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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Aug 09. 2019

동료 직원 왕따 시키는 자들의 실체

언젠가 직장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새로 들어간 회사에 직원들 일부가 자신을 따돌려서 힘들다는 얘기였다. 퇴근길에 지하철을 함께 탔다가도 자기만 빼놓고 다른 칸으로 무리 지어 옮겨 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한 직원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지하철 칸을 옮기는 사람들의 유치함에 코웃음이 절로 난다. 하지만 이유도 모른 채 혼자 남겨진 사람에게는 그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 큰 상처가 된다.


흔히 '왕따'라고 부르는 집단 따돌림은 철이 덜든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집단 따돌림은 성인들도 겪는 일이며, 성인들이 모여있는 직장에서는 진작부터 있어왔다. 집단 따돌림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따돌림을 피하기 위한 행동 양식이 거론된다. '자신감을 가져라', '당당하게 행동하라', '기죽지 마라', 심지어는 '따돌림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나의 행동을 고쳐라' 같은 말도 나온다. 피해를 당하는 사람에게서 해결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다.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집단 따돌림은 개인에 대한 집단의 폭력이다. 피해자에게서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가해자에게 당위성을 부여하자는 얘기밖에 안된다.


가해자들의 정체

직장에서의 집단 따돌림은 주로 특정 그룹에 의해서 행해진다. 방식도 비슷해서 몇몇의 주동자가 나서면 집단 내의 사람들이 동조하는 식이다. 그런 그룹은 조직 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집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직 내부의 집단은 공식 집단비공식 집단으로 구분된다. 공식 집단은 조직의 목표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규범적, 인위적으로 구성된다. 부서, 팀, 태스크포스 같은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비공식 집단은 사적인 관계에 의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집단이다. 정형화된 조직은 아니지만 몇몇이 항상 어울려 그룹을 만든다면 비공식 집단이다. 넓게는 사내 동호회나 동아리도 비공식 집단에 속한다. 쉽게 말해 마음 맞거나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그룹을 만들면 비공식 집단이다. 집단 따돌림은 이런 비공식 집단이 주체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공식 집단 자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모든 비공식 집단이 집단 따돌림을 하지는 않는다. 집단 따돌림을 하는 비공식 집단이 있을 뿐이다. 그런 행태를 보이는 비공식 집단은 특징이 있다. 바로 약자들이 모여 있는 그룹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인 직장의 위계질서는 피라미드형이다. 위계질서의 상위에 있는 사람보다 하위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 따라서 직장에서 다수의 직원들은 위계질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약자다. 수직적인 위계질서 안에서 약자는 인정을 받기도 어렵고 권위도 작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큰 권위에 의해 강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상황이 겪다 보면 자존감은 낮아지고 좌절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감정을 보상하고 싶지만 약자의 위치에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이 있다. 그런 약자들이 모여 집단을 만들면 힘이 세진다. 물론 그 힘은 공식적인 권위나 권력의 힘이 아니다. 비공식적인 힘이기 때문에 사적으로 쓴다. 즉, 특정 대상에게 패거리의 힘, 또는 패거리를 주도하고 있는 자신의 비공식적인 힘을 과시하고 행사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집단 따돌림이라는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을 직장에서 흔히 마주치는 선량한 약자가 아니다. 그들은 낮은 자존감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을 괴롭히는 일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저열한 인성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의 저열함은 반드시 비겁함을 동반한다. 그들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을 대놓고 괴롭히는 일은 쉽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한 사람의 면전에서는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대신 뒤에서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신나게 뒷담화를 하는 일은 거르지 않는다.


간혹 부하직원들이 들고일어나 지시를 거부하거나 항명을 하는 식으로 상사를 고립시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따돌림이라기보다는 '정치적 투쟁'의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상사 지시를 거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공식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행위이다. 공식적인 행위 뒤에는 책임이 반드시 따른다. 항명한 부하직원이든 그런 상황을 초래한 상사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상사를 괴롭히기 위해서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비공식 집단의 기본적인 행동 논리인 '감정'에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비공식 집단이 공식 집단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료 직원을 따돌리는 데서 만족감을 찾는 수준의 사람들에게서 공식 집단을 상대로 '목숨을 건 싸움'을 할 배짱을 찾는 것은 우물가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찾기다.


가해자들의 특징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것도 집단 따돌림을 일삼는 자들의 특징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설문 조사를 보면 직장에서 집단 따돌림이 발생하는 이유가 '눈치가 없고 답답한 성격이라서(36.1%)', '조직에 어울리려고 노력하지 않아서(32.2%)', '업무능력이 너무 떨어져서(27.7%), '말로만 일을 하는 유형이라서(26.1%) 따위였다. 그럴듯한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결국 '당할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당한다'는 말이다. 이 설문은 따돌림을 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옆에서 따돌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따돌림을 하는 당사자의 의식이 어떨지는 너무 뻔하다. 


위의 답변을 따돌림을 일삼는 자들의 언어로 고쳐보자. '눈치가 없고 답답한 성격이라서'왜 내(우리) 눈치를 보지 않고 내(우리) 성격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냐는 것이다. '조직에 어울리려고 노력하지 않아서'나(우리)와 친밀해지려 머리를 조아리고 기지 않아서 언짢다는 말이다. '업무능력이 너무 떨어져서'내(우리)가 안 도와주면 업무 처리도 안 되는 신참내기가 어디서 까부냐는 의미다. '말로만 일을 하는 유형이라서'뭘 얼마나 잘났다고 그렇게 말이 많냐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들 전부는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따돌림을 일삼는 자신들의 죄의식을 희석시키기 위해 마음대로 가져다 붙일 수 있다.


이런 말들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질투, 시기, 경쟁심, 오만, 멸시, 적의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이 부정적 감정들이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뛰어난 역량을 가졌거나 주목받을 만한 요소를 갖춘 동료 직원을 보면서 열등감을 갖는다. 그리고 그 열등감을 부정적인 감정들로 치환하고 동료 직원에게 공격을 가하여 책임을 묻는다. 그리고 상대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낀다. 때로는 처음부터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약해 보이는 동료 직원을 따돌려 고통을 주기도 한다.


책임은 가해자에게

어떤 사람들은 소통과 이해가 부족해서, 조직문화가 경직되어서 생기는 '갈등'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분석은 그냥 하고 쉽고 듣기 좋은 소리일 뿐이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폭력의 피해자가 된 일을 그저 '갈등'이라고 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소통과 이해, 조직문화 따위로 문제를 풀려고 하니 폭력 사건을 직원들 간의 갈등 상황 정도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소통과 이해, 조직문화의 개선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당장의 해결 방법을 찾는 데는 쓰임새가 적다. 직장 내 따돌림은 지금도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따돌림으로 퇴사한 직원이 있느냐는 물음에 60% 가까이가 그렇다는 답을 한 설문 조사도 있다. 당하는 사람의 상처는 늘어가는 마당에 소통과 이해의 제고, 조직문화 개선이 당장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 '장기적인 변화' 이전에 더 이상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하는 것이 먼저다.


직장 내 따돌림을 일삼는 자들은 자신의 행동에 구체적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새로 온 신입 사원을 빼놓고 선배 직원들끼리 밥을 먹는 것은 불법한 일이 아니다.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위에서 나온 그럴듯한 핑계로 피해자 탓을 하면 그만이다. 또, 비공식 집단의 사적인 행동에 대해 공식 집단이 제재를 가하는 것도 어렵다. 아무리 밥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조직이 직원들의 사적 관계까지 관여하는 것은 무리다. 직장 내 따돌림의 주체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교묘하고 은밀하게 사람을 괴롭힌다.


피해를 당하는 개인이 풀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다. 용기를 내라, 당당해져라, 영악해져라, 무시하라고 충고하는 그 마음은 알겠지만 그것은 피해자에게 문제를 해결하라는 말이다. 이미 작정하고 들어오는 공격 앞에서 마음 가짐 하나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은 정신승리나 하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결국 조직 내에서 생기는 일은 조직이 풀어야 한다. 조직의 구성원은 조직의 목표를 위해 일한다. 그 구성원이 조직의 목표를 위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조직의 문제이기도 하다. 완전하게 개인의 사정이 아닌, 조직의 구성원과 구성원이 얽힌 문제라면 조직은 목표 달성을 위한 역량 관리의 측면에서 개입할 권리가 충분히 있다.


미국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입법을 요구하는 캠페인(Healthy Workplace Bill)이 벌어지고 있으며 여러 주에 직장 내 왕따 방지 법안이 상정된 상태다. 우리나라는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국가 차원에서도 문제로 삼는 일에 대해 회사가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회사 입장에서는 목표 달성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 관한 문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조사에 의하면 직장 내 괴롭힘을 처리해 줄 사내 고충처리 담당 부서나 담당자가 없는 기업이 80%에 이른다고 한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당장 해야 한다. 직장 내 따돌림 가해자와의 소통, 가해자까지 보듬는 직장 문화 운운할 일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공식적인 조직'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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