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조차도 너무 희미한 한 편의 영화, [은행나무 침대]~!!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만난 것은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영화의 제목으로 인해 단단한 고리 맺음을 한 용문사의 은행나무.
영화의 제목만큼은 아직도 마치 어제의 장면인듯 선명하지만
내용조차도 아련한 추억의 영화를 떠올림도 또한 은행나무가 주는
고고한 천년의 추억을 간직했기 때문이리라.
검색해보니 1996년 작이다...아, 시간의 흐름이여~~!!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갈구하는 질긴 인연은 천년 은행나무로 이어지는가.
문득문득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면서 용문사 은행나무를 떠올렸다.
일을 마친 동료들과 우연히 가게 되었던 용문사. 벌써 20여년이 흘렀다.
상상도 하지 못할 위엄을 간직한 은행나무...
그 높이와 그 둘레에 그만 기가 질려버렸던 기억이 아련하다.
수많은 이들이 은행나무를 스쳐갔을 것이고
그들의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나무가 아니던가.
그 침묵의 목격자를 다시 만나러 간 것은 순전한 미련때문이었을까.
가을이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내가 은행나무를 만난 것은 늘 짙푸른 녹음이 창궐할 즈음이니
눈 감으면 그려지는 노오란 은행잎이 흩날리는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마치 예전에 그곳에서 누군가와의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처럼
온통 노오란 은행잎 흩날리는 가을을 그리곤하는 나는 감성 99% 아지매가
틀림없나 보다.
막상 가서 만나면 그 위엄에 놀라 하염없이 바라만 볼 것임에도
자석처럼 끌리는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함도 또한 질긴 세월을 말 없이 간직한
은행나무의 위엄 덕분일 것이다.
은행나무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욕심이 난다.
여기서 담아보고, 저기서 담아보고....다시 고개를 갸웃갸웃....
만족할 만한 컷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만큼 그 위엄에 존경의 마음은 우러난다.
백년도 살지 못할 인생에 비해 천년이 훨씬 넘은 인고의 세월을 말없이
나이테에 새기며 묵묵히 변화의 풍파를 이겨낸 은행나무가 아니던가.
그 위엄과 존귀함에 마음을 내려놓은 사람들의 기원이 가득 담긴 노오란
소원지가 가을 풍경을 담지 못하는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은행나무 그 너른 품에 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의 거리는 보호수의 장막만큼 멀었고 아쉬움은 몇 배로 컸다.
이곳에 오는 길에 만난 베어진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서 홀연
내 삶의 단면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다.
천 백 여년이 넘은 이 은행나무의 단면은 어떨까?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담은 그 속은 어떨까.
국가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토해낸 그 울음의 깊이는 어떨까.
연리지장애가족사회적협동조합을 하면서 나는 가끔
용문사의 은행나무를 떠올리거나 속리산의 정이품송을 떠올리곤 한다.
'살아 있으라.'
살아있기에 가능한 존엄과 위엄을 나는 그들을 통해 본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하여도 살아 있지 않으면 묻히고 마는 현실....
그 길고 긴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은행나무에 마음이 자꾸 가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 은행나무는 노오란 옷 갈아입고
천년을 훌쩍 뛰어넘은 사랑을 찾아 바람결에 소식을 전할지도 모르겠다.
그 천여년을 묵묵히 견딘 은행나무 곁을 스치며 간절한 소원지들의 나부낌을
바라보는 내게
'살아 있으라. 살아 있으라...'
은행나무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 했다.
발달장애인이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노력에 결실이 맺도록 살아있으라....
처음엔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에 심취하다가
홀연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살아 있으라'라는 메시지를 받는 나.
천년 위엄을 머금은 그 소리에 나는 몇 번의 합장을 했는지 모른다....
합장한 손안으로 스며드는 천년의 전율...
그 길고 긴 역사를 침묵으로 일관하며 침묵의 목격자로 살아낸 시간.
오길 참 잘 했다.
내 하루하루의 삶도 이와 같아서 진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구나 .
한 무리로 찾아온 관람객들의 소리가 은행나무 굵은 가지를 따라 흩어지고
그 와중에 난 소중한 소망 하나 떨궈놓았다.
오가는 내내 귓전을 채웠던 생명수의 정갈한 리듬이 내 소망에 싹을 틔우리라.
눈 감으니 노오란 은행잎이 주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그것으로 되었다...그것으로 되었어~!!!
천연기념물 제30호. 높이 42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 14m로 수령은 1,100년으로 추정된다. 가지는 동서로 28.1m, 남북으로 28.4m 정도 퍼져 있다.
나무의 나이를 추정하는 근거는 용문사의 창건연대와 관련하여 산출하고 있다. 용문사는 649년(신라 진덕여왕 3)에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따라서 은행나무는 절을 세운 다음 중국을 왕래하던 스님이 가져다가 심은 것으로 보고 있다.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楊平 龍門寺 銀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