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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d Revolution May 02. 2020

우아할 뻔 했던, 싱글 라이프...

혼자 잠자리에 드는 것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1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녁 약속이 없어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밤 11시에 잠자리에 누워 새벽 2~3시까지 잠을 못 이루는 날이 여전히 많았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어떤 날이면, 화장실 변기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기도 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제대로 잠들기는 애당초 걸러먹은 법이다.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펴 들거나 밀린 신문을 읽는다. 잠을 청하기 위해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은 금물, 다음 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세상을 맞이할 각오를 해야 한다. 경계심을 잃고서 유튜브를 열었다가는 날밤을 샐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혼자 사는 남자의 불면을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사람 많은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 편할 때도 있다. 어떤 날은 퇴근길에 집으로 가지 않고 카페에 들러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밤늦게까지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돌아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로움이 씻겨지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속에는 그만큼의 고독이 쌓여가게 마련이다. 이 고독이 쌓이고 쌓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아가고 있는 중년 남자의 고독은 그리 아름답지도 낭만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혼자 맞는 휴일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노 요코는 ‘돈만 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다니 도시는 굉장하다’라고 썼다. 그녀는 사후에 출간된 에세이집 ‘사는 게 뭐라고’ 통해 혼자 살아가는 일상에 대해 매우 꼼꼼한 기록을 남겼다. 무척 재미있고, 나같은 사람에게는 유익하기까지 했다. 장성한 아들 하나를 둔 채 남편과는 이혼하고 친구처럼 지냈던 이 작가는, 노년에 암에 걸려서도 참 씩씩하게 혼자 살아갔다. 그녀의 책을 읽다가 보면, 암에 걸렸든 어떻든 간에 우리 삶의 디폴트 값은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건 우울하거나 서글픈 일이 아니라 꽤나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나는 그 경지까지 오르지 못했지만...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서 나 역시 그녀처럼 많은 시간을 레스토랑에서 혼자 식사를 하며 밥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이 도시에선 혼자라는 사실을 자꾸 숨기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혼자'라는 사실을 과장하는 이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 같은 곳은 일종의 전시장이었다. 고독 역시 잘 팔리는 문화 상품이었고, 도시 사람들은 맹렬하게 이를 소비했다. 카페 문화니 1인 경제니 이런 것들이 최근 번성한 배경에는 좀더 거대한 전략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스타벅스는 처음엔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다. 혼자 앉아 하루 종일 책을 읽은 경우도 있었다. 공휴일 카페에 가면 아침부터 나와서 앉아 책을 읽고 미진한 업무를 처리하거나 아이패드를 펴 들고 웹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 역시 처음에 그런 시간을 즐겼고, 꽤나 만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혼자가 아닌데도 혼자라는 느낌이 필요해 숨어드는 불순분자들이 자꾸 눈에 보였다. 군중들이 가득한 그 공간은 가끔씩 위안을 주거나 고독감을 잊게 해 줬을 뿐, 정말로 혼자인 나에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위장된 소속감이 오히려 불편할 뿐이었다. 세기말 파리의 시인이었던 보들레르가 고독감을 호소하는 군중들을 보며 이런 허위의식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대형마트에 가는 일도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집 앞의 롯데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구입하고 혼자 된장도 끓여서 먹고 유튜브에서 봤던 요리를 직접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한 번 올려보리라 마음까지 먹었지만, 현실은 정 반대로 흘렀다.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선 양의 문제, 혼자 만든 요리를 일주일씩 먹는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 요리를 할수록 가족의 부재(不在)를 매번 너무나 심하게 느꼈다. 혼자 만들어 혼자 먹는 요리가 맛있을 리가 없다. TV에서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라는데, 그건 외로운 사람들이 보면서 위안을 삼으라고 만든 것이고,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는 것은 의외로 외로운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연예인들이나 그렇게 씩씩하게 혼자 살지, 대부분은 그런 삶을 동경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서 고급 식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가며 생활비를 낭비할 형편도 아니었다. 사실, 밴쿠버로 다달이 보내는 생활비는 결코 적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통장 잔고를 보고 깨달았지만, 내게 들어가는 경비는 모두 극도로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혼자 살아가는 삶은 그러니까, 결코 우아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았다. 혼자라는 사실이 상기될 때마다, 그 우울감을 잊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주말에도 끊임없이 일정을 잡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주저앉히려는 ‘그놈’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결국 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무모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일이었다. 주말에만 개설되는 대학원 과정에 등록한 것이었다. 덕분에 가족과 떨어져 있던 2년 가까운 기간을 매우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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