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 같으니라고
직장에는 나쁜 사람이 있다. 평생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면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 대부분 직장인들은 원치 않게 '나쁜 사람'을 만난다. 부하직원의 노력을 가로채서 자신의 성과로 삼고,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해 비판을 피하고,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게 사람을 대하고, 폭언과 협박 따위로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자리에 없는 사람 험담을 해서 평판을 깎아내리고, 나쁜 소문을 퍼뜨려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사람을 직장에서 만나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그리 어렵지 않다.
직장에서 그런 사람들을 설명하거나 일컫는 말들은 많다. 갑질 상사, 꼰대, 오피스 빌런, 이기주의, 무책임, 얌체 등등. 행동에 따라 표현에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런 꼴 보기 싫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이다. 특정한 행동으로 한 사람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근거가 아주 없지는 않다. 예로부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비록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행동할지는 모르지만 특별히 다를 것이 있겠는가?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겪은 일이다. 관리직으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장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썩 달갑지 않음이 느껴졌다. 달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직원들은 사장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쳤다. 그 사장은 항상 인상을 쓰고 다녔고 관리자급되는 직원들에게는 걸핏하면 고함을 치기 일쑤였다. 사장만 나타나면 직원들은 눈치 보기에 급급했고 일터의 분위기는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사장이 웃는 얼굴을 보이는 일은 몇몇 친한 직원들 앞에서 뿐이었고, 그 직원들에 대해서는 대우도 좋았다. 사장이 웃는 낯을 보이는 그 직원들은 사장의 친인척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사장의 굳은 표정과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를 화에 불안해했을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못한 대접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물론 대놓고 그 사장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사장에 대한 말을 꺼낼 때는 '나쁜 분은 아닌데...'로 시작했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안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라고 말은 '뒤에 나올 말들은 대상을 나쁜 사람으로 설명할 것임'을 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암묵지 덕분에 그 사장이 여러 직원들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받여 들여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그 사장으로부터 구겨진 인상과 여과 없는 화냄을 당해본 터라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렇게 사장에 대한 나의 인식이 굳어가고 있을 무렵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다.
지킬 앤 하이드?
어느 날 사장의 개인 모임에 자리를 함께 할 일이 생겼다. 그때 내가 본 사장은 그전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밝은 낯빛이었고, 심지어 '선함'이 묻어나기까지 했다. 처음 접하는 사장의 표정에 당혹해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O사장이 잘해주죠?" 선뜻 대답이 나오질 않아 뜸을 들이고 있었더니 사장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잘해주긴 뭘, 맨날 고생만 시키는데... 그렇지 O부장?"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아 그냥 웃어넘길 요량으로 "예!"라고 말했다. 그러자 질문을 했던 사람이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설마~ O사장이 얼마나 사람 좋은데~" 그 사람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날 그 자리에서 보았던 사장은 선한 사람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사장의 지인들 역시 그렇게 믿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직장에서 나쁜 사람으로 평가받는 사람이 밖에서도 당연히 그런 평가를 얻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해다. 부하직원들의 속을 찢어놓는 폭언을 일삼는 나쁜 상사도 대학 동창들 사이에서는 순하고 착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남의 성과를 가로채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나쁜 동료도 집에 가면 더없이 좋은 신랑, 듬직한 아빠, 착한 자식이다. 험담으로 사람을 깎아내리고 못된 소문을 퍼뜨리는 나쁜 직원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의리 빼면 시체'로 통한다. 그들도 직장 바깥에서는 평범하고 선한 사람일 뿐이다. 나쁜 사람에게 당하는 입장에서는 부정하고 싶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직장에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오로지 나쁜 쪽으로 몰려 있지는 않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앞장섰던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나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썼다.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이 그저 그 일을 하는 자리에 있었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 죄가 없다고 자신을 변호했다. 한나 아렌트의 눈에도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다.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이 아주 쉽게 악을 저지를 수 있음을 말하면서 그 개념을"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응축했다.
물론 나쁜 직장인과 아이히만은 다르다. 그들은 누군가가 시켜서 악한 일을 하지는 않는다. 욕설이나 책임전가, 험담을 권하는 직장은 없으니 당연한 얘기다. 오히려 아이히만과는 달리 직장의 나쁜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나쁜 행동에 대한 비난을 떠넘길 데 없이 본인이 모두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의 특징 중에 직장 내 나쁜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들이 직장이라는 공간 바깥의 사람들 눈에는 악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남에게 해가 되는 나쁜 짓을 당연한 듯이 한다는 것이다.
나쁜 사람이 사는 법
직장에서 나쁜 짓을 저지르는 나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그렇다. 직장에서의 모습과 바깥에서의 모습이 다르다. 직장에서는 그렇게 나쁘게 구는데 밖에서는 평범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니 무언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젠가는 실체가 까발려져서 된통 당하고 말 거라고 장담도 의미가 없다. 웬만큼 악하지 않고서야 직장에서 저지른 나쁜 짓 때문에 인생이 매장당하는 일은 드물다.
정말 그렇다. 직원에게 물컵을 집어던지고 이륙 직전의 비행기를 제 맘대로 되돌리던 어느 재벌가의 일원이자 임원인 그 사람도 아주 잘 살고 있다. 노인을 폭행하고 뺑소니 범죄까지 저지른 그 사람의 동생은 그 아버지를 이어 회장질을 하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의 나쁜 짓을 하고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가진 돈과 기댈 백의 형평을 고려해서 생각해봐도 평범한 직장인이 매장당하려면 꽤나 악한 일을 해야 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언젠가는 하늘이 벌을 내릴 것이라는 상상에 흐뭇해하는 것은 정신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잠깐의 기쁨과 유쾌함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부조리한 현실이 더 큰 절망으로 느껴질 뿐이다.
직장에서의 악함이 본모습인지 직장 밖에서의 평범함이 본모습인지 따위는 생각 말자. 그냥 있는 그대로, 한 인간의 존재 자체를 뭉뚱그려 저주하지 말고 나쁜 행동 자체를 비판하고 욕하자. 용서와 이해를 종용하는 입바른 소리도 무시하자. 용서와 이해는 그럴 마음이 있을 때 하는 것이지 무턱대고 한다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거나 하지 않는다. 남을 아프게 하고, 이익을 빼앗고, 손해를 끼치게 하는 사람이 그 대상을 중요한 사람, 소중한 사람으로 여길 리 없으니 그에 맞게 대접해 주겠다는 마음 가짐 정도는 당연한 것 아닌가?
당하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운이 나쁜 것도 아니다. 우연히 직장에서 나쁜 사람을 만난 것뿐이다. 언젠가는 정의가 구현될 것이라는 나이브한 생각 따위는 버리자. 미워할 때 미워하고 분노할 때 분노하자. 그 정도는 해도 된다. 나쁜 사람들의 악한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