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이를 갖기 위해 시도해 보자고 한 시점이 다가왔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부부는 그동안 피임을 해오고 있었다는 거다.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 그런 건 아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도 각자 우리는 아이가 있는 가정을 꿈꿨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없다. 다만 여러 요소가 발목을 잡아서 차일피일 미루게 된 것이다. 아이를 갖는데 가장 크게 망설이게 한 이유는 커리어였다. 남편은 상담심리사 1급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수련 중이고 나는 대학원에서 박사 수업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지금,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게 된다면 그 속도가 현저히 느려질 거라 판단했다.
또 신혼의 안정과 즐거움을 깨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유다. 남편은 아이가 생기면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지고 부부간 깊은 사랑과 유대감으로 하나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에 육아하는 선배들로부터 '신혼 때 싸우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꽤 크게 싸웠다, 체력도 여유도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주 다투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불안한 마음이 컸다. 나의 바닥을 남편에게 드러내는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도 아이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도 있다.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누구를 닮을까. 아이를 키우면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다던데, 그 느낌은 어떤 걸까. 유아차를 끌고 지나가는 부부를 볼 때마다 자연히 우리의 시선은 그들을 따라갔고, 이어지는 대화도 아이가 있는 우리 부부의 미래 일상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를 갖고 싶지만 만나고 싶은 시점을 미루고 싶어 하는 복잡하게 엉킨 감정인 나에게, 동료 교사이자 친구가 한 말은 나를 결단하게 만들었다.
"나 강남 차병원에 다녀왔어."
"지난번 수술 관련해서 정기적으로 검진받는 거, 그거 때문에?"
"그것도 그렇고. 결혼하자마자 바로 임신 시도하고 싶어서, 여쭤보러 다녀왔어."
"앗 그렇구나.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아무래도 자연임신이 어려우니 난임치료를 바로 받는 게 어떠냐고, 하시더라."
"아..."
"몰라. 어제 집 와서(양 검지 손가락으로 눈물 흐르는 모션). 휴, 자연 임신 되었으면 하는데, 바로 난임치료 얘기부터 하시니까 심란하더라고. 괜히 내 잘못 같고.."
"괜찮아. 아이를 빨리 갖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확률적으로 얘기하신 거겠지. 일단 시도해 봐도 되는 거 아니야?"
"응, 자연임신으로 먼저 시도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난임센터 가려고."
대화를 마치고 혼자 교실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데, 입 안이 썼다. 나는 건강하니까, 남편도 건강하니까, 젊으니까. 당연히 임신되겠지. 생각하고 여유를 부리며 오만했던 내 모습이 몹시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 친구 앞에서 묘한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간절한 사람도 있는데, 지금 가질까 나중에 가질까 당연히 생길 거라고 가정하는 내 모습이 별로였다. 아이를 갖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이런 미적지근한 온도라니. 미지근한 물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내 모습이 미지근한 물 같아 결심했다. 물을 조금 더 덥혀서 뜨겁게 하기로.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이 대화를 공유하고, 차일피일 미루지 않고 다음 가임기부터 바로 시도하자고 얘기했다. 남편의 얼굴이 햇살처럼 밝아졌다. 그래, 임신을 시도한다고 바로 되는 것도 아닌데. 넉넉잡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시간이 있을 테니 그동안 몸도 마음도 준비하면 되겠지. 아차, 말을 꺼내고 달력을 보니 다음주가 바로 가임기다. 남편도 이 사실을 안다. 설마, 바로 생기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