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거나, 뜨겁거나. 미지근한 물 만은 피하자. 뜨거운 물이 될 거야, 결심하고 결단한 그다음 주. 운명처럼 가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다시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만약 진짜 한 번에 되면 어떡하지.'
'에이 설마, 한 번에 되진 않겠지.'
남편은 생리가 끝난 시점을 기준으로 대략적으로 가임기를 계산하지만 나는 내 몸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정보의 차이랄까. 내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가임기인지, 언제 배란일인지 나름 정확히 알고 있다. 매 달 생리 시작일과 마치는 날을 기록한 덕분이다. 내 생리 시작일은 항상 정확하게 맞거나 혹은 하루 차이로 생리가 시작되곤 했다. 따라서 그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았을 때 예상되는 배란일을 나는 확신했다. 정자는 2-3일 정도 생존하고, 난자는 배란된 후 24시간 동안만 생존하니, 그 시기를 잘 맞추면 이론적으로 임신이 되는 것이다.
갈팡질팡하던 나는 다시 미지근해지고 말았다. 예상 배란일을 피해서, 하루 지난 시점에 남편과 관계를 가졌다. 과연 24시간이 지난 시점에도 나의 난자가 살아있었을까. 아마 사라졌겠지. 남편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만약 이번에 임신이 되면 한 번에 성공하는 건데, 될까?"
"너무 기대하지 마."
"응, 알아~ 그래도 궁금하잖아."
남편은 내 생리 시작일이 다가왔을 때 즈음부터 아침 인사에 한 문장을 더 추가하기 시작했다. "생리 시작했어?"라고. 문장으로 쓰고 보니 압박을 주는 것 같지만, 딱히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이런 남편의 모습이 마냥 귀여웠다. 정말로 아이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구나, 한 번에 안 생긴다고 기대하지 말라고 얘기는 하면서도 희망을 잡고 있구나 싶었다. 그런 모습에 나만 알고 있는 작은 비밀에 아주 살짝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히히 웃으면서 여유롭게 남편의 문안인사를 맞받아치던 내가 더 이상 장난을 칠 수 없게 되는 일이 생겼다. 생리 예정일이 되었는데도 생리가 시작하지 않았다. 매번 예상일에 딱 맞게 혹은 하루 차이로 규칙적으로 생리를 하는 나로서는 매우 몹시 당황스러웠다.
“생리 시작했어?”
“아니, 아직..”
"엇... 혹시..????"
"나한테 스트레스 줘서 그런 거 아냐?"
"헉, 그동안 스트레스받았어? 이제 물어보지 말까?"
"아니 별로 스트레스 아니었는데, 지금은 뭔가 좀 그래."
생리 예정일이 4일이 지난날, 남편은 기대 80 걱정 20의 느낌으로 나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머릿속이 시끄럽고 복잡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낮은 확률일 텐데, 배란일 지나고 관계를 가졌는데, 난자가 그때까지 살아있었단 말이야? 더 이상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고 있는 이 상황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시끄러운 머릿속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 모르게 편의점에 가서 혼자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아침 첫 소변은 아니지만 두 번째 소변이니 비슷할 거라고 보고, 설명서를 꼼꼼히 읽었다. 소변을 5초 정도 묻히고 편편한 곳에 두고 5분간 관찰하고, 만약 두 줄이 되면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는 거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변기에 앉았다. 임신테스트기에 소변을 묻혔다. 시험지가 적셔지는 동안 휴지 걸이대 위에 편편하게 두고 옷을 다듬고 있던 중에 봐버렸다. 희미한 두 줄을. 순간 깜짝 놀라서 다시 임신테스트기를 손에 들었다. 아니 5분은 기다려야 한다더니 묻히자마자 바로 이렇게 두 줄이 나온다고?? 이거 불량 아니야?? 쓰레기통에 던졌던 임신테스트기 상자를 꺼내 제조일자를 확인해 보았다. 최근에 제조된 거다. 핸드폰을 켜고 인터넷에 임신테스트기 오류를 검색해 봤다. 임신테스트기는 단호박이라고 한다. 임신이 아닐 경우 단호하게 한 줄이라고. 그렇다는 건, 내가 임신테스트기의 오류를 의심하는 동안 점점 또렷해진 이 두 줄의 의미는 명확하다. 내 뱃속에 지금 수정란이 빠르게 분열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미 올챙이 모양의 배아가 되어 있을 수도. 호흡이 급해졌다. 심장이 빠르게 쿵쾅쿵쾅 뛰는 게 느껴졌고, 무언가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임신테스트기를 청바지 주머니에 쑤셔놓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어떤 감정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멍했다. 진짜, 임신이 된 건가. 그리고 이어진 생각, 남편에게 어떻게 알려줄까. 내 머릿속에 남편이 떠오르자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 어서 알려야겠다. 임신테스트기를 보면 남편이 얼마나 좋아할지 눈에 뻔히 보였다. 입이 근질근질했다. 기쁜 소식은 감출 수 없다더니. 점점 현실로 자각하게 되니 마주치는 사람마다 내 임신테스트기 결과를 알려주고 싶어 입술이 달싹달싹거렸다.
나, 망설이긴 했어도 아이가 생기길 바랐나 보다. 경험을 해야 비로소 아는 것도 있다더니. 내 마음을 이리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