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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d Revolution Apr 13. 2020

홀로 걸어가는 삶

주말 어느 날 오후의 상상...싱글라이더(2)

하필 왜 이 영화를 봤을까. 아내와 아이들을 밴쿠버에 남겨 놓고 온 지 두어달 쯤 지난 어느 주말 오후였다. 숙취로 몸을 약간 무겁게 느끼면서 해장용 라면을 앞에 놓고 넷플릭스를 연결했다.
평소 같으면 보지도 않았을(이래 봬도 미드 마니아임) 국내 영화를 본 것은 순전히 ‘싱글라이더’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이게 나와 같은 처지의 기러기(!)를 다룬 영화라는 것도 알지 못했으니까. 그렇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헛헛한 마음에, 혹시나 이 영화가 앞으로의 내 일상에 대한 은유라도 되는 것처럼 잠시 생각했다. 이병헌 공효진이 부부로 나오는 영화는 말 그대로 쓸쓸했다. 가족들 모두를 해외로 보내 놓고 혼자 남아 있는 내 감성의 어느 부분을 분명 건드렸다. 영화가 끝나고 한 동안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봤던 것 같다. 주말 오후에 한 방 제대로 맞은 셈이었다.

증권회사의 지점장 강재훈(이병헌)은 안정된 직장과 반듯한 가족을 갖춘 나름 성공한 인생이다. 그의 아내(공효진)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호주에서 살고 있다. 실제 월세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아내와 아이를 바닷가 단독주택에서 살게 할 수 있을 정도면 결코 여유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영화 속에서 그는 어느 날 자신이 주도해서 발행한 채권이 문제가 되면서 모든 것을 잃고 직장에서도 쫓겨난다. 집에 돌아와서 고뇌에 빠져 있던 그는 결심한 듯 혼자 가족이 있는 호주로 떠난다. 아내와 아이를 만나려는가 생각했지만, 그는 가족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기만 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알리지도 않고 현지 정착을 준비하고 있었다. 관객들이 답답해질 때쯤, 예고 없이 찾아간 집에서 그는 아내가 혼자 딸 키우는 현지인 옆집 남자와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만다. 그리고 영화는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와 있는 젊은 여성 지나(소희)에 얽힌 비극적인 이야기와 얽히고, 그동안 숨겨져 있던 영화 속 단서들의 의미가 하나 둘 풀리면서 파국을 맞는다.

내 삶은 이것과 얼마나 다를 것인가. 모든 비극은 또 한 꺼풀 들춰보면 얼마나 어이없는지... 오만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칫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서 영화 줄거리를 자세하게 들려줄 수는 없지만, 무척 쓸쓸했다. 우리는 결국 혼자 살아가는 삶(싱글 라이더)이라는 깨달음을 이렇게 얻었어야 하나, 영화를 괜히 봤나... 영화가 남긴 얼얼함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아이들을 밴쿠버에 남겨두고 돌아오던 날, 공항에 내려서 어떻게 짐을 찾아서 공항버스를 타고 돌아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불과 몇 주 전인데, 아마도 더 강한 기억이 덮어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기억나는 것은 앞으로 혼자 살게 될 아파트의 문을 열고 들어서던 순간 찾아든 외로움의 냄새였다. 집은 이 주일 동안 혼자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던 거실과 쿵쿵 발을 구르던 침대와 소파,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사람이 없다는 것이 집의 분위기를 이렇게 바꿔 버린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하필 이 영화를 봤으니... 그래도 나는 견딜 것이다.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피하지도 않겠다. 어차피 내가 선택한 고통이고 외로움이다. 어차피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매일 편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는 육체적 편안뿐만 아니라 정신적 편안함 역시 마찬가지다. 견디는 것,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그 균형을 찾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그러고 나면, 언제나 그랬듯 피하고 싶은 고통이 나를 성장시킬 것이다. 니체도 그렇지 않았던가, 내 적은 나를 패배시키지 못하면 나를 성장시킬 뿐이라고... 고통이야말로 나를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바탕이 되는 법이다. 어느 수필집에선가 읽었지만, “행복 만이 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주(主)재료는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만, 현대는 불행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테니, 힘들다고 주변에 호소하지는 말자. 묵묵히 견디다 보면 아이들도 돌아오겠지.

P.S) 순전히 릴랙스 하기 위해서였는데 하필 '싱글라이더'라는 영화를 보면서, 기러기라는 소재적 유사성 때문에 그 영화의 비극적(?) 결말과 나를 동일시하다 보니, 이런 객쩍은 상상에 빠지고 말았음을 밝힙니다. 아, 그리고 이 영화 이후 이병헌 연기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私적인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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