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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녀석 성휘 Feb 23. 2021

#18. 순례길이 스포츠가 되어서는 안 되는 거야??

열일곱 번째 날 : 사아군에서 렐리에고스까지 31km


[산티아고 순례길] 

사아군(Sahagun)에서 렐리에고스(Reliegos)까지 31km


지난밤은 아주 간만에 숙면을 취한 것 같다. 60여 명이 잘 수 있는 공간에 고작 20명 정도밖에 순례자가 없었고 다들 띄엄띄엄 빈 공간을 두고 침대를 차지했다. 덕분에 난 주변 이웃 아무도 없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아주 편하게 취침을 하였다.

 취침할 때, 가장 곤욕스러운 것은 싸구려 간이침대의 흔들거림이다.

이 층 침대에 오르고 내리락 거리는 것도 버겁지만, 잠자면서 뒤척거릴 때마다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도 버겁다. 게다, 위아래 침대에 있는 이웃 간의 움직임과 무게감이 실시간으로 그대로 전해지는 것도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런데, 지난밤은 이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그렇수밖에 없는 게 내 주변 앞뒤 양옆 건너편으로 아무도 없었으니 고요함 그 자체이다. 그 고요함 속에서 아기처럼 잘 잤다. 그러니 컨디션이 아주 좋다.




 깜깜한 새벽 공기를 가르고 출동하는데, 나이트클럽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놀았는지, 아직도 여흥이 남았는지 아님 첫차를 기다리는지  클럽 밖 골목으로 취객들이 가득했다.  

 만취의 스페인 사람들이 순례자인 나에게 '부엔 까미노'를 외치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심지어 자신이 마시던 술을 건네주는 이도 있었다.

나도 몇 번인가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밤새 술 마시고 논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이제는 체력이 달려서 그리 놀라고 해도 못한다. 심지어 노래방에서도 한 곡의 반만 부르고 나면 기절 상태이니 노는 것도 다 때가 있나 보다.

'그래, 어제가 토요일이었구나!'

순례길을 나서면서부터 요일의 개념이 사라졌다. 그래도 한국에서의 바쁜 삶보다 하루가 왠지 길어진 느낌이다. 걷고, 쉬고, 먹고, 자고 하는 아주 단순한 일상인데 말이다. 그리고 보면 핸드폰을 보는 시간도 거의 없다. 가끔 꺼내본 핸드폰은 지도 보고 거리를 측정한다거나, 친구 간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다이다.

정말 단순한 삶을 살고 있는데,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이유는 월까?



사아군(Sahagun)을 벗어나 첫 번째 만나는 마을의 한 바에서 아침식사 겸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옆에 있는 스페인 할아버지가 이른 아침부터 약주를 한잔하신다. 호기심에 무슨 술인지 물어보니, 오루호(Orujo)라는 증류주이다. 할아버지가 한잔 권하는데 냄새만 맡아도 취기가 확 올라온다.

나 보고도 계속 마시라고 하는데 너무 이른 아침이라 거절했다. 반주는 늘 마시지만 그래도 양심상 늘 정오쯤부터 시작하는데, 아침 9시도 안되어서 30도짜리 브랜디를 마실 순 없다.

"아침에 마시는 것치고는 너무 강한 술 아니에요?"라는 나의 물음에 할아버지 옆의 아주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새벽에 밭에 나가기 전에 이거 마시고 몸을 데우는 거야"

"아~, 뭘로 만든 술이에요?"

"포도, 와인 만들고 남은 껍질이랑 줄기, 여기도 맛있지만 갈리시아 지방에도 더 다양한 술이 있어. 노란 오루호, 빨간 오루호, 커피 오루호, 초코 오루호."

"그럼 이 잔 이름은 뭐예요?"

"츄삐또(Chupito)"

소주잔처럼 작은 잔이 귀엽고 이뻐서 물었더니 이름이 츄삐또란다. 이름도 꽤 귀엽다.



좌) 투병한 술과 소주잔모양이 오루호와 츄삐또.  우) 커피먹고 샌드위치먹고 마무리로 탄산수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하루 한 개의 새로운 단어를 공부 중인데, 그것은 대부분 다 음식과 술로 이름뿐이다. 그래도 배움을 기쁨을 만끽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나의 스페인어 선생님은 대부분 카페나 바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이다. 그들은 내가 순례자라는 자체로도 존중해주지만, 스페인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내 자세가 반가워서인지 더 열심히 설명해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했다.


내가 순례길을 왔을 때, 제일 잘한 점은 그나마 스페인어를 약간이라도 알고 왔다는 점이고, 제일 못난 점은 스페인을 제대로 공부하고 오지 못한 점이다.

나의 스페인어 실력은 몇 년 전 남미 여행으로 다급하게 장착한 어설픈 실력이었고, 여행 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급박하게 잊혀진 상태였다.

만일 내가 그 이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공부했더라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느꼈을 텐데, 많이 아쉬운 대목이다.

여하튼, 오루호와 츄삐또, 오늘 새로운 단어 두 개를 배웠으니 내일의 공부는 건너뛰련다.


그다음 마을을 걷다가 낯익은 글이 쓰인 간판을 봤다.

'신라면 있어요'

한글로 따박따박 쓰여진 간판이 걸려있는 식당에 자석이 끌리듯 빨려 들어갔다.

한국인은커녕 동양인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에 신라면을 파니 반갑다. 카미노 길에 신라면을 파는 곳이 몇몇 있다고 얼핏 소문을 들었지만, 수소문해서 한국 음식을 찾아먹는 스타일이 아닌 관계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리 떡하니 만나니 반갑긴 반갑다.

'그럼 한번 먹어볼까?'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나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두 번째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신라면을 주문하니 밥도 같이 주는데, 한국식의 밥이 없이 기다란 스페인식 쌀이라고 주인 언니가 양해를 구했다.

뭐 어떠냐...

 어떻게 한국 음식을 팔게 되었냐는 나의 물음에 주인아저씨는 마드리드에 사는 한국 친구가 있는데, 그가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국경을 넘는 그들의 우정에 내 입이 호사를 누리는구나.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미국인 순례자인 조던이 들어와 함께 동석했다.

조던을 꽤 오래부터 봤지만, 제대로 이야기하고 알게 된 것은 이틀 전 까리온에서이다.

한국 음식을 먹을 줄 아는 조던과 라면을 나누어 먹으면서 벼르던 오루호도 같이 한잔했다.


신라면과 오루호.  술의 도수가 강했는데 매콤한 라면 국물과 조화가 최고였다



"직업이 뭐야?"라는 나의 질문에

"봄베로"라고 답을 했다.

봄베로란 스페인어로 소방관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친구의 몸이 그렇게 좋았구나.

"어? 스페인어 할 줄 알아?"

"응. 여기 걷겠다고 3개월 정도 공부했어" 푸르디푸른 파란 눈을 반짝이며 그가 대답했다.

"대단하다." 


많은 영어권 사람들은 자국어에 대한 교만한 마음이 있다. 국제 언어가 영어이다 보니, 그들은 불편을 느끼지도 못하고 많은 이가 타언어를 배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미국 친구 중에는 한국에서 2년 지내면서 숫자만 열까지 세는 거 이외에는 한국말을 아예 못하는 녀석도 있었다. 또한 다국적 사람들이 다 같이 어울려있을 때에서 타국어에 대한 배려 없이 속사포로 영어로 떠들어대는 영어권 사람들도 있었다. 뭐 배려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일반화시키는 오류일지도 모르겠으나 자국어에 대한 자긍심에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영미권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타 언어를 한 번이라도 공부해본 영어권 사람들은 비영어권의 영어에 대한 고충을 안다. 그래서인지 그런 사람들은 비 영어권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조던도 그러했다. 미국 남서부의 악센트가 가득했지만 외국인인 나를 배려해 천천히 이야기했고, 또한 가급적이면 스페인어로 이야기하려 노력했다. 이 얼마나 기특한 녀석인가!!



밥을 먹으면서 그가 나눈 주된 대화 내용은 우리나라의 소방관에 대한 예우가 얼마나 부당한지 와, 미국에서도 애완동물이나 길고양이 혹은 개에 관한 어처구니없는 신고가 들어온다는 내용이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조던과는 다음 마을에서 만나기로 하고 내가 먼저 일어섰다.

봄베로 조던, 왜 그가 사진에는 짱땅하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오루호한잔 더 마시고 나왔어야 했어' 그가 건넨 말이다.


나중에 '엠마'라는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조던은 이 순례자 길을 체력훈련을 삼아 걷는다고 했다.

엠마이라는 친구는 루마니아인지 헝가리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여하튼 동유럽에서 온 친구인데, 불행히도 그녀는 순례길 전체를 통틀어서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유일한 순례자이다.

그녀가 나에게 조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거 알아? 조던은 순례길로 트레이닝 중 이래"라는 말투가 꼭 연예인 가십거리 이야기하는 본새였다. 아니 그보다는 비아냥에 가까웠다. 

"아, 그래? 어쩐지... 멋진데"라는 나의 대답에 그녀는 살짝 실망한 투였다.

아마도 그녀는 내심 비종교적이고 정신적 수양에서 어긋난 순례길 동기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나 본데 맞장구를 쳐주지 않는 나에게 실망했나 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 가운데 예수님을 중심으로 오른쪽 두 번째 노란 화살표가 야고보이며 왼쪽 노란점 표시가 야고보 동생 요한이다





"넌, 천주교 교인도 아니잖아, 그런데 왜 순례길을 걷는다는 거지?"

수년 전, 언젠가는 카미노 길을 걸어보겠다는 막연한 나의 이야기에 천주교 신자인 친구가 의아하게 물어봤다.

동시에 신성한 그 길을 종교적이거나 정신적 수양의 이유가 아닌 막연한 동기로 걸어가겠다는 나의 의도를 아주 불순하게 생각했다.

"거기에 천주교 신자만 걸어야 된다고 누가 침 발라났냐?"

개도 다니고, 차도 다니고, 자전거도 다니는 길인데, 비 종교인이 걷는다면 길이 더러워지기라도 하는 것인가?


'산티아고 순례길', 'El Camino De Santiago'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있는 산티아고 꼼포스텔라를 향해가는 긴 여정을 말한다. 스페인에만 해도 십여 개의 다양한 루트가 있고 그중 제일 유명한 길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프랑스 길이다.

우리는 야고보라 칭하지만 영어권에서 제임스(James), 불어로는 자크(Jacques), 독일어로는 야콥(Jakon), 스페인 이름으로는 하이메(Jaime) 혹은 디에고(Diego) (아예 산티아고라는 이름도 있음)라고 불리는데, 앞에 성자를 칭하는 Santo와 야고보의 로마식 표기가 합쳐져 지금의 산티아고(Santiago)가 되었다.

성 야고보가 예루살렘에서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끝 갈리시아 지방까지 선교를 하러 다녔고, 예루살렘에 돌아와서는 순교당했으며, 배에 띄어진 그의 시신이 지중해를 건너, 대서양에 도달하여 다시 갈리시아 지방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의 시신임을 확인하여 그 위에 교회를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산티아고 데 꼼포스텔라 성당이다. 그의 무덤이 정비된 이후 지난 1200여 년간 이 길을 수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갔으니 그 길에 겹겹이 쌓인 믿음의 에너지만 해도 대단할 것이다. 그러니 종교인으로서의 까미노에 대한 자긍심이 얼마나 클지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스포츠를 목적으로 걷는다는 것이 과연 불온한 생각이고 불순한 행동일까??

종교인이 그 문제를 배타적인 태도로 보는 것은 옳은 태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들은 바로는 예전에는 이 길을 죄인들도 걸었다고 한다. 수감생활을 대신해서 이 길을 걸었다고 하는데, 그러니 체력단련을 위해 이 길을 걷는 것이 순수하지 않다고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종교적으로 볼 때, 잠재적인 고객을 포섭하는 것일 수도 있다. 체력단련 삼아 왔지만, 마주치는 성당에 친근감을 느끼고, 길에 담긴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영적인 경험도 얻다 보면 언젠가는 종교적인 마음이 생길지도 모를 일 아니잖는가? 순례길 이후로 성경공부를 하는 나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스포츠 목적으로 오는 순례자들에게는 순례 증서를 발급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하고 흐름이 변하듯이 지금은 그들에게도 순례 증서를 준다. 





꾸역꾸역 땡볕 아래를 걸어 도착한 마을은  렐리에고스(Reliegos). 7킬로 정도 더 걸어 다음 마을까지 갈까 하다가 어차피 모레까지 큰 도시인  레온에 도착하는 게 목표이니  오늘 무리하지 말자고 생각해서 그냥 30킬로 지점의 이 마을에서 멈추기로 했다.

 공립 알베르게가 있어 거기서 지내려다가 2유로 더 주고 7유로에 사설 알베르게로 옮겼다.

한 달 뒤 한국에 돌아갈 예정인데 아무래도 비행기 티켓을 구입해야 될 것 같아 인터넷이 되는 곳으로 옮긴 것이고, 귀국 티켓이 있어야지 나머지 길도 편하게 걸을 것 같았기에 내린 선택이었다. 


어제 40킬로 걷고 오늘 30킬로 걸었으니 은근 뿌듯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다리도 절던 내가 그 긴 길을 갔다니 다들 믿지 않는 눈치였고, 혹자는 버스 타고 갔냐고 묻기까지 했다.

여하튼, 은근 우쭐해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아는 얼굴들을 다시 만났다. 다들 나처럼 40,30 혹은 30, 40씩 걸어온 것이다. 혼자 많이 걸었다고 잠시 기고만장했었는데..... 남들 다 하는 거였어....ㅠㅠ


 저녁을 먹은 후, 다시 만난 하비엠마를 만나 바에서 와인과 맥주를 한 잔 함으로써 하루를 마감한다.

난 맥주와 레몬 탄산이 섞인 '클라라'를 무척 즐겨마셨는데, 하비는 매번 나의 그 모습에 자신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래, 내가 너를 낳은 아빠 란다"


내가 비행기 티켓 때문에 공립에서 사립 알베르께로 옮겼다는 말에

"그게 너였어? 공립 알베르게 주인이 니욕하던데"하며 엠마가 쪼르르 나에게 말을 전해주었다.


'뭐 그런 일까지 시시콜콜 전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이때까지는 잘 몰랐는데 엠마는 슬슬 날 약 올리는 재주가 있었다.

 사연인즉슨 공립 알베르게 주인장이 인터넷 때문에 숙소를 바꾼 순례자가 있었다면서 요즘 순례자는 순례자가 아니고 관광객이라며 하비엠마에게 구시렁거렸다는 것이다.

순례자든 관광객이든 어찌 되었던 집에는 가야 할 것 아니냐?

기분이 묘하게 불편했다.

그 주인장에게 내 사정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주었는데도 그리 내 뒤땅을 깠다는 게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뭐 고객을 잃었으니 그리 불만을 표출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불편한 마음이 든 것은 그냥 함구해도 되는 일을 구태여 전해줘서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엠마의 가벼운 입놀림이었다.

그래도 이때까진 나에대한 그녀의 여타 행동을 그리 크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순례길의 마지막까지 내가 그녀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었을 줄을...




내일이면 레온에 도착하는구나...


이제 3분의 2를 끝내는 셈이다. 오지 않을 것 같은 후반부가 그렇게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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