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 시어머니 앞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눈물까지 흘리며 남편이랑 싸운 날, 나는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날 저녁, 어머님은 아무 말없이 부엌에서 파스타 면을 삶기 시작하셨다. 아도보 (중남미에서 주로 쓰는 치킨 스톡)에 재워둔 닭고기와 올리브, 버섯이 잔뜩 들어간 어머님표 토마토 스파게티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웠다. 점심도 굶고 싸우느라 안 그래도 배가 고프던 참이었다. 어머님의 정성이 담긴 파스타 한 접시를 들고 방문을 두드리는 남편을 모른 체할 수 없어 못 이기는 척 방에서 나와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면도 조금 불었고 소스도 처음 먹어보는 생소한 맛이다. 퉁퉁 부은 눈으로 허겁지겁 먹는 파스타는 너무 따뜻하고 맛있어서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모처럼 아들 내외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오셨는데 철없이 다투는 바람에 냉랭해진 분위기 속에서 얼마나 속상하고 불편하셨을지 생각하니 죄송해서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속을 박박 긁는 며느리가 얼마나 야속하셨을까.
푸에르토리코 치킨 파스타 레시피
링크 - https://www.kitchengidget.com/2016/04/14/puerto-rican-chicken-pasta/
닭고기와 면도 모자라 소스를 바닥까지 싹싹 다 긁어먹을 때까지 시어머시는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우리 부부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셨다. 조용하고 편안한 어머님의 침묵이 마치 괜찮다고, 그런 날도 있는 거라고 나지막이 다독여주시는 것 같아 면목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우물쭈물 눈치를 살피는 나와 남편의 접시에 어머님은 말없이 스파게티와 닭다리를 떠주셨다.
그 이후로 어머님표 스파게티의 찐팬이 되었다. 하도 잘 먹으니까 이제 어머님은 집에서 제일 큰 냄비에 한 가득 스파게티를 만드신다. 그래도 사흘도 못가 다 먹어버리고 만다. 이상하게 어머님의 스파게티는 두 접시, 세 접시를 먹어도 더 먹고 싶다. 어머님이 해주는 스파게티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나를 보며 어머님이 깔깔 웃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