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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l 09. 2023

낙원은 김해에 있다

김해책여행 10

냉장서고는 앞서 언급했듯이 골목 안쪽에 있는 정원에 있다. 이곳에는 세마리 고양이가 상주한다. 책을 보러 가면 고양이를 만날 수 있는 거다.


고양이1

가장 친화력이 좋은 아이는 삼색냥이 ‘송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다가와서 말을 건다. 바로 만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조금 가까워져야 궁디팡팡을 허용한다. 이름은 드라마에 나오는 발랄한 캐릭터에서 따왔다고 한다.


고양이2

치즈냥이 ‘고니’가 이중에서 일인자다. 서로 장난치고 사이 좋게 지내는 듯한데, 평화로운 이미지와 달리 서열이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고양이3

검은 고양이 ‘빽가’는 가슴만 흰색이다. 한국사람이 고양이 이름 짓는데 아주 큰 에너지를 쏟지는 않는 듯하다. 제일 겁이 많고 세 마리 고양이가 차례로 나타난다면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이다.



원래 서점이 있던 자리에는 뜨개질공방이 있었다. 그런데 공방이 2층으로 옮기면서 컨테이너 자리가 났다. 공방 사장님이 고양이를 돌보고 고양이는 옥상과 정원을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살고 있다. 그런데 뜨개질공방 사장님이 여행을 떠난 거다. 그래서 빈 자리에 서점과 고양이 집사가 동시에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이 공고를 mopo 작가가 우연히 보게되었고 하루만에 고민하고 신청하고 결정해서 급 서점지기, 급 고양이집사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고양이에 빠진지 몇달 안되었는데, 이분은 더 심하다. 이제 겨우 한두달인데 하루종일 고양이 돌봄 노동만 하고 앉아있다.


이렇게 좋은 위치에 어떻게 서점이 들어올 수 있지 하는 의문이 이 단계에서 풀렸다. 좁은 공간이고 정원에 있는 컨테이너니까 서점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집주인이 처음부터 서점할 임차인을 모집했다. 하지만 이건 페이크였고, 실제로는 집사이자 고양이 돌봄 노예가 필요한 거였다.



권력이 강할 때는 물리력이 필요없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권력이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권력이 약해지면 물리력이 동원된다. 권력이 아주 잘 보인다. 우리가 ‘독재’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권력이 작아지는 순간에 가시화된 모습이다. 권력이 아주 큰 경우는 보통 매력적인 정치지도자나 종교지도자를 떠올리는데, 오늘 생각을 바꿨다. 권력자는 고양이다. 서점지기인 mopo 작가는 자기가 노동을 하는지도 모르고 생글생글 웃고 있다. 고양이 3마리에게 동시에 츄르 주는 방법 아냐고 자기가 보여주겠다면서 열심히 츄르를 뜯고 꽤 오랜 시간 봉사했다. 어느 고양이도 냥냥 펀치를 날리지 않았지만 서점지기는 바짝 엎드렸고 심지어 행복해보였다. 강한 권력은 비가시화된다는 문구가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제목 | 권력이란 무엇인가
저자 | 한병철
권력에 복종하는 자가 스스로 권력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려고 하고, 권력자의 의지를 마치 자신의 의지처럼, 심지어 미리 알아서 따르려고 하는 것, 이것은 더욱 강력한 권력의 지표다.
권력자에 대립적인 의지가 생겨나 그에 맞서게 된다는 사실은 이미 그 권력이 나약해졌다는 증거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권력은 이미 약화된 권력이다.
운명이 자유로운 선택인 양 체험되는 것이다. 피지배자들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자신의 상태를 자기 취향으로 삼게 된다. 빈곤이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 되고, 강제나 억압이 자유로 여겨지는 것이다.


고양이를 보다보면 물론 행복하지만 옅은 죄책감이 항상 뒤따른다. 집고양이를 볼 때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서 미안하다. 밖이 위험하지만, 그래서 그 위험으로부터 이 고양이를 보호하는 거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나 때문에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길고양이를 보면, 돌봐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다른 고양이들과의 영역다툼과 상처, 사람과 차의 소음과 물리적인 공격. 추위와 더위에 그대로 노출되는 가혹한 환경. 그래서 일찍 죽게 되는 길고양이에게 미안한 게 너무 많다. 반면 이 정원 고양이들은 부족한 게 없어 보인다. 지 마음대로 놀고 자고 사료 먹고 츄르 먹고 사랑받고, 언제든 나갈 수 있다. 이 조그마한 낙원은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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