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참고할 책들을 살피러 동네 공공도서관으로 출근했다. 대여하긴 꽤 많아서 아예 원격 근무로 몇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낼 계획을 세운 날이었다. 우리 동네 도서관 내 도서실은 몇 시간 정도 내리 앉아서 집중하기 충분한 환경에, 잠시 쉴 때 생각을 환기하기 좋은 야외 정원까지 갖추고 있다.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에 1977년 개관한 정독도서관은 오래된 공간인 만큼 정원에는 다양한 식수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운치 있고, 사람 다니는 통로마다 넉넉히 놓인 벤치에 앉아서 그 운치를 감상하기 딱 좋다. 벤치 위에 자라는 덩굴 식물은 강한 해를 막아주곤 한다. 도서 대여나 독서 목적이 아니어도 머물 만한 장소여서 주말이면 도서관 이용자가 아닌 사람들도 일부러 찾아온다.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까먹는 장면도 간혹 볼 수 있고.
출근해서 보니 정원은 평일에도 비지 않는 곳이었다. 약간 늦은 점심을 먹으러 야외로 나와 집에서 싸온 빵과 과일을 먹었다. 주변의 이 벤치 저 벤치에 앉은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식후 커피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있는 장면마다 서로 다른 나뭇잎과 꽃잎이 함께 들어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마스크 착용이 더욱 답답해지는 계절에 들어서는 중에, 여기 정원은 소담스러울 뿐 아니라 낮은 본건물과도 거리를 충분히 두면서 주변이 별로 막힌 데 없이 탁 트여 있었다. 마스크도 젖힐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 왜 안 찾아오겠는가. 주변에서 살든 일하든, 이 지역에 머무르는 누구나 돈 없이도 기댈 수 있는 이 장소에.
나와 동거인부터가 이 도서관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생활의 큰 기쁨을 얻는다. 얼마 전엔 만기일 도서를 반납기에 넣으러 한밤중에 도서관으로 같이 향했다가 맥주 한 캔 따면 좋겠다, 캠핑도 가능하겠다 떠들며 놀 궁리를 했다. 그때까지도 조명을 밝혀둔 밤의 도서관 정원을 발견하고 도서관 깨알 활용법을 추가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입구에서 미처 못 보고 지나친 만개한 겹벚꽃나무를 뒤늦게 알아차려, 떠나기가 아쉬운 마음에 이리저리 구경하며 만져도 보았었다.
도서관 복지를 걱정한 적도 있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 이사를 앞두고 있을 때다. 오랜 세월 그 지역의 두세 군데 공공도서관을 이용하는 유익이 컸던 내겐 도서관도 이사를 둘러싼 관심사의 큰 축이었다. 팬데믹으로 일상에서 도서관이 사라질 때의 타격을 단계별로 경험한 이후, 어쩌면 도래할 바이러스 시대에 더 중요할 생활 시설이 바로 도서관이라 생각했다. 수입도 일자리도 변변치 않던 시기를 강타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의 날들은 공공도서관이 지탱해주는 삶의 한 부분을 절절하게 절감한 암흑의 시기였다. 나로선 당연히 이사 갈 동네에서 새로 이용할 도서관을 미리 탐색할 겸 이사 두어 달 전에 낯선 도서관 환경을 직접 구경하거나 장서 규모를 검색했고, 못내 아쉬움이 들었다. (도서관 야외 정원의 맛을 안 지금은 그게 참 고소하지만, 경험 전엔 몰랐다.)
그동안 이용한 도서관들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직행할 수 있는 관내 도서실, 그 내부에서만 이동하며 거의 모든 도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최신 건물이기에. 나는 거기에 익숙했다. 나에게 도서관은 궁금한 책을 맘껏 보거나 대여할 수 있는 기능적 성격이 강한 시설인데, 앞으로 이용할 도서관은 야외 정원을 통과해야만 책이 있는 도서실 건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고도 계단을 자꾸 오른 후에야 마침내 도서실에 출입할 수 있다니, 영 맘에 차질 않았다. 화장실은 좁고 신식만큼 깔끔치 못한 데다가 층별로 있지도 않고 다른 층의 복도 끝 구석에 있었다. 간행물 코너는 물론이고, 어문학계열 도서까지 인문사회자연과학 도서실과 층을 두고 분리되어 있어서 도서실 이용 동선도 전보다 불편했다. 이 장소에 깃든 추억이 있는 동거인은 답사 후 더 신이 나 보였다. 내가 다소 불편한 시설에 대해 불평했더니, 그는 여기가 서울에서 장서가 가장 많다는 뜻밖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곧바로 공공도서관 장서 수를 비교한 표를 온라인에서 확인하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내가 동거인보다 더 이 도서관을 애용한다. 이제 도서관은 나에게 도서 서비스 이상의 공간, 일상을 더 풍요롭고 활기 있게 하는 놀이터다.
이렇게 좋은 ‘나의 도서관’을 생각할수록 한편으론 마음이 더 불편해질 수밖에 없는 사실이 엄연히 존재한다. 나는 여러 겹의 차별 위에서 공공도서관으로는 최상위 지역의 도서관 혜택을 누린다. 조금주 서초구립반포도서관 관장의 〈공공도서관 운영의 기본 지표와 이용 실적과의 상관관계 분석〉 연구(1)에 따르면 1인당 공공도서관 평균 예산에서 최상위인 지역(종로구, 약 8만 4천 원)과 최하위인 지역(관악구, 약 4천 원)의 격차는 무려 20배 이상이니까. 2위인 지역은 내가 오래 살고 일했던 마포구(약 2만 8천 원)이고, 지금 나는 종로구에 산다. 개인적으로 도서관 이용에 가장 좋은 지역만 거쳤기에 지역 격차를 못 느낀 것이다.
금천구 소재 회사에 다닐 때 구립도서관을 이용하다 놀란 적이 있다. 희망도서 신청을 주 2회가 아닌 월 2회에 한 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금천구가 생활권이면 종로구나 마포구가 생활권인 이들에 비해 1년이면 72권의 희망도서를 신청할 수 없다니. 이 차이를 약간 상쇄할 수 있는 다른 서비스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내 오래된 도서관 불만은 이에 비하면 고작 12월 초면 도서괌 예산이 떨어져 희망도서 신청을 더는 받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보다도 예산이 몇십 배 부족한 도서관이 전국에 많다니 한국사회는. 내가 도서관 이용의 여러 유익을 체감할 수 있던 것 역시, 인구 천 명당 도서관 면적이 가장 큰 지역인 종로구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리다툼 걱정 없이 지역 공공도서관으로 향해 쾌적하게 일할 계획을 짜거나, 주 2회씩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할 수 있는 건 우리나라에서 특권이었다. 공공도서관 이용 10여 년 만에, 전엔 잘 몰랐던 도서관 문제에 새삼 심각해진 내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는 나에게 “관악구 출신은 운다”면서 서울대 도서관 하나로 버졌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간적 한계는 차치하더라도 대충 어느 지역에서나 희망도서는 다 볼 수 있는 곳이 공공도서관이라고 으레 생각했다. 서울에서 격차가 이 정도면 서울과 그 밖의 지역 격차는 얼마나 훨씬 심할까.
“도서관은 국민이 신체적·지역적·경제적·사회적 여건에 관계없이 공평한 도서관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여야 한다.”
도서관법 제7조에 이런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도서관법이라는 게 있는지도 뒤늦게 알았지만 1963년 제정됐고 최근에는 2020년 12월에 개정됐다.(2023. 8. 8 개정) 그에 따르면 “국민의 정보 접근권과 알 권리를 보장하는 도서관의 사회적 책임과 그 역할 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여, 도서관의 육성과 서비스를 활성화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대한 자료의 효율적인 제공과 유통, 정보 접근 및 이용의 격차 해소, 평생교육의 증진 등 국가 및 사회의 문화발전에 이바지함”이 도서관법의 목적이다. 길지 않은 제정·개정문을 보면 이 목적에 맞게 도서관을 가져가려는 지속적인 노력도 행간에서 읽힌다. 여러 사람의 앎과 인내와 실행으로 지금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는 헌법 제2장 제11조에 따르면, 도서관법 앞에서도 모든 국민이 평등하고 조건적으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할 의무가 대한민국에는 있다. 이렇게 따져보지 않아도, 사실 공공(公共)으로 제공되는 도서관 서비스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있을까. 법으로도 명시하고 상식적으로도 으레 존재하면 안 될 법한 큰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곳이 도서관뿐만은 아닌 현실도. 그렇지만 나는 정말로 믿고 싶다. 법대로 국가가 수많은 차별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중요히 여긴다고, 최소한 거기에 힘쓰고 있다고.
도서관 문제에 관심을 더 기울이다 보니,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환경 격차도 심각하단 사실도 새록새록 눈에 들어왔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도서대여반납기’만 놓고 봐도, 몇 대씩 있는 도서관이 있는 반면에 하나도 없는 곳도 있다. 금천구. 그런 도서관 사서 앞에는 잡일이 쌓여 있는 게 눈에 보인다. 거기서 일하는 사서도 환경이 더 좋은 다른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와 마찬가지로 도서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희망을 일로 구현하는 게 가능한 환경인 걸까?
지척에 좋은 도서관을 두고 애용하는 시민으로서 자꾸 도서관 시스템에 눈길이 간다. 표정이 어두운 사서의 얼굴에 눈이 간다.
(1) "거주지·학력·소득 따라 ‘도서관 경험’ 다르다."(〈시사IN〉 757호)
※ <복음과상황> 공간 & 공감에 연재하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