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빨갱이 현 출판인으로서 오랜만에 집회에 나갔다. 공식적인 집회 시간도 아니고 (공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늦은 밤이었는데 국회 바로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행사가 아니니 단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발언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사람들이 여럿 모여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윤석열을, 체포하라!!
윤석열을, 탄핵하라!!
위 문장을 반복하는데, 일부는 앞부분을, 일부는 뒷부분을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뒷부분, '체포하라'와 '탄핵하라'만 외치고 있었다. 아마 그 단어를 말하기 싫었겠지. 그래서 나는 앞부분만 외쳤다.
윤석열을!!!
윤석열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는 앞부분을 외쳐야 하니까...
그런데 응원봉이 정말 많다. 빨갱이 시절, 촛불이나 횃불은 본 적 있는데 이런건 생소하다. 종류가 정말 다양했는데 지금 검색해보니까 귀여운게 많고 이름도 진짜 웃기다. 여봉, 몬둥이, 믐뭔봄, 뿅봉, 대파봉, 샤팅스타... 인터넷에 보니 새걸 파는 페이지도 있고, 중고로 나온 것도 있다. 다음주에는 마마무 응원봉을 사가지고 나올까. 너무 귀엽다.
집회현장이 달라지고 있다는 건 응원봉이라는 상징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관용은 여유있는 환경에서 나온다. 소수자를 배려하던 문화도 (평소에도 부족하지만) 위기 상황이 되면 제일 먼저 사라진다. 박근혜 탄핵집회 때는 더 심했지만,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이다. 여성 비하, 소수자 혐오는 정의의 탈을 쓰고 광장으로 나온다(김건희를 뭐라고 욕하는지 떠올려보자). 분노는 힘이지만,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응원봉이 반가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너죽고나살자 식의 비민주적인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참여자 고유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즐겁게 진행되는 민주화운동의 씨앗으로 보인다. 마냥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집회와 마냥 긍정적으로만 여겨지는 응원이 합쳐지는 느낌이랄까. 국회 앞에서 밤늦게까지 함께 소리 지르는 이들은 20대가 가장 많아 보였고, 10대와 30대도 많이 보였다(나이를 물어본 건 아니지만).
(나는 잘 모르지만) 응원봉을 흔들며, 체포하라!! 탄핵하라!! 를 외치는 이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면서도 부단히 싸워온 게 아닐까. 어리지만 보통 내공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어르신인데 동안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