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과 사악함, 유능과 무능
유시민 작가는 그의 책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지배자(지도자)들을 선하거나 사악하거나, 유능하거나 무능하다는 네 가지 속성으로 분류했다. 이는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언급한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의 개념을 인용한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만나는 (CEO나 임원을 포함한) 상사, 부서장, 팀장 같은 리더도 이 틀에 넣어볼 수 있다. 선함과 사악함, 유능과 무능의 속성을 조합하면 선하고 유능한 리더, 선하고 무능한 리더, 사악하고 유능한 리더, 사악하고 무능한 리더의 네 가지 유형이 나온다. 이 리더 유형들 중에 과연 어떤 것이 최선이고 어떤 것이 최악일까?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각 속성의 정의다. 선함, 사악함, 유능, 무능은 해석의 범위가 무척 넓다. 그 넓은 개념을 그대로 가져다 리더의 속성으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어디까지나 직장에서의 리더 역할에 한해서 개념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먼저, '선함'과 '사악함'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속성이다. 선한 리더는 부하직원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선한 리더는 부하직원을 함께 일을 하는 동료, 파트너로서 존중하며 그들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부하직원들의 희생과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필요한 경우 그것들을 본인의 몫으로 삼는다. 또, 선한 리더는 공적으로 인정된 범위 안에서 권한을 행사하고 자신의 지위에 부여된 책임을 진다.
반면에 사악한 리더에게 부하직원은 수단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 부하직원들의 희생과 고통을 가볍게 여긴다. 목적 달성은 어디까지나 리더 자신에게 이익이 되어야 하며, 부하직원들은 그러한 리더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부하직원을 대하는 마음가짐 역시 오만하고 무례하다.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오용하거나 남용하여 부하직원들을 힘들게 만든다.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자신에게 부과된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유능'과 '무능'은 개인의 역량 수준을 말한다. 유능한 리더는 경험이나 업무에 관한 전문성, 판단력, 통찰력, 등의 역량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이런 요소를 적절히 투입해 업무 효율을 높이는 법을 안다. 또한 자신이 이끄는 부서나 팀, 부하직원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업무 성과를 배가한다. 무능한 리더는 유능한 리더의 반대다. 경험이나 판단력, 통찰력, 업무 전문성 등의 역량이 떨어져 높은 업무 성과를 내지 못한다. 리더십 역량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해 조직의 시너지를 끌어내지 못해 업무 성과는 낮으며 목표 달성에 애를 먹는다.
최선의 리더와 최악의 리더
이 네 가지 속성에 대한 정의를 기준으로 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선하고 유능한' 리더가 최선이다. 뛰어난 업무 역량과 사람에 대한 사려 깊은 태도를 동시에 지닌 리더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로망과 같은 존재다. 그렇다면 최악의 리더는 어떤 유형일까? 액면만 놓고 보면 '사악하고 무능한' 리더가 최악이다. 능력을 우선하여 보거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우선하여 보거나, 사악하고 무능한 리더는 점수를 가장 낮게 받을 수밖에 없다. '선하고 무능한' 리더와 '사악하고 유능한' 리더는 적어도 하나의 좋은 점을 갖고 있지만 사악하고 무능한 리더는 좋은 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판단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역량이 조합되었을 때는 한 속성이 다른 속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선하고 무능한 리더는 자신의 무능을 감추지 못한다. 그가 지닌 사람에 대한 선한 태도가 책임 회피나 자신의 역량을 부풀리기 위해 부하직원을 수단으로 쓰는 일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적과 성과가 시원찮아서 몇 년째 진급도 하지 못하지만 사람 좋기로 소문이 나 있는 만년 차장님, 부장님이 그런 경우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사악하고 무능한 리더도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그 유형의 리더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부하직원을 수단으로 대하는 사악함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성과나 실적으로 뽑아낼 역량은 없다. 덕분에 그냥 성격 안 좋고 무능한, 시쳇말로 '찌질한 상사'라는 평가만 들을 뿐이다. 직장인들에게 성격 안 좋은 상사는 피하고 싶은 대상이지 두려운 대상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악하고 유능한' 리더는 어떨까?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 유형의 리더가 최악이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해로운 리더다. 사악하고 유능한 리더는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을 수단으로 여길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역량까지 갖추고 있다. 사악하고 유능한 리더는 사람과 상황을 자기의 입맛대로 능수능란하게 조정해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고 이익을 취한다. 사람을 잘 쓰는 것도 요령이고 능력이라고 좋게 봐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공동의 목표를 위한 것인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설령 공동의 목표를 위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악하고 비열할 경우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사악하고 유능한 상사의 진짜 무서움은 다른 데 있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숨긴 채 마치 공동의 목표와 이익을 위한다는 듯이 위장을 하는 데 능숙하다. 권한을 오남용 하면서도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우고 부하직원의 희생과 고초를 상황의 탓으로 돌린다. 여기에 적당한 허위와 가식이 곁들여지면 사악하고 유능한 리더가 선하고 유능한 리더처럼 보이게 된다. 악을 선으로 가장하는 것이 사악하고 유능한 리더가 지닌 최고의 능력인 셈이다. 그들의 사악함은 결국 책임질 일이 생겼을 때 드러난다. 사악한 리더는 책임질 일이 생기면 조직 모두의 몫으로 돌리거나 특정 부하직원에게 멍에를 씌운다. 이 때도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해서 그럴싸한 명분과 구실을 만들어낸다. 사악하고 유능한 리더는 사악함과 역량을 결합해서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오지 않도록 만드는 것조차도 능숙하게 해치우는 것이다.
이용당하는 순수함
직장이라는 곳은 대부분 성과, 실적 같은 일의 결과로 사람을 평가한다. 조직 입장에서는 성과와 실적이 잘 나와주기만 하면 리더가 어떻게 부하직원을 대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말이야 '가족 같은 회사'라고들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조직에게 있어 직원들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래서 직원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은 리더가 더 윗사람들에게는 능력을 인정을 받아 승승장구하는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심지어 사악하고 유능한 리더는 자신의 사악함을 교묘하게 감추기까지 한다. 그런 리더의 손아귀 안에서 부하직원은 한낱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유시민 작가 역시 유능하고 선한 지도자가 가장 좋고, 유능하고 사악한 지도자가 가장 해롭다고 결론 내린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배자(지도자)들은 선하거나 사악하거나, 유능하거나 무능하다. 가장 좋은 건 선하고 유능한 지도자이고 제일 끔찍한 지도자는 사악하고 유능한 지도자다. 사악하고 무능한 지배자는 좀 덜 해롭다."
유능한 리더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직장인에게 좋은 일이다. 하지만 유능함의 매력에 너무 빠져들어 멘토니 롤모델이니 하면서 무작정 경외감을 갖지는 않아야 한다. 유능한 리더를 의심으로 눈으로 보라는 말이 아니다. 단편적인 사안으로 전부를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사람을 수단으로 보고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남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려 드는 사악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 의외로 많다. 직장도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라 평균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너무 순진하게 사람을 받아들이다가는 사악함의 제물이 될 수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는 법이다. 꽃길로 보이는 곳이 실제로는 더러운 시궁창일 수 있다. 내가 발딛고 있는 곳이 꽃길인지 시궁창인지 스스로의 눈으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궁창을 꽃길로 포장하는 사람은 당연히 경계의 대상이어야 한다. 허위와 가식에 속아 넘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악함의 수단으로 전락하면 비참함만 남을 뿐이다. 안 그래도 버겁고 서글픈 감정이 왕왕 드는 직장생활이다. 직장인이라면 그런 비참함을 적당히 경계하는 정도의 예민함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 '노오력'은 그렇게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