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통증이 재발했다. 작년에 치료 후 쓸 만해진 손목이 다시 아파진 것이다. 효과가 가장 빠르다는 유전자 주사를 병원에서 ‘원샷 원킬’도 아니고, 서너 방이나 맞은 후에야 그냥저냥 쓸 만해진 손목이었다. 10년 전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나았는데, 지난해 치료받고도 이렇게 금방 손목이 다시 말썽일 줄은 몰랐다. 올해 무리하게 쓰지도 않았는데, 왠지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한 달 정도 버티다가 평일 점심시간에 이용할 만한 정형외과를 검색했다.
사무실에서 걸어서 6분도 안 걸리는 그 정형외과 병원은 최근 완공한 새 건물에 있었다. 1층 약국 위치를 미리 확인한 뒤 5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최신 병원으로 올라갔다. 손목은 아프지만 산뜻한 기분으로 신규 접수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즘 병원들이 거의 그러하듯이 널찍하니 쾌적한 느낌을 주는 그곳을 은은한 노란빛 천장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앉아서 한잔할 수 있도록 커피머신도 갖춰져 있고, 갑자기 비라도 오면 병원 이용자에게 빌려줄 일회용 우산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전체 공간의 반절은 차지하고 있을 법한 치료실 규모가 꽤 컸다.
내 이름이 불렸고, 엑스레이 촬영을 한 후 진료실 앞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언제나 그렇듯 병원에 오면 이때부터가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인다. 몇 분 안에 의사에게 내 아픔에 대한 이런저런 맥락과 정보를 잘 제공해야, 그에 따라 제대로 전문 소견을 듣고 또 질문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할까, 잊은 것은 없나, 새로 만날 의사는 과연 괜찮을까 궁금해하다가 곧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픔의 재발 이력을 설명했고, 작년과 특별히 다른 소견은 없었다. 다만 같은 일로 두 차례 병원을 찾아, 내 몸에 대해 말하고 그에 따른 의사의 이야기를 복습한 결과로 전보다 내 몸과 이 아픔을 더 잘 알게 되자 억울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이런 병은 원래 한번 발생하면 깔끔하게 낫지 않고 재발이 잦고, 아픈 부분은 사용할수록 닳는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을 또 들었고, 작년에도 그랬듯 앞으로는 계획을 세워 관리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주변 근육을 단련하는 데 도움 되는 손목 운동도 하고, 손목 지지용 보호대도 잘 착용하고.
의사는 가장 빠르게 회복하려면 (비급여 항목인) 주사 치료가 제일 효과적이라고 했다. 1년 전에도 맞았던 그 주사. 최현숙 작가의 일화가 떠올랐다. 병원들이 환자에게 다양한 치료법을 알려주기보다는 비급여 항목 치료부터 제안하는 현실에서, 급여 항목 치료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을 알려달라고 조곤조곤 잘 요구했다고 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나도 병원에 가면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그 작가 선생님과는 다른 이유로 의사에게 다른 치료를 받을 수 없는지 물었다. 일전에 서너 번이나 맞았던 그 주사는 직후에는 약물에 의한 팽창으로 환부가 더 아팠었고, 오후 내내 일해야 하는 내 처지에서는 비슷하게 빨리 치료되면서도 덜 아픈 방법이 필요했다. 의사는 또 다른 비급여 항목인 체외충격파 치료를 제안하자마자 나는 그 치료를 받기로 했다.
체외충격파 치료는 꽤 아팠지만, 그럴수록 더 효과가 좋다는 말에 아픈 데를 치고 드는 고통이 싫지 않았다. 판판한 치료 침대에 누워서 놀고 있는 왼손으로는 미간을 누르며, 치료사 선생님께 병에 관해 물을 시간을 확보한 것도 꽤 괜찮았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손목의 이 부분이 상하는지, 왜 그런지, 이것 말고도 어떤 치료를 받거나 물건을 활용하면 도움이 되는지 등등.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5분이 짧게 느껴졌다. 파라핀 찜질과 레이저 치료까지 받고, 마지막 무료 서비스로 물침대 치료까지 체험하다 보니, 이 병원이라는 장소에 들어선 30여 분 전과는 다른 기분의 내가 되어있었다. 뜨뜻한 물이 대단한 수압을 발휘하며 위아래로 전신 마사지하는 것을 3분간 반복하는 일이 물침대의 기능이었다. 과연, 무료로 한번 체험하고 나면 또 경험하고 싶어지는 그런 기능. 어느새 이 물침대를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나는 기계를 탄 몸이 움직이고 있는 약간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영상으로 담아 메시지로 보냈다.
“이 물침대 완전 놀이기구야!”
놀이기구, 실음 물침대 위에 타서 놀고 있는 것 마냥 혼자 킥킥대다가 문득 몇 개월 전 탔던 진짜 놀이기구의 탑승 후기가 대비됐다. 동거인과 서울 끝자락에서 볼일을 보고 저녁이 되어갈 즈음 차로 40분을 더 달려서 에버랜드에 놀러 갔던 날. 언젠가 한 번 가서 실컷 놀아보자고 이야기했던 에버랜드. 인당 6만8천 원, 아침이든 저녁이든 이용 값이 똑같이 비싼 그곳에서 시간 안배를 잘하여 최대한으로 놀이기구를 섭렵하려던 계획을 잡고 씩씩하게 놀이공원으로 입성했던 날이었다. 하루를 통으로 잡아 모든 놀이기구를 탈 수 없는 것이 무척 안타깝지만.
하지만 내가 탄 놀이기구는 겨우 네 개였다. 시간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세 번째로 탑승한 롤러코스터에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 몸 때문이었다! ’시속 104km의 엄청난 속도, 낙하 각 77도의 세계 최고’의 그 롤러코스터는 예전부터 고대하던 것이었다. 무려 3분 이상을 즐길 수 있는 T익스프레스! 그 롤러코스터의 충격은 고대했던 만큼 정말 대단하게 몸을 강타했다. 탑승하는 동안 내내 심장이 쫄깃하도록 어마어마한 긴장감에 잔뜩 오그린 내 몸은 딱딱한 의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쿵쾅댔던 통에 내리자마자 여기저기가 얻어맞은 것처럼 아파 왔다. 제일 긴장을 많이 한 목 주변 근육이 특히 뻐근했고, 두려움을 잊으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탓에 목구멍도 얼얼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논다는 느낌이 있었다.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탄 네 번째 공중회전 놀이기구를 탄 이후 마침내 하늘이 돌았다. 전정기관이 비명을 질러대기라도 하는 건지 속이 구겨지고 뒤집히고. 더 이상 다섯 번째 놀이기구를 고를 필요는 없었다. 탈출하듯 놀이공원을 빠져나갔으니까.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조수석에 누운 채로 있었다.
놀이기구만 ‘충격적’이었던 게 아니다. 이전엔 무척 환상적이었던 퍼레이드 쇼를 구경할 때도 나는 이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더이상 번쩍이는 퍼레이드 쇼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쇼가 아닌 다른 광경에 절로 시선을 자꾸만 고정했다. 내 옆과 앞과 뒤에서 자기 아이들을 들어 올리거나 목말을 태우느라 안간힘을 쓰는 부모의 모습들에 턱이 떡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지고 오색 찬란한 불빛이 번쩍이고 빠른 노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화려하게 이동하는 축제의 공간, 온몸으로 격하게 신남을 표현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거의 모두 자기 부모들을 올라탄 상태였다. 이 얼마나 놀랍도록 비환상적인가, 부모들의 척추와 목과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고통받고 있었다. 보기만해도 아프게.
이렇게 저렇게 공격당한 듯한 몸 상태로 내 기대와 추억의 공간이었던 놀이동산을 탈출한 그날의 일들이, 정형외과 병원에서 길어야 40분 정도를 머무는 동안 마지막 코스로 3분짜리 물침대 기계를 타며 즐기는 동안 교차한 건 왜일까. '이제 나에게 놀이동산의 시대는 가고 병원의 시대가 온 것인가, 이렇게 빨리?'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3분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때문이었다! ’시속 104km의 엄청난 속도, 낙하 각 77도의 세계 최고’의 그 롤러코스터‘의 3분은 마치 30분처럼 느껴졌는데 맙소사, 기계 종료음이 울렸다 아쉽게도. 물침대가 얌전해지다가 완전히 동작하지 않을 때까지 기다린 후 몸을 일으켰다 아쉬우니까.
언제 또 와서 다음에도 이 치료 시간을 보내지, 약간 기대하며 주섬주섬 짐을 챙겨 물리치료실을 떠날 채비를 하는데 휠체어를 탄 노령의 환자와 치료사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를 치료하기 전, 치료사는 처방서에 적힌 코스를 다시 논의하고 있었다. 치료사, 할아버지 환자, 환자 동행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주고받는 대화에 귀구멍이 열렸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의료실비보험이 없었다. 진료실에서 처음에 권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 좋은 치료는 비급여 치료였을 테고, 할아버지는 잘 모르고 그 치료를 받기로 한 것 같았다. 귀가 잘 들리지도 이해가 빠르지도 않은 할아버지에게 치료사는 비용 설명을 반복해주고 있었다. 환자와 동행한 아주머니가 보충 설명을 해주고 있지만, 얼마짜리 치료를 선택할 것인지는 오직 환자의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결국 비급여 항목의 냉각 치료는 받지 않기로 하셨다. 그 치료는 2분 여에 2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다.
내가 이용한 물침대 무료 서비스는 6만 원 이상의 비급여 치료를 받은 이용자에게만 덤으로 제공되는 것이었다.
※ <복음과상황> 공간 & 공감에 연재하는 이야기입니다.