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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Apr 10. 2022

1호선으로 출근과 퇴근할 때 항상 확인할 것은

직전에 퇴사한 회사에 출근한 마지막 날을 떠올려보니 2019년 5월 31일이다. 공식적인 퇴사는 7월 이후였지만, 6월은 안식월로 사용했으니까. 그때는 그럴 줄 몰랐는데 2022년 4월 1일에 다시, 첫 출근을 했다. 친구와 가족에게 3년 만에 다시 출퇴근한다고 대충 말하곤 했는데, 세어 보니 정말로 딱 한 달 빠진 3년 만이라니.


조금 놀다 프로젝트로 하던 일을 계속 키워보려던 희망사항, 몇 가지 일들을 벌여서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하는 현실이 불화하는 시간을 살았다. 거기엔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래도 3년을 채워갈 때쯤에는 내가 잘하는 일로 돈벌이도 되는 외주가 간간이 연결되어 뒤늦게 주머니 사정이 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든 3년, 3년, 말하곤 하는 것처럼 나도 전 회사에서 3년은 그 조직에서 일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됐었다. 3년은 뭔가 일종의 '진실의 기간'인가 본지, 회사 밖에서의 시간에도 적용됐다. '진실의 3년.' 이 시간, 단지 돈을 버는 것과 성취감 사이의 상관관계는 내 경우에 높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럼에도 일 자체를 굴리며 자신을 유지시키는 기반을 만드는 것은 곧 스스로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쇠똥구리가 똥을 굴려 모아 그 속에 알을 낳고 새끼의 먹이 곳간을 만들듯이.


나는 이제 그간 지나간 시간의 기억을 소환할 때마다 그처럼 '설렁설렁'하던 때가 언제 다시 올까 생각하며 참으로 꿈같은 나날이었다고 두고두고 기억하겠지. 그러니 동시에 그 시간은 커리어가 제자리걸음 하는 것 같은 불안이 자주 엄습하던 시절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한 줄이나마 써 놔야겠다. 이 불안은 다시 회사에서 일할 맘을 먹고 마침내 기회도 왔을 때 '이제 달릴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들게 한 맥락이기도 하고, 내 몸에 쌓인 감각이기도 하다. 조직 밖으로 나선 첫 시도에 대한 감각. 다음에 꺼내 볼 수 있는 자산이라는 확신도 조금 드는.


마치 선물처럼 출근 전까지  달여 시간이 주어졌다. 입사일보다  일찍 채용 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1인으로 일하던 '나의 사장님' '사장님의  직원인 ' 각각 약간씩 속으로 다른 가능성도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을  시기는 물리적으로는 거의 외주를 마무리하는 시간으로 보냈고, 짬짬이 즐겼다.  선물이 없었다면 외주를 마감하랴  일자리에 적응하랴 과부하에 걸렸을  뻔하니, 격하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출근 전에 멀리 놀러 다녀올  없었지만, 작년 말에   대단히  여행을  놓았고, 남은 시간은 출근  하는 사람의 일상을  이어갈  있다는  기뻤다. <넷플릭스>에서 종료되고 디즈니 플러스에서 스트리밍 중인 <그레이 아나토미> 시즌을 모두 봤고, 평일 낮에 여전히 집과 동네에서 노닥거렸으며, 멀리 사는 언니네 집에 놀러 가서 언니네 식구와 함께 '캠핑파이어' 했다.   번째 캠핑 후에 ' 내가 캠핑을 그렇게 즐길만한 사람은 아니구나' 약간 알았다. (겨우  번째 후기이므로 바뀔  있음.) 엄마 아빠에게 밥도 얻어먹었고, 우리 동네로 오전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오는 친구에게 당분간 없을 ' 모닝 카페' 영업 종료도 미리 알렸다.  친구가 우리집에 도착하기 10 전에 주는 모닝콜 덕분에 나는 간혹 하루의 시작을 아침 일찍   있었더랬다. '출퇴근러'  미래의 나에게 호사스럽게 느껴질 그런 시간들로 '비출퇴근러' 생활을 마무리했다.


당분간 9시 출근을 시도하기로 했다. 7년을 출퇴근한 회사에서도 안 해본 시도였다. 지나간 3년과 달리 시간을 꽉 채워 활용하고파서 9시 혹은 10시 출근 옵션 중에 저녁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활용할 수 있는 9시 출근을 선택했다. 사무실이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위치에 있고, 지하철 방향을 반드시 확인 후 탑승해야 하는 1호선 지역이라는 조건은 많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나마 내가 사는 지역이 서울 도심이라는 점에서 조금 다행이었다. 사무실 위치가 오히려 외곽이었다. 많은 사람이 출근을 위해 향하는 지역이 도리어 내가 출발하는 지역이어서, 지하철 출퇴근 시간은 높은 확률로 탑승 이후 초반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일을 시작하는 게 싫어서 아직 잠을 청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부족한 잠을 보충할 수도 있겠다. 책을 펼치거나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하기에도 활용도가 높은 시간이다. 첫 출근은 전날에 긴장해서인지 별로 문제없이 성공했다. 샤워는 당연히 전날 잠자기 전에 마쳤고, 옷은 입고 잘까 하다가 준비만 해놓았다. 그런데, 퇴근길에도 긴장을 놓지 말았어야 했다.


새로운 일자리에서 업무 시간을 보내고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아직도 날이 밝았다. 왠지 뿌듯해서 기분 좋게 아까 나왔던 지하철역으로 들어가서 온 방향과 반대 방향 트랙으로 내려갔다. 지도 앱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알려준 승차구 7-4에 막 도착하자 때마침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라?' 내가 서 있는 승차구를 지나치더니 꽤 희한한 위치에서 열차가 멈추었다. 약간 의아해하면서도 빠르게 달려 승차구 다섯 칸 정도 거리를 이동해 열차 끄트머리 칸에 그대로 몸을 실었고, 문은 닫혔다. 타자마나 앉기까지 해서 의아함은 바로 잊고 기뻐하며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다섯 정거장 정도를 지나온 후에 귀에 영 낯선 역 이름이 꽂혔다.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열차에서 내렸을 땐 이미, 이른 출근을 선택한 보상이 상쇄되어 버린 후였다. 퇴근 후 30분 정도를 이미 썼고, 앞으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반이라고 지도 앱이 계산했다. 10시 출근을 하고 퇴근했을 때 집에 도착할법한 시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아…, 이상하다 싶을 때 그 방향으로 달리지 말고 더 세게 의심했다면 한 번 더 열차의 종착지를 확인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내가 타야 하는 광운대 혹은 청량리 행 열차가 아닌 열차를 떠나보낸 것이라는 사실에 안도했을 텐데. 하지만 이미 탔다가 지금은 지나가 버린 그 열차는 새삼 어디로 향하던 열차인지도 알 수 없었다. 지난 열차까지 안내하는 경우는 없는 것이니.


내가 서 있던 역은 개봉역이고, 거의 두 달 전 면접날에도 내렸던 곳이었다. 면접 전 여유 시간을 확보하겠다고 일찍 집을 나섰다가 신도림역에서 어느 구멍으로 내려가야 할지 한참을 헤매고 선택한 트랙에 도착한 열차를 타고서 몇 정거장을 이동하고 나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리게 해 주었던 역. 이 역을 첫 퇴근길에 또 들렀다니. 면접날처럼 다시, 원래 향해야 하는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선택할 수 있는 교차역으로 되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리며 나는 조용히 읊조렸다. "ㅅ ㅣ…발…, 시…발, ㅅㅂ…."


다시 교차역에서 이제야 제대로 광운대행 혹은 청량리행 열차를 기다리면서 이번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암기하다시피 생각했다. '1호선으로 출근할 때는 출근 때만이 아니라 퇴근할 때에도 항상 지하철의 종착역을 확인하자.' 몸뚱이를 끌고 도합 네 시간을 출퇴근 길에 써 보며 이 사실을 체득한 게 금요일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부터 금요일에 첫 출근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해보니 정말로 다행이었다.

여기저기 공사 중인 종로3가역. 그래도 그렇지 왜 환승 안내가 저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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