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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d Revolution Apr 11. 2020

혼자, 다시 서울에서

혼자 걸어가는 삶 ...싱글 라이더(1)

4자리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고 들어온 아파트, 현관 전등을 켜면서 잠깐 착각에 빠졌다. 마치 바로 직전까지 식구들이 드나들었던 것처럼 신발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항상 밤늦게 퇴근할 때 보는 모습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나 왔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하긴 그런 말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가족들은 8160 킬로미터나 떨어져 태평양 건너 밴쿠버에 잠들어 있다. 나는 여기 서울에 있고... 가족들을 밴쿠버로 임시 이주시키고 돌아온 집, 다른 때와 별 차이도 없는 현관 모습에서 가족들의 부재(不在)감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1월 중순, 한동안 사람의 온기를 담지 못했던 집안은 몹시 추웠다. 보일러를 켰다. 스위치를 ‘온(ON)’으로 돌리자, 보름 동안 멈춰 있던 온수 파이프 여기저기서 끽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파이프도 기지개를 켜야겠지…. 하지만 아이들도 아내도 없이 혼자 덩그러니 있는 아파트에서 괴물처럼 울어대는 기계의 소리가 듣기 싫었다. 평소라면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 주방에서 뭔가 뚝딱거리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을 그 소음이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보일러를 다시 꺼버렸다.

거실에는 싸다만 짐들이 그대로 있었다. 아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져갈 물건, 나중에 부칠 물건을 분류하고 최대한 많은 짐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싶어 했다. 짐을 싸면서 저울을 옆에 가져다 놓고 1인당 최대 2개, 개당 23킬로그램 이하인 수하물 기준을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민가방 8개를 일일이 들어서 무게를 재고 어떤 것은 물건을 더 넣고, 어떤 것은 넣어뒀던 물건을 빼기를 반복했다.

이제 그 거실을 정리해야 한다. 우리 침실과 아이들 침실 문을 열어보니 공항으로 떠나던 날 아침 모습 그대로였다. 식구들이 일어나 각자 학교로, 회사로 떠난 뒤 모습이나 차이가 없었다. 침대 위 전기담요도 그대로 깔려 있었다. 지금 내게 온기를 주는 유일한 존재. 씻을 생각도 없이, 시차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전기담요 위에 놓인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출근하려면 지금 눈을 붙여둬야 했다. 외투와 셔츠, 바지를 벗고,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 들어가 전기담요 스위치를 켜자 온몸이 따듯해졌다. 밴쿠버의 아이들은 학교에 갔을 시간인가? 아닌가? 돌아올 시간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모바일 메신저 카카톡으로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만 아내에게 보내고 잠에 빠져 들었다.
P.S. 다음 날 아침에 깨어보니, 답장이 없었다. 무심한 아내여!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시기 아내도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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