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놈 잡아라, 저놈!”
어둠 속에서 째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 뒤를 이어 누군가가 후닥닥
발소리를 앞세우고 달려와 내게 매달렸다.
“얘야, 나 좀…….”
어둠을 뚫고 갑작스레 나타난 청년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리어카 밑으로 기어 들어가 웅크렸다.
“학생, 어떤 사람, 이쪽으로 안 왔어?”
방범대원이 방망이를 들고 쫓아와 헐떡이며 물었다.
“......”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하고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그 방범대원은 뒤따라온 방범대원이
손짓을 하자,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래쪽으로 잽싸게 뛰어갔다.
뛰어가는 두 방범대원의 등이 보이자
가슴이 벌렁이기 시작했다.
두 방범대원이 아주 멀리 사라졌는데도,
가슴에서 해 대는 방망이질은 멈추지를 않았다.
리어카 밑으로 들어가 숨은
사나이는 고개도 내 밀지를 않았다.
나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한 소리로 불렀다.
“혀엉…….”
“…….”
청년에게서 대답이 없다.
나는 고개를 더 숙이고
웅크린 청년을 보려 하는데,
“옥수수 구운 것으로 천 원어치만 줄래?”
하는 말에 나는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아주머니가 천 원짜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이어 말했다.
“왜, 구운 게 없니?”
아주머니는 어린것이 밤늦도록
장사하는 것이 안 되었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있어요.”
나는 조금 전에 연탄불에 구워
한쪽에 내어놓은 옥수수를 봉투에 담아 주었다.
아주머니는 내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고는 위쪽으로 올라갔다.
‘어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혀엉, 형-”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약간 숙이고
청년을 불렀다.
고개를 약간 숙인 것은
밑과 앞을 동시에 보려고 그랬던 것이다.
“…….”
청년은 대답이 없다.
‘이상하다, 여기서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고개를 갸우뚱한 나는
몸을 더 숙이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아이쿠!’
청년은 땅바닥에 있는 옥수수자루에
기대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청년 몸을 흔들면서 불렀다.
“형, 형.”
청년 옷은 온통 젖어 있었다.
땀을 엄청나게 흘린 것 같았다.
그런 청년을 다시 흔들면서 불렀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렇지.’
나는 물통을 번쩍 들어서 청년 얼굴에 부었다.
찬물이 콸콸 쏟아졌다.
“아아…….”
청년은 흘러내리는 물을
오른손으로 닦으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형!”
“고맙다. 꼬마야…….”
청년은 정신이 드는지 옷을
툭툭 털면서 일어서려다가,
“아이구, 다리야.”
하면서 오른쪽 다리를 잡고 풀썩 주저앉았다.
“형, 왜 그래요?”
“삐끗한 거 같아.”
“그럼 어쩌죠?”
“…….”
“삔 데가 어서 나아야 할 텐데…….”
나는 겨우 일어나서 가려고 하는 청년을 잡았다.
‘아버지께서 날 용서 해 주실까?’
그 날 밤, 나는 갈 곳이 없는
그 청년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내가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헛기침만 했다.
나는 청년과 아버지를 흘끗흘끗 훔쳐보며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다.
나는 청년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또 대답 없는 아버지가 답답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
“피곤할 테니 어서 씻고 밥 먹거라.
내일쯤이면 내가 장사를 해도 괜찮겠다.”
아버지는 청년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청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아저씨 용서하십시오.
제가 잘못한 걸 모르는
그런 못된 놈은 아닙니다.”
하고 아버지에게 잘못을 빌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내내
청년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래도 그렇지. 제 동생이 아프다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려 들면 되겠어?”
하고 퉁명스럽게 청년을 나무랐다.
“제 잘못을 압니다.
그래서 대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방범대원들이 와서 달아났던 겁니다.
제 말, 정말입니다. 물어 보셔도 좋습니다.
제 동생이 아주 위독해서….
그럼 이만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청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
내가 불렀지만,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뚝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청년을 잡으려고 했지만
마음뿐이었다.
‘집이 시골이어 갈 데가 없다고 했는데.
이 늦은 밤에 어디로 가지?’
나는 걱정이 되어 바깥으로 나가 보려고
아버지 얼굴을 훔쳐보았다.
아버지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턱짓을 했다.
그 청년을 불러오라는 신호였다.
나는 얼른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청년은 대문 밖으로 나가 빈터에 서서,
불빛이 찬란한 아랫동네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사나이는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또르르 또또르르…….”
성미 급한 귀뚜라미가 울어댔다.
가을을 부르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청년은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고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뭘까?’
나는 호기심이 불쑥 일었다.
청년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을 입에 갖다 댔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는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날 폭풍우에 휘말려 멀리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
청년은 하모니카로 <바위섬> 불었다.
썩 잘 부는 것 같았다.
<바위섬> 멜로디는 처음부터 다시
하모니카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하모니카 멜로디에 젖어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청년은 흘끗 나를 바라보고는
눈으로 씽끗 웃고는 끝까지 하모니카를 불었다.
나도 끝까지 <바위섬>을 불렀다.
“짜식, 노래 잘 부르는데.”
청년은 내 머리를 콩, 군밤을 주었다.
“형, 우리 집에 가요.
아버지 말씀에 기분 나빠하지 말구.”
“기분 나쁘긴. 내가 잘못한 건데.
아까 보니, 어머니가 안 보이던데. 어디 가셨니?”
“으음……. 하늘나라에 가셨어요.”
“뭐, 하늘나라?”
놀란 부엉이 눈을 한 청년이 되물었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미안하구나. 괜한 걸 물어서….”
“처음엔 누가 형처럼 물으면 무척 슬펐어요.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짜식, 제법 어른스럽구나. 난, 아버지가 안 계셔.”
“돌아가셨어요?”
“아니, 고기 잡으러 가셨어.
고기를 많이 잡으면 오신다고 했는데,
아직도 고기를 많이 잡지 못하신 모양이야.
내가 열 살 때 고기 잡으러 가셨거든.
그 뒤에 엄마는 돈을 많이 벌어 온다며 집을 나가시고.”
청년은 하모니카를 입에 대고 <바위섬>을 또 불었다.
그러나 나는 따라 부르지 않았다.
청년에게 거짓말시킨 것이 미안하기도 했고,
그 동안 잠 재워 놓았던 엄마 생각이 떠올라서….
청년은 하모니카를 다 불고 나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게 괜한 것을 물어서 마음이 상했나’ 하는 표정이었다.
“형, 미안해요.”
“뭐가? 오히려 내가 네게 미안하지.”
뒤쪽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청년과 나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뚝 그쳤다.
“형, 저어……. 울 엄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게 아니에요.”
“그럼?”
“아버지가 돈을 못 벌어서요,
돈 벌러 나가셨어요.”
“그게 그렇게도 마음에 걸렸었니?
네 마음에 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걸로 되어 있으면
그런 거지 뭐.
넌, 그래도 아버지라도 계시니
나보다는 낫구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꼭 살려야 하는데.
그 동생은 나를, 아버지처럼 또 엄마처럼 믿고 산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