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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녀석 성휘 Oct 22. 2019

#10. 위로와 사육의 연속

아홉 번째 날, 나헤라에서 산토도밍고 데 칼사다까지

                            

  나헤라(Najera)에서 산토도밍고 데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까지 21km



나헤라(Najera)  알베르게

얼기설기, 오밀조밀, 따닥따닥, 목재식 이층 침대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알베르게 한가운데의 침대에서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인가?'

지난밤 관대한 치료과 관심에 기분이 좋아 와인을 처묵처묵하고 10시 반에 침실로 들어온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 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전혀 없다. 지난밤 필름이 끊긴 느낌!!

딱히 실수는 안 했고(평소에도 살짝 조증끼가 있어 술 취한 건지 정상인지 구분을 못하는 게 장점이자 단점)

뭔 내용으로 떠든지는 기억이 없지만 누구랑 놀았는지는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침대에 기어올라 잠들면서부터 술이 올라왔나 보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나 자신의 옷차림새.

가진 하의라고는 운동복 2개뿐이고 그것을 낮으로 밤으로 돌려 입는데, 지금 난 그 어느 2개도 입고 있지 않다,

그러니깐 지난밤, 깜깜한 침실에 들어와서는 옷을 훌렁훌렁 벗고는 면 티 한 장과 팬티 하나 달랑 입고 잠든 것이다.

도미토리에서 지내다 보면 속옷 차림의 남녀 구분 없는 사람들이 반쯤 헐벗고 다니는 것을 보는 것에 익숙해있지만, 보는 것과 내가 실행에 옮기는 것에는 큰 간극이 있었다. 그래도 난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보수적인 사고를 다분 가지고 있는 여자이니깐...

참고로 나의 잠버릇은 가랑이 사이에 이불을 말아 끼고 옆으로 누워 자는 것이다.

80명이 큰방 하나에 모여 자는 이 포로수용소 같은 알베르게에서 이 얼마나 낯부끄러운 처신이란 말이가!!

게다 순례길에서 만취였다니.... 정오를 땡 치면서부터 술을 마시고 살지만, 필름 끊길 정도로 만취는 아니었는데....

쯧쯧...

개차반 같은 나의 행동거지에 혀를 찼다.


 숙취에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생살이 터진 발이 걱정이 되어, 오늘은 처음으로 배낭 택배서비스를 이용했다.   배낭 배달 서비스 (일명 동키 서비스, 예전에는 당나귀를 이용해서 짐을 보낸 데에서 유래했다나 어쨌다나..)은 순례자들을 위해 배낭을 여기에서 다음 목적지까지 옮겨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보통 알베르게에 이용 서비스 봉투가 있어 거기에 이용요금(보통 5유로 전후) 넣고,  이름, 연락처, 다음 목적지를 써 놓고는 해당 봉투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하면 알아서 픽업해서 목적지까지 옮겨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주변에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긴 했어도 딱히 관심이 없어서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내가 이것을 이용하게 되다니...

동키 서비스를 이용한 것이 죄도 아닌데, 이상하게 난 죄책감이 밀려왔다. 뭔가 스스로와 쉽게 타협하는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여태껏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본 적이 없었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미묘한 실망감이 밀려들었다.


 평소 장바구니로 이용하는 에코백에  물과 간식, 그리고 슬리퍼를 챙겨 가벼운 차림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나, 어디 가는지 물어봐 줄래?"

"어디 가는데?"

"산티아고에 쇼핑하러...ㅋㅋ"

만나는 순례자들에 노랑 장바구니를 딸랑거리며 농담을 해댔지만, 육중한 몸만큼이나 마음도 무거웠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다른 이유로 뜨거웠다.



지난밤, 나를 치료해준 의사 아돌프를 비롯하여 여러 순례자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아서인지, 이 순간부터는 순례길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 찼는데 말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작업인가!' 다 국적의 사람들이 산티아고라는 한 목적지를 향해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걸으며 장시간을 보내는 이 순간에 갑자기 경외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물리적으로 한 목표를 향해 많은 사람이 같은 땀을 흘리는 경우가 우리 삶에 몇 번이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카미노구나!' 하며 나의 깨달음에 자뻑을 날렸다.

그리고 그 깨달음에 대한 나의 의견을  지금 나와 내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오스트리아 사과머리한테 침 튀기며 어필하고 있었다.

 앞머리가 길어서 고무줄로 동여매고 걷기에 '사과머리'라는 애칭이 있는 이 청년과는  평소 그리 오래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전에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으나, 어젯밤에야 비로소 길게 이야기해봤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얼마간같이 걸었다.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니 뭔지 모를 죄책감이 들어.. 근데 물집을 영어로 뭐하고 하지?"

물집을 뜻하는 암뽀야(ampolla)라는 스페인어만 떠오르고 블리스터(blister)라는 영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대화 중간에 사과머리에게 물었다.

"음.... 글쎄.. 영어 단어를 묻기에는 너무 이른 아침 아니니?"

영어가 나보다 월등히 능숙한 사과머리가 그런 대답을 하니,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아, 맞다. 블리스터.. 여하튼 그게 심해져서 지금은 생살까지 터진 상태라 어쩔 수 없이 택배서비스를 이용하긴 했지만 뭔가 죄책감이 들어"

"뭐하러 그런 생각해. 산티아고에 환자가 돼서 도착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순례길이지. 고행길이 아니야. 건강하게 도착해야 하나님도 기뻐하실 거야"

 나보다 더 훨씬 어린 녀석이 해주는 크나큰 그 위로가 나에겐 나를 위한 면죄부처럼 느껴졌다.

그는 내가 그저 오다가다 만난 한 순례자에 지나지 않겠지만, 나에게 그 녀석, 아니 그 녀석의 그 말은 큰 의미가 되었고 까미노 길에서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어준 사람들 중에 하나로 기억되었다.

 

  나와 천천히 걸으면서 워밍업을 끝낸 후, 배고파서 먼저 빨리 가겠다는 사과머리에게 헤어짐의 인사로 오렌지 향기가 담뿍 담긴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녹았다 굳었다를 반복해서 못생겨진 거지만 멀쩡한 초콜릿이야. 절대 내가 혀를 데어 녹인 게 아니니 안심하고 먹어"

긴 다리로 쭉쭉 걸어가는 사과머리는 내가 준 초콜릿을 움켜쥐고는 내 말에 낄낄거리며 앞서 나갔다.


부르고스에서부터 자전거로 여행하기 시작한 사과머리.

 사과머리에 대해 부연 설명을 달자면 걸음이 빠른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부르고스라는 큰 도시였다. 그가 하룻밤을 거기서 더 지냈기에 상봉할 수 있었는데, 그는 부르고스에서부터 자전거를 대여해서 산티아고까지 간다고 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고, 그래서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부르고스 다음 행선지였던 온타나스였다. 그의 말로는 큰 대도시에서는 자전거뿐만 아니라 각종 장비들을 대여할 수 있으며, 반납은 산티아고에서 하면 되다고 했다.




오늘 걸음은 20km밖에 되지 않고 배낭도 없었기에 정말이지 여유 있게 길을 걸었다.

문제는 땡볕과 나의 터진 왼발뿐...

틈틈이 쉬며, 순례자들과 기나긴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 마을마다 술과 와인을 먹으며 여유 있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 그중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처럼 생긴 미국 순례자가 트럼프 욕을 엄청 더럽게 해댔는데, 그의 그 격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닮을 꼴이라 더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순례길 초반에 비해 대화의 주제들이 많이 달라졌다. 처음엔 주로 어떻게 왔냐, 오늘은 어디까지 가냐, 얼마간의 일정으로 왔느냐 같은 주로 까미노 길에 대한 정보와 함께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의 이유 등이었는데 다들 얼굴이 익고, 환경에 익숙해졌는지 일상에 대한 이야기로 그 주제가 바뀌기 시작했다.

 


놀멍 쉬멍하며 가벼운 걸음으로 오늘의 목적지인  산토도밍고 데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 도착했다. 나의 배낭은 안전하게 알베르게에 잘 도착했고  반가운 한국인들과도 재회했다. 이번 조합은 귀염둥이 삼인방과  며칠 전 같이 걸었던 언니 두 분.  먹을 복이 넘쳐났는지 이번에도 언니들이 빠에야를 다 만들어 놨을 때 내가 도착했기에 또 입만 보탰다.

 그렇게 한국인들과 이른 저녁을 먹고는 혼자서  동네 구경을 하러 길을 나섰다. 가급적이면 순례와 관광을 병행하고 싶어서 들리는 마을마다 관광을 하러 다니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작은 도시들은 딱히 관광지는 없지만 그래도 도시마다 마을마다 특색을 가지고 있어서 비교하며 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관광 후에는 슈퍼에서 다음날 먹을 간식도 사고 1유로 숍에서 양말 구입을 하고 들어와 보니 또 밥 먹으란 소리가 들린다.

  먹을 복이 얼마나 넘쳐났는지.. 그렇게 두 번째 저녁식사를 먹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루 5끼를 먹는다는 스페인에서 난 충실하게 5끼를 챙겨 먹었다. 게다 다른 순례자들에게 사육도 많이 당했는데 아무래도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통통해진 나를 잡아먹을 생각인가 보다.



 나의 두 번째 식사를 담당한 이는 브라질에서 온 안드레와 스페인 출신이지만 호주에 사는 하비였다. 안드레가 이틀 전 나에게 식사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했었고 어제 그 약속을 지키고자 호의를 베풀었는데 그땐 내가 벌써 저녁식사로 고기를 먹은 상태여서 안드레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오늘 또 식사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는데, 연이여 거절할 수가 없어서 그러자고 했다. 그러니 저녁을 두 번 먹은 것이다

 안드레가 나를 위해 파스타를 만드는 동안 다음날을 위해 계란을 삶고 있는 하비에게 나의 계란도 같이 삶으라고 살짝 밀어 넣었다. 그의 계란은 두 개이고, 내 건 6개인데.. 헤헤

 하비와 안드레. 팜플로나에서부터 자주 보던 얼굴이었지만 그들은 유난히 나에게 관대했고  이후로도 늘 나를 따뜻하게 대해줬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그냥 좋은 사람들이었고 언제든 헤어져도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순례길이 끝날 때도, 그리고 끝난 후에도 큰 의미로 남는 사람들이 되었다.




 순례길에서의 하루 일정은 아주 심플하다. 아침에 눈뜨면 출동 준비하고 하루 종일 걷고 나서는 숙소에서는 휴식을 취하고 잠드는 것이 전부이다.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순례자들과 어울리고 싶으면 쉽게 어울릴 수 있다. 다들 한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기에 쉽게 친해지고 쉽게 친분을 쌓았다. 특히나 해가 지고 나서 저녁을 먹고 나서는 휴식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기에 다른 순례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게 당연한 일과였다.

  와인과 맥주로 밤을 달래는 동안 이번엔 음악도 흥건하게 울려 퍼졌다. 기타 하나로 노래를 다 같이 부르기도 하고 돌아가며 자신의 재주를 뽐내기도 했다.

 그렇게 음악이 끝나고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일찍 취침에 들어갔으나, 난 로비에 남아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로비에 조용히 앉아 이것저것 정리하며 앉아 있을 때만 해도 난 이날 밤이 다른 날처럼 평온한 밤이 될 줄 알았다.  

앰뷸런스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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