 잘 되든 잘못되든 애초부터 비관론자와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비관적인' 결론만 나오게 된다.


'비관론자'라고 쓰긴 했지만 사실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존재론적 차원이나 염세주의자를 만날 일은 거의 없다. 업무에서 비관론을 펼치는 사람은 그저 책임지기 싫거나 두려운 것뿐이다. 실제로 그 사람의 말처럼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경우 그 사람은 그 책임을 같이 지려하지 않는다. '거봐, 내가 안된다고 했잖아~' 하면서 일단 자기 방어를 해놓는다. 반대로 목표 달성에 성공했을 경우는 그저 운이 좋은 것으로 치부한다. 성공하나 실패하나 끝까지 주위 사람들의 기운을 빼는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오지라퍼

남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오지라퍼'와 일을 하면 속이 뒤집어질 확률이 높다. 자신의 직무 분야도 아니면서, 업무 방향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지도 않으면서, 딱히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 '접근 방법이 틀렸다' 따위의 아는 척을 해대는 유형이다. 경험이 많은 고참이거나 역량을 충분히 검증받은 사람이면 모르겠지만 도토리 키재기 수준의 그저 그런 사람이 아는 척을 해댈 때는 정말로 한 대 쥐어박고 싶어 진다. 


게다가 남 일에 참견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을 평가하는 데도 능하다. '누구는 저 일에 안 맞는 것 같다', '누구는 생각보다 일을 잘 못하는 것 같다' 따위의 말들을 여기저기 흘리기도 한다. 이런 사람과 같이 일을 할 때면 온갖 잔소리와 경험담,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 자기 자랑, 뒷담화 같은 것들을 감당해야 한다. 회식 자리에서는 인싸일지 몰라도 일을 할 때는 아싸 취급을 하고 싶게 만드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사람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우월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객관적 평가를 통해서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프레임을 만들고 그 프레임을 사람들 사이에 심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물론 선배로서, 경험자로서 도움이 될까 하여 선의의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데, 의외로 선의의 조언자인지 프레임 메이커인지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사람의 일을 두고 조언을 해보면 된다. 콧방귀를 뀌거나 빈정거리거나 반대 의견을 강하게 쏘아붙인다면 지금까지 그 사람의 조언은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한 오지랖의 날개일 뿐이라 생각해도 된다.


엄살쟁이

남들과 비슷하게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유난히 엄살을 떨어대는 사람도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들은 '업무가 너무 많다', '혼자 다 하려니 힘들어 쓰러질 지경이다', '어려운 일은 나만 한다' 따위의 너스레를 떨어가며 일하는 티를 팍팍 낸다. 사실 그 사람이 담당한 업무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정말 힘든지 엄살을 떠는 것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엄살쟁이 직장인이 노리는 바가 그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일을 군말 없이 했던 경험자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함부로 꺼내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능력만 하향 평가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엄살에는 의도가 있다. 하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성실한 직장인' 또는 '고생하는 직장인'으로 자신을 인식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일종의 캐릭터화 작업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한다. 캐릭터라는 것은 이미지가 모이고 쌓여서 응축된 결과다. 과장된 몸짓이나 가식적인 언변은 눈에 띄기는 해도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과장과 가식 밖에 없다. (과장과 가식의 캐릭터가 되고 싶었다면 대성공이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관심을 끌려고 드는 사람이 바로 엄살쟁이다. 


엄살의 다른 의도 하나는 자기 열등화 전략이다. 자기 열등화 전략이란 자신의 능력을 낮게 설정하고 실패 원인을 외부로 돌려 성과 평가에 영향을 주려는 심리적 수법이다. 엄살쟁이 직장인은 많은 업무량, 높은 업무 난이도 같은 외부 환경을 미리 설정해두는 것으로 자신이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없는 구실로 삼는다. 업무 성과가 좋지 않을 경우 외부 환경을 탓하면 되고 업무를 잘 처리했을 경우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속된 말로 '약을 파는' 행동이라 보면 된다. 이런 엄살은 자신감이 없거나 성과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까 두려울 때 쓰인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feat. Free rider)

직장은 일하는 곳이다. 열심히든 즐겁게든, 성실성이나 노력 따위를 떠나 맡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직장인의 미덕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악덕이다. 조직에 대해서만 악덕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도 폐를 끼친다. 너무 당연하게도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동료와 일하고 싶은 직장인은 없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에는 여러 가지 패턴이 있다. 담당한 업무를 제 때 하지 않고 '뭉개는' 사람, 업무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 긴장감 없이 내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 등이다. 담당한 업무를 뭉개는 사람은 결국 다른 이로 하여금 일을 떠맡게 하거나 전체 일정이나 업무 과정에 악영향을 준다. 업무에 관심이 없는 사람(주로 업무 이외의 사적이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은 업무의 완성도가 낮고 동료들의 업무에도 무관심해 팀워크를 해친다. 긴장감 없이 되는대로 일하는 사람 역시 업무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사기를 꺾는다.


이런 사람들이 업무 역량이 낮거나 자질이 떨어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애정이 없는 사람들이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으로 직장생활을 이어가는 서글픈 직장인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이런 직장인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의 성과에 묻어가려는 무임승차자(Free rider) 경향을 보인다. 이런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면 시너지 효과는 고사하고 뒤치다꺼리나 해줘야 한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교과서대로 하자면 동기부여를 통해 업무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만, 말이 동기부여지 이미 머리가 굵을 대로 굵은 성인에게 자기변혁을 요구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교과서대로만 된다면야 스티브 잡스 같은 기업가가 10만 명쯤은 나올 것이다. 현실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을 먼저 생각하는 게 낫다.


남 탓하는 사람

세 살 때 몸에 밴 버릇처럼 남 탓을 일삼는 사람은 짜증과 어이없음과 분노를 동시에 일으킨다. 일이 좀 잘못되거나 자신이 힐난을 받아야 할 상황에서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같이 일한 동료에게 책임을 돌리는 모습은 짜증이 넘어 분노를 유발한다. 많고 많은 변명거리를 제쳐두고 매일 눈을 마주쳐가며, 때로는 냄비 하나에 끓인 부대찌개를 나눠먹는, 한 솥밥 먹는 동료를 희생양으로 삼는 행위를 보고 있노라면 비열하다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이런 사람과는 일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이유에도 함께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정상이다.


직장이라는 곳이 특별한 인연으로 인해 사람들이 모인 곳은 아니다. 우연히 같은 조직과 근로계약을 맺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사람들의 집단은 단순히 사람들의 집합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집단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결합과 결속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직장 역시 사람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직원 개인과 조직과의 계약 관계만으로 존속될 수는 없다. 임직원들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그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직장에서의 남 탓은 잠시의 곤란을 피하기 위해 그 유기적인 관계의 사슬마저 끊어버리는 짓이다. 잠시 비난과 질책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좋지 않은 평판일 뿐이다. 아마 남 탓을 한 사람은 직장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며 살아남은 자가 강한 사람이라고 어설픈 합리화를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다니고 말 직장이 아닌 이상, 결국 한 치 눈 앞만 보는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같이 일하면 짜증을 부르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직장 동료로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는 크게 문제는 없다. 아마 문제가 있었다면 이미 조직에서 조치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어쨌든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이 유별나거나 이상한 직장인이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일은 같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언뜻 당연한 반응인 듯 보이지만, 많은 선량한 직장인들은 그런 생각이 들 때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갖는다. 심지어 짜증을 부르는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은 꺼려한다는, 반감(反感)이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누군가를 꺼리고 반감을 갖는 것은 그 사람이 나로 하여금 좋지 않은 감정을 들도록 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해석을 빌려 말하면 이렇다. 반감은 '슬픔의 원인이 되는 사물의 관념을 동반'하는 슬픈 감정이다. 그리고 슬픔은 '정신과 신체의 활동성을 약화시키는 감정'이다. 즉 같이 일하면 짜증을 부르는 사람을 멀리 하려는 것은 정신과 신체의 활동성을 약화시키지 않으려는 '자기 보존의 의지(코나투스 conatus)'이다. 그러니 짜증을 부르는 그들을 꺼려하는 마음이 들어도 그리 미안할 필요가 없다. 적당히 눈치 주고, 그것으로 모자라면 진심 어린 조언과 주의를 주고, 그것으로도 안 되면 그만이다.


마지막으로, 같이 일하면 짜증을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집단 내의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고 팀워크를 해치며 시너지 효과를 깎아먹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성공, 자신의 안전, 자신의 편안,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다른 이를 염두하지 않는 자기중심주의에서 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주변에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자기중심주의는 얄팍한 실용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동료를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혹시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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