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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열 Mar 09. 2020

권한을 행사하지 않음은 게으름이다

권한과 책임의 관계

코로나19로 어수선하다. 하루에도 몇 백 명씩 감염자가 늘어나고 미처 목숨을 여미지 못하는 사람의 소식이 들려온다. 중세 시대에나 어울릴법한 '역병'이라는 말이 시간을 거슬러 근대의 정점까지 치고 올라온 형국이다. 시민들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공공의 일을 하는 이들은 감염의 위험을 누그러뜨리려 동분서주하고 있다. 전염병이 돌면 속절없이 쓰러지던 옛날과는 당연히 다르지만 불안의 마음만큼은 수 백 년 전과 다를 것 같지가 않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있는 만큼 힘을 쓰고 있다. 시민은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고 공공을 위한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권한을 행사하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그런 권리의 행사와 권한의 사용이 모두 합당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권리보다 더한 것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책임을 다하기 위한 권한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그나마 권리보다 더한 것을 바라는 행태는 공정함의 잣대를 들이대 짓누를 수 있다. 반면에 책임을 다하기 위한 권한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은 나무라기가 애매하다. 매번 걱정하는 것은 권한의 남용이었지 권한을 있는 대로 쓰지 않는 것을 걱정해본 적이 없는 경험칙 때문이다.


코로나19가 가장 과하게 퍼진 어느 도시의 시장이 보여준 권한의 행사는 참으로 소소하다. 중대한 상황이니만큼 권한의 행사 또한 과할 정도로 써주었으면 하고 사람들은 바라지만 당사자는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전염병의 주요 감염원 역할을 하는 종교 단체에 대해 요청과 읍소만 할 뿐, 그가 가진 지방자치단체의 수장으로서의 권한을 매섭게 휘두르는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다른 도시와 지방자치단체의 수장들이 보여준 권한 행사의 묵직함과 대비되어서 더 그렇게 느껴진다. 권한을 위임한 시민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권한을 과하게 쓰는 것이 문제지 권한을 쓰지 않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권한을 쓰지 않고서도 일이 제대로 풀리면 문제가 전혀 안된다. 하지만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아서 일처리가 어려워지거나 일의 진척이 더디다면 얘기가 다르다. 권한을 무리하게 행사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쁘지만, 때에 따라서는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는 것이 책임을 저버리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직장생활에서도 비슷한 광경들을 볼 수 있다. 예전에 몸담았던 회사에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특정 업무를 혼자서 담당한 직원이 있었는데 오후 4시나 5시쯤 되면 자리를 비우고 사라지는 일이 무척 잦았다. 당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는 당연히 업무 때문에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그 길로 퇴근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를 직원들에게 듣게 되었다. 직급이 같았던 그 직원의 부서장에게 가서 저 직원은 무슨 일로 그렇게 나가는 일이 잦냐고 물었다. 그 부서장은 일하러 가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슨 일 때문에 나가는지는 알고 있냐고 했더니 대답을 얼버무렸다.


당시 나는 경영지원실 소속이었고 직원들의 근태관리가 업무 중에 하나였다. 윤리나 형평성을 떠나 근태는 근로계약에 명기된 약속이었으므로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관리자급 회의에서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보고를 했고 담당 부서장에게 일차적인 근태관리를 요청했다. 그런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자기도 얘기를 해보겠지만 할 일을 다 마치고 굳이 앉아 있을 필요가 없어서 퇴근을 한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두 가지를 알아챘다. 하나는 일하러 가는 것이 아님을 그 부서장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권한은 있지만 그 권한을 쓸 생각이 없다는 부서장의 속내였다.


조직에서 권한이란 조직의 규범에 의해 승인된 권력이다. 하지만 권한이 권력의 속성을 갖는다고 해서 누군가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하는 단순한 힘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로 관계를 맺고, 각자는 역할에 부과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권한이라는 한정된 권력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주어진 권한을 적절하고 올바르게 행사해서 역할을 수행하고 책임을 다하게 된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자신의 역할에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으면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된다.


앞에서 말한 그 부서장은 자신의 관리 범위에 있는 직원의 근태관리, 업무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능력이 없어서, 직원이 말을 듣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서장 자신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아서였다.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음으로 해서 직원의 근태관리, 업무관리라는 부서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들은 공정하지 않은 것에 매우 민감하다. 자신이 잃는 것이 없다 해도 누군가가 아무 이유 없이 무엇을 더 얻어가는 것에는 감각을 곤두세우기 마련이다. 지적과 요청에도 태도를 고칠 생각을 하지 않던 그 부서장에 대한 평판의 가장 큰 부분이 '무책임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도 얼마의 시간이 들지 않았다.


권한을 쓰지 않는 게으름

권력, 권한 따위의 말이 나오면 가장 먼저 연결 짓는 단어가 '남용'이다. 권력의 남용은 갑질이 되고 권한의 남용은 오지랖이 된다. 갑질은 사람을 괴롭게 만들고 오지랖은 시스템을 흔든다. 권력의 남용과 권한의 남용이 갖는 폐해는 직접적이고 눈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권한을 덜 쓰는 경우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다소 너그럽다. 둘만 놓고 보았을 때는 권한의 남용이 훨씬 해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은 상대적으로 볼 것이 아니다. 권한의 남용은 남용대로, 권한의 방기는 방기대로 해롭다.


권한을 제대로 쓰지 않음의 결과는 책임지지 않음의 결과와 같다. 결국 무책임으로 귀결된다. 조직에서 역할을 갖고 있으면서 그 역할에 주어진 '책임을 지지 못하는 것'은 무능력이다. 반면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게으름은 조직의 목표 달성에 해를 끼친다. 그리고 게으름이라는 것은 당사자만 편하고자 하는 이기심에 뿌리를 두기 마련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은 '너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 좋은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에서 초점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좋은 것'이다. 너에게 나빠도 나에게만 좋으면 된다. 권한의 행사를 보류하거나 포기해서 좋은 것은 머리 아프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감정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결국 권한을 제대로 쓰지 않음은 나 좋으려는 이기심이 만든 의도된 게으름이다. 권한의 남용과 견주어 덜 나쁘다고 할 수가 없다.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 거북하게 느껴진다면 게으름의 유혹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그런 게으름에 빠지면 무책임하다는 평판을 결코 피해 갈 수가 없다. 무책임한 사람은 조직에서도 설 곳이 없고 사람들 틈에서도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직장이라는 조직은 각자의 역할로 관계를 맺는 곳이라서 특히 더 그렇다. 무책임한 사람을 쓰고 싶은 직장도, 무책임한 사람을 동료로 두고 싶은 직장인도 세상에는 없다. 정상적인 직장은 개인의 게으름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그래서 직장인은 권한의 남용만큼이나 제대로 된 권한의 행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것이 책임과 엮여 있기 때문에라도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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