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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Oct 17. 2024

남편에게 복음(good news)을 전하다

복음은 영어로 good news다. 기쁜 소식이라는 뜻이다. 이 임신했다는 기쁜 소식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반나절 동안 고민하며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검색해 보니 '임밍아웃'이라는 키워드로 각종 이벤트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현관문에 가랜드와 임테기를 붙이기도 하고, 아기 풍선과 임테기를 붙이기도 하고, 왼손으로 삐뚤빼뚤하게 글씨를 써서 아기를 화자로 두어 어서 건강하게 만나자는 내용까지. 이 풍경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약간의 기시감이 느껴졌다. 생각해 보니 결혼을 준비할 때 각종 프러포즈 인증샷에서 봤던 엇비슷하면서도 유행이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생각이 들어오자마자 검색을 관뒀다. 다른 사람이랑 똑같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 임테기를 불쑥 건네는 건 재미없고, 현관에 임테기만 붙여두면 둔한 내 남편은 눈치채지 못할 거고. 고민하다가 임테기를 어딘가에 숨기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걸 발견하게 하는 게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게 가장 경계심을 낮출 수 있을까. 퍼뜩 머릿속에 전구가 밝혀졌다.


'이거다.'


편의점으로 바로 튀어갔다. 내 임밍아웃 플랜은 곽으로 된 과자에 임테기를 같이 숨겨두고 과자 꺼내달라고 무심히 건네는 거다. 깜짝 놀랄 남편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킥킥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임테기를 두고 나오는 바람에 과자곽의 크기와 임테기의 크기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가장 경계심을 낮출 수 있는 과자는 우리가 주로 사 먹었던 아몬드 빼빼로인데, 왠지 임테기가 안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조리 갈등하다가 가장 안전한 선택으로 예감을 골랐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 보니 둘 다 사 와도 되었을 텐데,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생각에 꽂혀있었나 보다.


예감 상자 바닥을 살살 뜯어내어 안에 임테기를 훅 집어넣었다. 상자 부분을 풀로 접착하여 붙였는데 자꾸 떼어져서 당황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테이프로 붙였는데 자세히 보면 티가 났다.


'설마 이 부분을 발견하진 않겠지. 아 뭔가 예감은 평상시에 별로 안 사 먹어서 의심할 것 같은데.'


남편이 소파에 앉기 전에 중문 창문 위에 핸드폰을 거치해 두고 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급하게 누르느라 영상 화각이 제대로 잡혀 있는지 확인도 못했다. 손을 씻고 소파에 앉던 남편은 내 핸드폰 거치대를 발견했다.


"뭐야? 핸드폰을 저기에 뒀어?"

"응?(뜨끔) 응. 안 쓸 때 앞으로 저기에 두려고."

"내 거는? 나는 어디에 둬?"

라고 말하며 자꾸 핸드폰에 관심을 두고 쳐다보니 혹시나 유리에 촬영 중인 화면이 비칠까 봐 심장이 조마조마했다. 빨리 주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여기 소파에 둬. 나 아까 과자 사 왔어."

"웬 과자? 요즘 피부 때문에 과자 안 먹잖아."

"(뜨끔) 그냥 갑자기 먹고 싶어서 사 왔어. 뜯어줘."


남편에게 예감을 건네며 심장이 정말 두근두근했다. 과연 발견할까? 어떻게 반응할까? 남편은 별 의심 없이 예감 위쪽을 뜯었고, 과자 하나를 꺼냈다. 엇,, 아직 발견 못한 것 같다. 하나 뜯어서 같이 나눠먹으려나보다. 예감 과자 곽을 한쪽에 두려던 남편을 저지하기 위해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거 나 줘. 하나씩 먹자."


남편은 순순히 나에게 과자를 건네고, 과자 곽을 들어 다시 안 쪽을 살폈다. 그러더니

"어??? 우와!"

하고 반응했다. '우와'라는 반응은 뭔가 이상했지만 이제 발견했구나 싶어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고 남편의 표정과 반응을 계속 살폈다.


"어? 아니, 잠깐만. 뭐야??? 뭐야??????? 잠깐만."

남편이 임테기를 들고 찬찬히 보더니 리클라이너 올림 버튼을 누르며 제대로 앉았다. 그러더니 나를 보면서 "진짜야?"를 연신 반복하며 물었다. 앉아있을 수가 없었는지 벌떡 일어나서 "아니 이게 정말 말이 돼? 진짜???? 진짜 임신한 거야?? 한 번에???" 앉아 있는 나에게 연신 묻더니 와락 나를 껴안았다. 남편의 벅차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벅찬 감정이 포옹을 통해서 오롯이 전달되었다. 나도 한동안 멍했는데, 남편도 똑같은 마음이겠지.


남편과 한참 상기된 얼굴로 언제 임테기를 샀는지, 확인은 어떻게 했는지, 그때 마음은 어땠는지, 이런 이벤트 할 생각은 어떻게 한 건지 이야기를 왕창 쏟아냈다. 문득 ‘우와’라고 반응한 게 의아해서 이유를 물어봤다.


“아, 나는 예감이 리뉴얼되어서 집어먹을 수 있는 집게 같은 걸 넣어준 줄 알았어. 그래서 감탄했지.“


라는 거다. 그래서 우와라고 반응했구나. 웃겼다.

한참을 얘기하며 상기된 마음이 가라앉고 나니 잊고 있었던 촬영중인 카메라가 생각났다. 확인해보니 남편이 흥분해서 일어나는 바람에 담아내고 싶었던, 표정은 하나도 담기지 않고 허우적대는 몸만 담겨 있었다. 어설프다 어설퍼. 광각으로 찍을걸. 허술하게 찍힌 탓에 그 당시의 생생한 목소리에 더 집중하게 되고, 표정을 상상하게 되더라.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역시,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은 진리다. 기쁨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위의 글은 묵은지마냥 고이고이 저장되어 있던 글이다. 출산을 100일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 읽어 보니 그 순간이 다시 생생하게 그려진다. 공들여 즐겁게 써놓고선 그때 왜 발행을 안했을까? 아마도 더 완벽하게 고치고자 하는 나의 지연 행동이 범인이겠지. 임신 기간 동안 꾸준히 브런치에 기록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날까지 앞으로 100일.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기보다 다시 새롭게 써나가보자.


babybilly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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