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인사를 하는 이유
직장인이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이 인사다. 반드시 인사를 해야 한다는 규칙을 두는 곳은 드물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간혹 인사를 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출근을 하고서 처음 마주치는데도 무덤덤하게 지나쳐 가거나,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으면 기분이 영 좋지 않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면 그러려니 한다. 이미 인사를 나누었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고 다른 생각을 하느라 상대의 인사를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당장은 찜찜한 기분이 들기는 해도 그 후에 인사를 잘 주고받으면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랬으려니 하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상습적으로 인사를 거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을 갖기 어렵다. '원래 인사를 잘 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에서 제처 두려 해도 '인사를 생략당할 때마다' 기분이 언짢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직장에서의 인사는 형식적인 예절이나 예의의 범주를 넘어선다. 직장에서 나누는 인사는 공동의 목표를 두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연대감을 확인하는 수단이며 유대감을 높이고자 하는 의식의 표현이다. 또, 상대의 권위를 존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더 나아가면 상대 존재에 대한 인정의 의미도 갖는다. 쉽게 말해 직장에서 나누는 인사는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나는 당신과 당신의 권위를 존중합니다. 당신도 나를 존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는 의사의 함축적 표현인 것이다. 인사를 받지 못하거나 인사에 대한 대꾸가 없을 때 기분이 언짢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의 연대감을 확인받지 못했기 때문에, 존중받고자 하는 의지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이다.
그 기분 나쁨을 매일 아침 경험해야 하는 것은 곤욕이다. 인사하면 누가 잡아먹는 것도, 세금을 내는 것도 아닌데 고개를 뻣뻣이 들고 지나치거나 눈을 피하려 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시당한다는 느낌 밖에는 안 든다. 그리고 의문이 생긴다. 직장 동료들끼리 나누는 인사라는 것이 딱히 친하다는 표시도 아니거니와 밀접한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뜻깊은 행동도 아니다. 비단 직장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인사를 주고받는 것은 사람의 관계에서는 무척 보편적인 행동이다. 그럼에도 인사를 기피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처럼 인사를 안 하는 데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특별한 경우 인사를 건네는 대상이 되지 못하는 당사자가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사를 하지 않는(않으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원인이다. 물론 인사를 잘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가 모두 같지는 않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심리를 꼽으라면 단연 쑥스러움(수줍음)이다.
쑥스러움(수줍음)
의외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실제로 쑥스럽고 수줍어서 인사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숫기가 없고 쑥스러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들에게 쑥스러움과 수줍음은 '자신 없음' 정도가 아니라 얕은 수준의 공포에 가까운 불안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두려워하고 비판이나 거부를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출근하면서 마주치는 동료들과 소란스럽지 않은 인사를 나누는 것이 보편적인 직장인의 행동이라는 사실은 그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서 시작한 쑥스러움은 혹여나 인사를 친근하게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인사를 할까 말까 우물쭈물하다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이고,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을 때는 눈을 아래로 내려 깔고 상황을 외면해 버린다.
한번 움츠러든 의지는 쉽게 되살아나지 않는다. 결국 인사는커녕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출퇴근 시간에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한 덕분에 언제 왔다가 언제 갔는지도 모른다. 외근을 나갔는지 외출을 했는지, 심지어 휴가를 썼는데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생긴다. 그쯤 되면 직장 안에서는 '싸가지 없는 사람' 내지는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30년 넘게 수줍음(Shyness)에 대해 연구했던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의 베르나르도 카두치 (Bernardo J Carducci)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수줍어하는 사람들은 그들 앞에 마치 거울이 있는 것처럼 걸어 다닌다." 쑥스러움과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두려워하여 결국 '사회적 상황의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선택한다. 이런 그들에게는 인사라는 기본적인 '상호작용' 조차 극복하기 어려운 평가의 관문인 셈이다.
쑥스러움, 수줍음이 극대화되면 신경 장애 수준의 공포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실제 미국의 경우 이러한 증상이 '사회 공포증'이라는 병명으로 진단 체계에 들어가 있다. 아마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웃는 낯으로 먼저 인사를 건넨다면 자신이 어떻게 평가받을 지에 대한 두려움은 잠재울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도 직장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정신적 소양을 갖추고 있다면 먼저 인사를 건넨 사람을 외면할 리 없다. 내가 왜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는 하지 말자. 같은 직장 동료에게 그 정도 배려도 못하고 위아래를 따지고 있다면 꼰대임을 고백하는 꼴이다. 만약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해도 외면을 한다면 다른 데서 이유를 찾아보아야 한다. 수줍음을 극복할 약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고의로 인사를 하지 않거나 받지 않는 경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시하기 전략
직장에서 동료가 인사를 하지 않거나 인사를 받지 않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사람 무시하나?"이다. 그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무시당했다'라는 느낌은 커진다. 실제 의도가 '무시하기'라면 인사를 하지 않거나 받지 않은 것은 아주 효율적인 전략임이 분명하다. 특히 다른 사람 인사는 잘 받아주면서 특정한 사람과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시하기 전략을 쓰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만 이 무시 전략은 항상 같은 맥락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무시하기 전략은 두 가지 감정적 배경을 갖는다.
첫 번째는 싫어하는 마음, 즉 혐오(嫌惡)의 감정이다. 사람은 싫어하는 것을 멀리하려고 한다. 그 대상에는 사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당연히 포함된다. 누군가가 싫으면 관계를 끊으려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보기 싫은 사람이 생기면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지우고, SNS 친구 설정을 손보고, 카카오톡에서 차단을 한다. 이렇게 누군가를 멀리 하고 싶다는 것은 관계의 고리를 최소화하거나 끊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싫어하는 감정으로 인해 인사를 주고받지 않는 것은 직장이 강제하는 최소한의 연대를 부정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당신의 기분이 어떻든 간에 나는 당신이 싫으니 당신과 최소한의 관계조차도 맺고 싶지 않다"라는 의사 표현인 것이다.
무시 전략의 두 번째 심리적 배경은 미워하는 마음, 흔히 말하는 증오(憎惡)의 감정이다. 미움은 싫어함과는 달리 대상과 거리를 두려고만 하지 않는다. 미움은 그 대상에게 해악을 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인 적의(敵意)를 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대상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면 앙갚음을 하려는 보복의 욕망을 품게 만드는 감정이다. 다시 말해 미워하는 마음이 배경이 된 무시하기 전략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인사를 씹거나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자. 당하는 사람 입장은 무척 민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게 된다. 특히 이유를 모른 채 그렇게 당하는 경우 상처가 꽤나 깊어진다. 직장 내 집단 따돌림이 무시하기로 상처를 주는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또, 사람 사이에 심심찮게 생기는 '기분 나쁜 일에 대한 작은 복수'도 무시하기 전략을 사용한다.
이처럼 미워하는 마음, 싫어하는 마음이 배경이 되어 관계가 틀어졌을 경우에는 상대에게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무턱대고 먼저 다가가는 것은 더한 반감을 부를 수도, 굴종을 강요당할 수도 있다. 감정은 아무런 이유 없이 생기지 않는다. 잘잘못을 떠나 그런 감정을 갖게 된 이유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오해가 있다면 풀고 잘못이 있다면 용서를 구해야 한다. 물론 그들의 나쁜 감정에 대해 어떤 원인 제공도 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들 때는 구태여 무언가를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특히 질투나 시기심으로 인해 생긴 혐오나 증오의 감정은 바로잡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질투, 시기심은 열등감을 어른스럽지 못하게 다룬 결과다. 그들에게 어른스럽게 굴라고 하는 것은 반감과 적의를 더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사를 꼭 해야 해?
드물긴 하지만 "굳이 인사를 해야 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직장은 돈을 벌기 위해 오는 곳일 뿐 사람들과 굳이 관계를 맺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직장인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맞고 틀림을 얘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생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자유다. 그런 생각으로 계속 다닐 수 있는 직장이라면 그렇게 다니면 된다. 반대로, 그런 생각으로는 다니기 힘든 직장도 분명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의 문제다. '함께 일한다'는 개념을 요구하는 곳에서는 직장이 바라는 바에 맞춰서 행동하면 그만이다. '쿨 하네'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개념 밥 말아먹었네'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만 염두하면 된다.
물론 인사를 굳이 해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특정한 개념을 강요할 필요도 없다. 그 생각의 뒷배가 높은 자존감인지 오만함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을 아껴야 한다. 어떤 마음에서 그런 생각이 우러났는지도 모르는 채로 무작정 설득하려 들면 반발만 더 커진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드러난다. 대게 높은 자존감은 당당함으로 여겨지고 오만함은 무례함을 내보이게 마련이다. 능력과 더불어 평판도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는 직장생활에서 당당함과 무례함은 배점 자체가 극과 극이다.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와중에 이리저리 줄을 흔드는 것은 무례다. 경험과 성찰을 통해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과정을 방해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면 줄을 건너든 떨어지든 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다. 관계 맺기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설득당할 만큼 인사의 가치를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면 잠시 인사를 보류하고 기다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이상으로 인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를 몇 가지 짚어보았다. 특별한 경우가 더 있겠지만 인사를 잘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는 대략 이 정도 범주에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런 정리만으로 인사를 잘하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사실, 인사 안 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인사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사를 안 한다고 해서 크게 잘못되었다고 단언할 수도 없어서다. 괜히 말 꺼냈다가 예의범절 운운하는 꼰대라는 소리 나올까 봐 겁도 나고, 서로 감정 상해서 얼굴 붉히는 일 생길까 봐 염려도 된다. 그래도 이렇게 정리를 해 보는 것은 왜 그런지 대강이라도 짐작해야 속이 덜 답답할 것 같아서다. 인사를 잘 안 하는 직원을 미워하든 용서하든 상관없다. 그래도 이왕이면 이유라도 짐작한 후에 그렇게 하는 것이 낫다. 이유를 알면 감정의 갈래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에 군더더기가 적을수록 판단은 더 명쾌해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