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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규 May 25. 2018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과제

참된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올 겨울, 학기 중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서 열린 ‘David Hockney’ 회고전을 간 적이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영국 팝 아트의 대가이다. 그는 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언제나 공공연하게 드러냈으며, 동성애자로서의 삶과 사랑을 자신의 다양한 작품들에 따스한 색조로 담아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신념을 흔들림 없이, 또한 무척이나 아름답게, 세상에 선보일 줄 아는 아티스트였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David Hockney' 회고전에서


1960년대에 젊은 호크니가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는 로스앤젤레스의 모더니스트 주택들을 무대로 펼쳐지는 뜨거운 관능미에 주목하였다면 2010년대에는 또 한 명의 신인 작가가 호크니의 작품들과 같은 크기, 색감, 구조, 그리고 소재를 그대로 빌려와 이 도시의 또 다른 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멕시코 출신 불법 이민자들 사이에서 태어난 이 젊은 작가의 이름은 Ramiro Gomez. 그는 자신의 작품들에서 이 화려한 ‘별들의 도시’에서 강렬하게 내려 쬐는 태양의 그림자 아래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사람들, 바로 라틴계 노동자들을 그려냈다.


호크니의 작품에서 다이빙 보드와 경쾌하게 튀어오는 물 튀김이 있다면, 고메즈의 작품에선 고요한 풀장의 수면 위로 묵묵히 바닥과 저택의 창문을 닦고 있는 얼굴 없는 라틴계 청소부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호크니의 작품에선 비벌리 힐즈의 넓은 저택에 사는 주부가 전면에 등장하지만 고메즈의 작품에선 비벌리 힐즈의 넓은 저택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가 주인공이다. 이렇듯 고메즈의 작품들은 호크니에게 바치는 오마쥬인 동시에 비판인데, 그는 호크니가 사랑했고, 우리가 열광하는 그 ‘캘리포니아 드림’을 가능케 하고 지탱해온 소외된 노동자들을 집요하게 포착하고 조명한다.


호크니의 Beverly Hills Housewife (좌) / 고메즈의 Beverly Hills Housekeeper (우)


호크니와 고메즈는 같은 건물,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것에 주목하였다. 사람의 시선이란 늘 한 표면만을 관찰할 뿐 완전한 진실에 닿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것. 예술이란 종종 이렇게 불완전한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시야가 넓어지면 그전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보이게 되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면 결국 더욱 깊이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사랑하게 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라미로 고메즈 (Ramiro Gomez)




이렇듯 진정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두 남자가 있었다. 1970년 11월 13일, 22살의 나이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라고 절규하며 자신의 몸을 불살라 시대를 밝히는 횃불이 되었던 전태일 열사. 그리고 이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그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여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고, 줄담배에 본인의 육신마저 하얗게 타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던,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수재민 집단소송 등을 승소로 이끌며 소외되고 억울한 이들을 위해 싸우다 폐암으로 겨우 4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인권변호사 조영래. 이 둘은 공통적으로 모진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점도 물론 있었다. 일단 전태일 열사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반면, 조영래 변호사는 경기고 수석 졸업에 서울대학교 수석으로 법과대학에 입학한 엘리트였다. 하지만 전태일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구해 고된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전문적인 법학 개념과 용어로 구성된 이 교재와 씨름하며, 그와 그의 동료들이 처한 이 암담한 노동현실의 근본적 원인은 근로기준법이 준수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깨달았다. 그는 이때부터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전태일의 절규에 응답한 것이 바로 조영래였다. 그는 전태일 분신 사건 당시 사법시험을 준비 중이었는데, 소식을 접한 후 법전을 덮고, 전태일의 그토록 원하던 '대학생 친구'가 되어 그의 시신을 인수해 서울대 법대 학생장을 주선하고 시국선언문을 초안했다. 그 후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로 수배되어 6년간 쫓기는 생활을 하면서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씨를 만나고 당시 전태일과 함께했던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기 위해 청계천 일대를 누비면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목격했다.

이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밑바닥 인생의 젊은 청년이 간파해낸 인간적 고통의 본질에 대한 고발에, 모두가 알아주던 엘리트 인생의 젊은 청년이 대답하여 그의 삶과, 죽음과, 그가 밝혀낸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이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이토록 운명적이고 시적 이리만큼 아름다운 만남이 또 있을까?




내가 처음 『전태일 평전』을 접한 건 로스쿨 2학년 1학기 때였다.  그 당시 Antidiscrimination Law (차별금지법) 수업을 들으면서, 문득 군생활 때 알게 된, 하지만 구해서 읽어보지는 못했던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결국 학교 도서관에서 먼지만 먹고 있는 이 책을 찾아냈다. 처음에는 이 책을 학기 내내 조금씩 읽으며 동기부여용 독서로 활용할 요량이었으나 그날 밤 책장을 펼치자마자 단번에 전태일, 그리고 조영래에 매료된 나는, 결국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다음은 『전태일 평전』에서 발췌해온 글이다.


여기서 그는 모든 인간이 서로 용해되어 있는 상태를 꿈꾼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서로에게 무관심한 외톨이로서, 다만 생존경쟁의 냉혹한 질서 아래서 탐욕과 이해관계로 야합하고 있는 세상, 그리하여 그 ‘덩어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거기에 끼지 못하는 밀려나는 ‘부스러기’ 인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사회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인간적인 필요에 봉사하면서 참된 관심과 애정으로 결함 하고 있는 이상 사회에의 꿈이었다. 그는 오늘날의 차디찬 사회 현실 아래서도 인간 심정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소박한 물줄기를 볼 때면, 그것이야말로 그러한 이상 사회의 단초이며,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모든 인간이 서로를 적대하고 있는 이 현실, 강자가 약자를 부조리하게 학대하는 이 현실, ‘인간 최소한의 요구’ 마저도 외면당해 짓밟히고 있는 이 현실은 분명히 불의한 현실이었다. 그것은 개조되어야 할 현실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뿌리는 너무나 깁고 그 벽은 너무나 두터운 것이어서 그는 자신이 자꾸만 나약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백 번이고 다시 일어나 ‘타협하지 않고 싸우겠다’ 고 다짐했다.


『전태일 평전』을 덮고 나자, 나 역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부터 무려 반세기가 지난 현재, 모든 인간이 서로를 적대하고 있는 이 현실, 강자가 약자를 부조리하게 학대하는 이 현실, ‘인간 최소한의 요구’ 마저도 외면당해 짓밟히고 있는 이 현실은 여전히, 변함없이 현재 진행형인 불의한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래서 관심 갖지 않았던, 그래서 알지도 못하고 사랑할 수도 없었던 노동자들의 삶을 알게 된 나 자신이었다. 이제 내가 보는 세상이 전과 같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전태일 열사와 조영래 변호사의 만남이 운명적이었듯이, 내가 그들을 알게 된 것 또한 운명적이라고 느껴다. 그때부터 나는 미처 몰랐던 노동자의 모진 삶에 대해 눈을 돌리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작은 진실'도, 사람들의 아픔도 알아보는 눈을 키워 전태일이 말하던 그들을 억압하고 인간의 굴레를 얽어 매고 있는 모든 종류의 '타율적인 구속'과 맞서 싸우는 법조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침내 인생을 걸어볼 만한 꿈과 일생동안 풀어야 할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전태일은 말했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과제이다.”


세상을 더 넓게 그리고 더 깊게 직시하라는 가르침을 준 전태일과 조영래의 삶, 그리고 호크니와 고메즈의 작품들, 그들에게 깊은 존경과 높은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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