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예정일까지 99일. 두 자리 숫자로 떨어졌다. 디데이 100일과 디데이 99일이 주는 느낌은 완전 다르다. 어젯밤 싱숭생숭한 마음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옆에서 남편이 물었다. "어떤 점이 싱숭생숭하게 만들어?" 그 질문에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으나 쉽게 대답하기 어려웠다. 뭐 하나 탁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느낌이랄까. 내가 말이 없자 남편이 자신이 추측한 여러 예상 답변을 내놓았다. "엄마로서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돼?" '그것도 그렇고..' "아니면 출산이 다가와서 무서운 거야?" '그 고통도 나 혼자 견뎌야 한다는 게 두렵긴 해..' 마음속으로 대답할 뿐 목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싱숭생숭하게 만들까. 정확히 나도 모르겠는걸.
남편이 나의 울적한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산전휴가를 앞당겨 쓴다면 어떤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 질문에는 쉽게 대답이 나왔다. "도서관이나 카페 가서 책 읽고 필사하고, 글도 쓰고 싶어." 대답을 하면서 깨달았다. 싱숭생숭한 이유를.
첫 번째는 출산으로 인해 상실하게 될 나만의 시간, 자유로움에 있었다. 24시간 전적으로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의미는, 지금까지는 마음껏 사용했던 내 시간에 제한이 생긴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나는 미리 앞서 계획하고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 편안한 사람이다. 육아란 절대 내 계획대로 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 세계가 두렵고 버겁다. 내가 세운 계획에 오차가 생기면 견딜 수 없어하는 내가 과연, 욕구뿐인 작은 존재 앞에서 마음을 잘 지킬 수 있을까? 자신 없다.
두 번째는 '언젠가 하겠지, 다음에 하면 되지'라며 미뤄온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다. 초조함이다. 내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처럼 살아온 지난날이 후회가 되는 거다. 출산 이후 작은 생명체가 내 품에 안긴다면, 내 몸이 예전처럼 가볍지 않고 활동이 불편해진다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꽉 찬다면? 그동안 내가 '다음에 하지 뭐.' 라며 대수롭지 않게 미뤄온 '하고 싶은' 일이 너무도 간절해질 수 있다는 거다. 기약 없이 미뤄질 수 있다는 점, 어쩌면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다. 지금까지처럼 편안하게 미디어를 시청하며, 다른 사람들의 삶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하루하루 시간을 흘려보낼지. 아니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4주의 시간 동안 나에 집중하며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이루어나갈지.
요즘 나의 관심사는 '언제 산전휴가를 들어갈 것인가'이기 때문에, 육아를 하고 있는 선배들을 만나면 꼭 물어본다. "산전 휴가는 언제부터 사용하셨어요?", "산전 휴가 동안 무엇을 하셨어요?" 각자 살아낸 시대와 처한 형편이 다르기에 답변은 제각각이지만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난 이러이러한 걸 못했는데, 그게 지나고 보니 너무 아쉽더라. 넌 꼭 해 봐.', '이러이러한 것이 하고 싶었는데, 해 볼 걸.' 결국, 사람은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강렬하게 남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내가 선택해야 하는 길은 분명하지 않을까? 힘들더라도 치열하게 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질문하고, 이를 하나하나 실천하는 길. 적극적으로 후회를 최소화하는 길,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었던 일은, 읽고 쓰는 일상 그리고 성실한 기록. 고민 없이 툭 튀어나올 정도였으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 혼자만 읽는 글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글을 "꾸준히" 쓰는 것.
그런 의미에서 출산 전까지 매일 글쓰기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규칙은 간단하다. 글을 쓸 수 있는 30분의 시간이 생길 경우, 미루지 않고 즉시 브런치에 접속하기. 한숨에 집중하여 쓰기. 30분이 지나면 미련 없이 글을 마치기. 저장하기. 일어나 다른 일 하기. 30분의 시간이 생길 때 딱 한 번만 퇴고하기. 그리고 바로 발행하기.
이런 규칙을 세운 이유가 있다. 매일 일기를 쓰는 나로서는 꾸준하게 쓰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발행'이다. 지금도 내 서랍 속에 저장되어 있는 글이 잔뜩이다. 왜 쌓여있느냐, 내가 쓴 글이 이상한 것 같아서, 좀만 더 고치고 발행해야지 하면서 미뤘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이라도 발행하면 되지 않는가 묻는다면? 그럴 수 없다. 그 시기, 그 순간에 경험한 나의 감정이고 생각이기에. 지금의 내 상황과 다르고, 현시점의 내가 읽기에는 어색하고 부끄러워 차마 발행을 누를 수 없다. '그때 발행할걸.' 아깝다.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사람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강하게 남는다는 사실.
좋아, 결심했다. 완벽하게 정돈된 글을 위해 여러 번 고쳐 쓰며 자신감을 잃고, 시간이 오래 걸려 부담감에 완주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어색하고 거친 상태의 글이라도 '해냈다'의 경험을 우선하겠다. 진짜 진짜 딱 한 번만 퇴고하고 눈 딱 감고 발행하기. 후회를 최적화하는 거다. 나중에 ‘글을 쓸 걸 그랬다’ 후회하는 것보다 ‘이런 글을 올렸다니!’라며 후회하는 게 나으니까.
내가 지치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유쾌하게.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