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살에 세 번째, 유럽여행
유럽여행이라고 쓰고 보니 좀 웃긴다. 유럽의 전 지역을 도는 것도 아닌데 유럽여행이라고 쓰다니. 주로 대학생들이 졸업 전에 한 번쯤 장기 계획으로 해보기 좋은 배낭여행으로 자주 통용되는 말이고, 그런 여행도 유럽의 전 지역을 도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어떤 콘셉이든 간에 유럽 내 위치한 나라를 둘 이상 가게 되면 지역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보단 유럽여행이라고 하는 게 훨씬 간편하다는 데서 유럽여행이라 부르는 이유를 찾아본다. 누군가 한국과 중국을 여행하거나,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를 여행한다고 해서 아시아여행이라고 부를까는 모르겠지만.
세 번째로 향한 유럽 대륙에서 밟아본 나라는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이다. 그 나라를 속속들이 여행한 건 당연히 아니고, 로마에서 시작해서 뮌헨에서 종료했다. 코로나라는 제약이 없었다면 더 다양한 지역을 방문할 수 있었겠지만, 막상 여행을 마치고 보니 지금 내 현실에서는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더 많은 이동을 감당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꼭 돈 때문만은 아니고, 이제 내 몸이 그렇다고 한다.
비싼 돈 들이고 멀리 가는 기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장기로 낼 수 있는 시간에만 유럽여행을 떠났던 점을 생각하면, 긴 여행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단연 컨디션 관리였다. 매번 한 달 남짓의 시간을 썼고, 짐의 무게도 그만큼 대단했다. 40일로 일정을 짠 첫 여행 때는 번쩍번쩍 들어 올리는 것까진 아니어도 혼자서 낑낑대고 짐가방을 끌거나 오르락내리락 들고 내리는 게 가능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숙소라고 포기한 적 없었고, 이제는 무리라는 느낌이 올 즈음엔 귀국 시점이 다가왔다. 직장 안식월을 틈타 떠났던 두 번째 여행은 이동 자체를 많이 안 하고 한 지역에 오래 머물면서 일상생활을 했다. 첫 유럽여행을 떠났던 날엔 스물네 살이었고, 두 번째 유럽여행을 했던 때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리고 올해까지 내 몸은 서른네 살이다. 세 번째 유럽여행을 마친 지금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나버린 여행 후의 날들을 손목 앓이와 함께하고 있다. 여행 초기에 손목 통증이 시작됐을 때 좀 이르다 싶었다. 첫 여행 때 비슷한 증상이 왔다 알아서 사라진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도 가볍게 여겼던 통증은 그러나 점점 심해지더니 귀국 시점이 다가워질수록 칫솔질을 하기도 힘들 정도로 심해졌다. 하필 오른손이고, 무려 인대 부상이었다. 이렇게 오래도록 낳지 않을 줄은 몰랐는데, 돈도 많이 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근육 염증 정도로 생각했는데, 인대 부상으로 인해 근육 염증이 동반되는 경우였다. 열심히 붙인 파스만으로 낫지 않는 이유였다. 부상당한 인대 치료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의사는 인대 재생을 돕는 DNA 주사를 권했다. 회당 10만 원이었다. 비싼 주사라고 한 방에 완전히 재생되지는 않았다. 오자마자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결국 포기할 수 없어져서 서글펐다. 원래대로 그 아르바이트를 오늘 시작했다면 물론 난생 처음 타르트 만드는 경력을 시작하며 식은땀을 흘리다가 서글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언제 손목이 신경 쓰이지 않게 될런지 모르겠다. 이 작은 부위는 내가 몸을 마음대로 사용하기에 여기저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내 몸을 새롭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이다. 돌이켜 보면 어딘가 자꾸 고장 나고 알아서 회복되지 않는 일은 언제부턴가 일상적이었는데, 그럼에도 계속 아픈 손목이 '알아서 곧 낫겠지' 여겼다. 근거가 된 데이터는 10년 전 내 20대 몸이 한 경험이었고, 당연히 지금 내 몸에는 별 쓸모없는 정보였다. 앞으로도 과거의 내 몸이 한 경험은 이후로 내 몸이 하는 경험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게 상당히 확실하다. 새삼 자각하고 나니, 나에게 낯선 내 몸과 함께 할 날이 조금 두렵다. 주변에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의 몸 이야기야말로 앞으로 내 몸이 하는 경험에 상당히 많은 도움을 줄 것이 분명하다. 당장 새해 인사가, 그 언니들이 전부터 당부하던 건강에 대한 인사가 되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지. '늙는 게 싫다던 언니들의 말은 감상에 젖은 말이 아니라 몸에 관한 표현이구나' 이해한다. 달라지는 몸과 함께 잘 지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내 인생은 나에게 계속 당황스러울 것이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남겨보려고 시작한 글이 몸과 앞으로의 생에 대한 이야기로 늘어지는 현실은 이제 나에게 더이상 이상한 전개가 아니다. 좀 낯설긴 하지만. 몸과 함께 하는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고, 내 손목은 앞으로도 내가 하는 몸과 몸 이상의 기능들을 위한 충실한 동료일 것이다. 그래도 여행 이야기의 '본론'으로 돌아간다고 치면, 세 번째 나의 유럽여행은 그동안 동면하고 있던 이방인의 감각을 또 한 번 깨워서 사용할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서로 교차하거나 평행하는 복수의 사회들, 서로 다른 사람들을 눈앞에 놓고서 말이다.
외국 여행 중에 처음으로 운전을 했다. 덕분에 이탈리아 교통 시스템이나 운전 문화의 '다름'을 약간 체감했다. 시골길을 달려서 토스카나 지방의 사트루니아 자연 유황 온천에 몸도 담가봤다. 쭉 자연온천으로 남겨져 있는 곳. 며칠 동안 몸에서 풍기는 유황 냄새를 맡았다. '아 이게 바로 유황 냄새구나!' 피엔차, 몬테풀치아노 같은 소도시를 들러 들러 구경하면서 다양한 장면을 마주했다. 처음 경유한 볼로냐에서 가장 살찌는 시간을 보냈다. 피렌체와 밀라노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스위스의 시작이자 마지막이었던 도시 베른을 방문하고 (먹는 것을 제외한) 몇 가지 이유로 스위스가 좋아졌고, 궁금해졌다. 내 친구의 집이자 이젠 내 친구와 그 동거인의 집이기도 한 뮌헨에서는 세상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이 없었다면 내 남은 여행 기간이 어떠했을지 전혀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 한 줄 한 줄로 남은 여행의 기억과 느낌을 돌이켜 살을 붙이며 기록으로 남긴다면, 그건 아마 가장 기록하고 싶은 글쓰기가 될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은 여행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한 줄, 한 문단, 글 한편을 만들어 간다면 여행 중에 지나쳐버린 서른네 살 내 몸의 기억과 거기 새겨진 새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겠지. 그 시작을 지금 한 점이 아주 뿌듯하다. 서른네 살이 지나기 전날에 서른네 살의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혹시 우연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궁금한 점이 있는 분 중에 어떤 것이라도 남겨주시는 분들 모두에게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 성실하게 정보도 드리고, 생각도 공유하게 되면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